[한국문화, 그 찬란한 기억] 복스러운 미소 앞에 행복한 중생들
박물관100년 특별전 대표유물 [12]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고려初 10세기 제작 추정 특이하게 흰 대리석 사용
검지손가락 뻗은 모습은 문수보살의 지혜 나타내
국립중앙박물관·조선일보 공동기획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직후인 1912년 강원도 강릉 한송사(寒松寺) 절터에서 두 구의 석조보살상(石造菩薩像)이 발견됐다. 하나는 상태가 온전했으나 다른 하나는 머리와 오른팔이 없었다.
온전한 불상은 그해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되돌려받았고, 1967년 국보 제124호로 지정됐다. 1963년 보물 제81호로 지정된 다른 하나는 강릉시청 캐비닛에 보관되어 있다가 1992년 강릉시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고려 말에 이곡(李穀)의 《동유기(東遊記)》에 "(한송사) 절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두 석상이 땅에서 솟아나왔다"고 썼고, 《동국여지승람》에도 같은 내용이 전한다.
한송사 절터에 본존불 석대좌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두 불상은 아마도 비로자나삼존불의 좌우 협시(脇侍)보살상(본존을 옆에서 모시고 있는 불상)인 것으로 생각된다.
국보 124호인 이 보살상은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한국 석불상의 재료가 거의 화강암인 데 비하면 매우 특이하다.
얼굴은 길고 통통하고 복스러운데 눈초리가 올라가 눈썹과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입은 유난히 작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코는 끝이 통통한 매부리코로 얼굴에 비해서 짧은 편이다.
특히 뺨과 긴 턱이 둥글둥글하여 올라간 눈초리·입꼬리와 함께 만면한 미소를 띠고 있다. 삼불(三佛) 김원룡(金元龍·1922~1993) 선생은 이런 모습의 보살상을 '자연주의 불상'이라고 불렀다.
이 불상은 또 지나치게 좁은 이마에 유난히 큼직한 백호공(白毫孔)이 눈에 띈다.
여기에 끼웠던 백호(白毫·두 눈썹 사이의 빛나는 터럭)는 얼굴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컸을 것이다. 이런 특징은 9세기 말~10세기 초 후삼국시대 불상에서 유행했다.
얼굴과 함께 시선을 끄는 것은 머리의 보관(寶冠)이다.
얼굴보다 긴 둥글고 높은 고관(高冠)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세 겹의 관 하단이나 귀 좌우의 장식, 뒷머리에서 늘어져 어깨를 덮은 머리 스카프 등에서 아름다운 장식성을 느낄 수 있다.
원통형의 보관이나 풍만한 얼굴, 입가의 미소 등은 강릉 신복사지 석불좌상(보물 제84호)이나 오대산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다.
목에는 굵은 3줄의 삼도(三道)가 그어져 있고, 3줄의 목걸이가 가슴까지 내려와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옷 주름이 새겨져 있다. 유연하게 굴곡진 부피감과 왼발을 무릎 위로 올리지 않고 앞으로 내린 유희좌(遊戱座)의 독특한 자세는 형식에서 벗어나려는 자유스러운 조형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꽃송이를 든 오른손을 배에서 ㄱ자로 꺾으면서 검지손가락을 펴 아래를 가리키고, 왼손을 무릎 위에 올려 검지손가락만을 뻗은 자세는 문수보살의 예리한 지혜를 나타내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고려 초인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보살상은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불교미술사
온화한 미소로 지친 영혼을 치유하다
'명품 중 명품' 금동반가사유상… 중앙박물관, 국보78호 전시 끝내고 83호 선보여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불교조각실.
53㎡(약 16평)의 독립된 방 한복판에 놓인 금동(金銅)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관람객을 맞는다.
사방은 어두컴컴한데 반가사유상에만 조명이 떨어지고, 깊고 오묘한 사색의 분위기가 관람객을 압도한다.
늘 같은 작품이 전시돼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두 개의 불상이 1년마다 교체 전시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선보였던 '국보 78호' 전시가 25일 끝나고, 26일부터 '국보 83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원래 내년 1월에 교체될 예정이었지만, 국보 78호가 미국 LA카운티미술관(LACMA) 한국실 재개관 특별전에 출품되면서 교체 시기가 앞당겨졌다.
두 반가사유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 21만여점 중 으뜸으로 꼽히는 '명품 중의 명품'이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보러 온다"는 마니아 그룹까지 생겼고, 박물관 큐레이터가 유물을 설명해주는 '큐레이터와의 대화' 시간에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유물이기도 하다. 회사원 김유미(33)씨는 "반가사유상을 보고 있으면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 ‘한국의 미소’ 라 불리는 두개의 반가사유상.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왼쪽)이 장식은 화려한 데 비해 몸통은 직선으로 흐르고 발이 다소 뻣뻣해 보이는 반면,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장식은 화려하지 않지만 몸에 생동감이 넘치며 단순하면서도 균형 잡힌 신체가 완벽한 조각 기술을 보여준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보 83호의 높이는 90.9㎝.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걸친[반가·半跏] 불상은 연꽃 좌대에 앉아 오른손 끝을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사유·思惟]에 잠겨 있다. 세 개의 산처럼 솟은 삼산관(三山冠)을 썼고 얼굴은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소년처럼 통통하다. 입은 살며시 다물었으면서도 미소를 머금어 깨달음의 희열을 드러내는 동시에 조형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삼국시대 불상의 백미로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제작지가 백제인지 신라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갈린다. 일본 교토(京都) 고류지(廣隆寺)의 목조반가사유상과 꼭 닮아 고대 한국문화의 일본 전파를 입증하는 유물로 여겨져 왔다.
국보 78호는 태양과 달이 결합한 화려한 관을 쓰고 있으며, 두 가닥의 장식이 양쪽으로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몸에는 긴 천의(天衣)를 둘렀는데, 탄력적이고 부드러워 보인다. 오묘한 표정과 균형 잡힌 자세, 아름다운 옷 주름이 인상적인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반가사유상이다.
가느다란 듯 힘이 넘치는 신체의 곡선, 천의 자락과 허리띠의 율동적인 흐름, 높이가 80㎝나 되는데도 두께를 2~4㎜로 유지한 고도의 주조 기술…. 미술사학자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언뜻 고요해 보이지만 위대한 보살 정신의 생명력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들 반가사유상의 출토지는 일제시대 한국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학자나 관계자의 증언을 조사한 황수영 박사의 기록에 의하면 국보 83호는 경주 부근, 국보 78호는 안동·영주 등 신라 북쪽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 입수 기록에는 "국보 83호는 1912년 당시 이왕가(李王家)박물관이 일본인 골동상으로부터 2600원(지금 돈으로 약 26억원)을 주고 구입했다"고 적혀 있다.
두 명품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박물관 관계자는 "두 반가사유상 모두 보험평가액이 300억원으로 산정돼 있다. 통상 보험평가액은 실거래 금액의 10분의 1 정도로 산정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이 반가사유상은 수천억원을 호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이기 때문에 가격을 산정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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