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양 미 술 자 료

[스크랩] 우리 그림 한국화 이야기1

bizmoll 2009. 2. 3. 17:15

 

송록도 - 장승업
소나무와 사슴처럼 오래도록 살고픈 소망 담아

 

 

 

 

 

장승업, 송록도, 19세기, 종이에 수묵 담채, 58.5 cm × 32 cm, 충북대학교박물관 소장

‘송(松)’은 소나무이고, ‘록(鹿)’은 사슴입니다. ‘송록도’는 그러므로 소나무와 사슴을 그린 그림이지요. 소나무나 사슴은 둘 다 십장생에 속해서, 예로부터 천 년을 산다고 하였습니다. 사슴은 천 년을 살면 푸른 빛을 띄고, 다시 오백 년을 지나 흰 빛을 띄며, 또 오백 년이 지나 검은 빛을 띈다고 하였습니다.

그림 속의 사슴은 고개를 들어 솔잎을 먹고 있습니다. 깨끗한 털, 날씬한 다리, 맑고 푸른 눈빛, 가지런한 뿔이 인상적입니다. 소나무 둥치 아래는 도장에 ‘장생안락(長生安樂)’이라고 새겨서 찍었습니다. 편안하고 즐겁게 오래 산다는 뜻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소망입니다. 소나무와 사슴 그림은 그러므로 즐겁고 편하게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을 담은 것이지요.

사슴이 실제로 천 년을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로부터 사람들이 사슴을 신비한 장수의 동물로 여기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숫사슴의 머리에 달린 뿔에 있습니다. 이 뿔은 마치 풀이나 나무처럼 해마다 다시 돋습니다.

봄에 난 새 뿔은 녹용이라고 하며, 점점 딱딱한 각질로 변해 이듬해 봄에 떨어집니다. 사람들은 이 뿔이 나뭇가지와 비슷한 모양이며, 매년 새로 돋아나는 이치를 보고 사슴을 여느 동물과 다르게 보았습니다.

옛 글에 등장하는 사슴은 대개 어질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동물로 묘사되었습니다.

 

고려 시대의 문신인 서희 집안에 전해 오는 이야기입니다. 서희의 할아버지는 화살에 맞고 쫓기는 사슴을 구해 준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꿈 속에 한 사람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맙다. 네가 살려 준 사슴은 내 자식이다. 나는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그대의 후손들을 대대로 재상이 되게 할 것이니라.”

이후로 과연 그 자손들이 줄줄이 재상을 지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우리 신화 속에는 사슴이 지상과 천상을 이어 주는 동물로 나타납니다. 동명왕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났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이웃 나라인 비류국의 송양왕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일찍이 바닷가에 살다 보니, 그대와 같은 인물을 본 적이 없었다. 오늘 그대를 만나 보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대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왕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하늘의 자손이다. 감히 묻겠는데 그대야말로 누구인가?”

송양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습니다.

“하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신선의 후손이라고 말해 두지. 여러 대를 이어 왕 노릇을 했단 말이야. 그대는 나라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고 영토도 작으니 나와 합치는 게 어떤가?”

송양왕은 비로소 속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왕이 그 말에 바로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하늘의 자손이라고 했거늘, 그대는 신의 자손이 아니면서 어찌 왕이라고 하는가. 오히려 나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하늘이 그대를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송양왕은 오히려 난처해졌습니다. 말로 해서는 더 이상 뜻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였는지, 한 가지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왕끼리 활쏘기나 한번 해 보자.”

왕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송양왕은 사슴을 그려서 백 걸음 앞에 걸어 놓고 먼저 활을 쏘았습니다. 겨우 맞추기는 했지만, 가운데 배꼽 부위를 많이 벗어났습니다. 이때 왕은 사람을 시켜 옥 가락지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역시 백 걸음 앞에 걸어 놓고 활을 쏘았습니다. 화살은 정확히 중앙에 맞아, 옥 가락지는 ‘쨍’ 소리를 내며 부서졌습니다. 송양왕은 크게 놀랐습니다. 하지만 선뜻 왕의 실력을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왕은 사냥을 좋아하였는데, 하루는 서쪽으로 나가 흰 사슴을 한 마리 사로잡았습니다. 왕은 곁에 있는 신하들을 시켜 사슴을 벌판 한가운데 거꾸로 매달게 하였습니다. 왕은 사슴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슴아, 하늘에 고하여 비를 내리게 하여라. 그리하여 저 비류국의 수도를 물에 잠기게 하지 않으면 내 너를 살려 두지 않으리라!”

왕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슴이 목을 빼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이내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비는 일 주일 내내 내렸고, 마침내 비류국의 수도는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 버렸습니다. 마침내 송양왕은 고구려에 항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송년학수 - 이도영
기품 어린 학과 소나무 그려 장수 기원

 

 

 

 

이도영, 송년학수, 1912년, 비단에 수묵 담채, 121 cm × 46.8 cm, 간송미술관 소장

대각선으로 뻗은 소나무 아래 잘생긴 두루미가 한 마리 서 있습니다. 목과 다리와 부리가 길어서 늘씬하고 시원한 모습입니다. 흰 깃털은 깨끗하고, 목과 날개깃은 검은색으로, 먹 그림에 잘 어울립니다. 전체적으로 희고 검은빛을 띄지만, 머리 꼭대기의 피부가 드러난 곳은 붉어서 신비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두루미과의 새들을 일러서 ‘학(鶴)’이라고 합니다. 학은 대개 습지나 초원에서 살며, 작은 물고기나 곡식의 낱알 등을 먹고 삽니다.

우리 나라에는 주로 겨울에 찾아오는 철새인데, 조상들은 그 생김새답게 기품 있고 의젓한 모습을 좋아하였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는 자세나, 다른 동물과 달리 허겁지겁 먹이를 탐하지 않는 태도를 보고, 마치 선비와 같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선비들은 학의 모습을 본뜬 ‘학창의’라는 옷을 지어 입었습니다. 이 옷은 전체적으로 흰 바탕에 깃이나 소맷부리 등을 검은색으로 둘렀습니다. 선비들은 이 옷을 주로 집에서 입고, 학처럼 품위 있게 살고자 하였습니다.

조선 시대의 관복에도 학 문양이 나타납니다. 가슴과 등에 붙이던 헝겊 조각인 흉배에도 학을 수놓았습니다. 이것은 주로 문신들이 착용했고, 대신 무신들의 경우는 호랑이가 그려진 흉배를 착용하였습니다. 무신들은 용감한 호랑이를 닮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학은 야생 동물이어서 집에서 키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옛 그림에 보면 학이 마당에 노니는 모습이 많이 등장합니다. 실제로 조상들은 야생의 학을 잡아 집에서 길렀습니다. 날아가지 못하게 깃 촉을 잘라서 길들였습니다.

한편 학은 아주 오래 사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옛 기록에 따르면, 학은 세 살이 되면 머리 꼭대기가 붉어지고, 일곱 살이 되면 잘 날 수 있다고 합니다. 열네 살이 되면 때를 맞추어 절도 있게 울 줄 알게 되고, 예순 살이 되면 새 깃털이 난다고 합니다.

천 년이 되면 그 빛깔이 푸르게 되는데, 이를 청학이라고 합니다. 청학은 신선이 타는 새로, 이슬만 먹고도 잘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지리산 청학동은 바로 이 청학이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그래서 학 그림은 주로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그림도 그렇습니다. ‘송년’은 소나무의 나이이고, ‘학수’는 학의 수명입니다. 소나무나 학이나 아주 오래 사는 것을 대표하는 만큼, 그림을 받는 사람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제 옛 이야기나 하나 들려 드리겠습니다. 학의 다리가 왜 길까요?

배 고픈 여우가 까치를 협박해 일곱 마리나 되는 새끼들을 다 빼앗아 잡아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배가 불러 나무 아래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까치는 슬퍼서 훌쩍이며 울고 있었습니다. 이때 학이 커다란 날개를 접으며 까치 곁에 날아와 앉았습니다. 학은 까치의 불쌍한 사연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쯧쯧, 다음부터 그런 바보 짓은 하지 마. 여우는 나무를 탈 줄 모르거든.”

여우는 마침 잠에서 깨어 이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속으로 학을 잡아먹고야 말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여우는 학을 잡아먹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웅덩이 근처에서 올챙이를 잡고 있던 학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아이고 이거, 학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너를 찾아가던 길이었어!”

여우는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학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마침 오늘이 내 생일이거든. 우리 집에서 잔치를 하는데, 꼭 너를 초대하고 싶었어.”

여우의 사탕발림에 순진한 학이 넘어갔습니다. 여우는 학을 데리고 캄캄한 여우 굴 속으로 갔습니다. 깊고 캄캄한 굴 속에서 여우는 갑자기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이빨을 으르렁대며 달려들었습니다.

학은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그때 굴 밖에서 모기가 앵앵대는 소리가 났습니다. 학은 이 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우야, 저게 무슨 소린 줄 아니?”

여우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저건 늑대 소리야. 너를 잡아먹으려고 오는 거야. 그러니 어서 내 날개 밑에 숨어!”

여우는 학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학은 조금씩 발걸음을 옮겨 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날개를 저어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뒤늦게 속은 것을 안 여우는 학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한참 실랑이를 하던 학은 마침내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이때부터 학의 다리는 대나무처럼 길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노안도 - 양기훈
기러기와 갈대는 '편안한 노년' 뜻해


 

 

 

양기훈, 노안도, 19세기, 종이에 수묵, 17.6 cm × 28.3 cm,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두 마리의 기러기가 막 갈대밭에 날아드는 순간입니다. 뒤에 있는 기러기는 고개를 쭉 뺀 채 날개를 활짝 폈고, 앞의 기러기는 날개를 접고 땅에 내리려는 동작을 하고 있습니다.

기러기 그림에는 으레 갈대가 함께 그려집니다. 원래 기러기는 풀이나 풀씨, 낟알 등을 먹는 초식 조류입니다. 논이나 저수지, 해안이나 습지 주변의 갈대밭에서 주로 생활합니다. 그러니 기러기와 갈대가 잘 어울릴 법도 하지만, 사실 그림에 함께 나오는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갈대는 한자로 ‘노(蘆)’이고, 기러기는 ‘안(雁)’입니다. 이를 함께 붙여 읽으면 ‘노안(蘆雁)’이 되지요. 이는 ‘편안한 노년’이란 뜻의 ‘노안(老安)’과 소리가 같습니다. 노안도(蘆雁圖)는 그러므로, 나이 들어 편안하게 지내라는 의미를 담은 그림이지요.

기러기는 우리 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입니다. 가을 저녁이면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나는 기러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이런 기러기를 보고, 그림을 그릴 뿐만 아니라, 글을 쓰거나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를 좋아하였습니다.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
고단한 날개 쉬어 가라고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
산 넘고 물을 건너 머나먼 길을
훨훨 날아 우리 땅을 다시 찾아왔어요
기러기들이 살러 가는 곳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너는 알고 있겠지


 

윤석중 선생님이 노랫말을 쓴 ‘기러기’입니다. 이 노래처럼 기러기는 먼 길을 사이좋게 함께 나는 새입니다. 일상 속 여인들의 지혜를 담은 ‘규합총서’라는 옛 책에 따르면, 기러기는 네 가지 덕목을 갖춘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첫째는 신(信)입니다. 추위가 다가오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오고, 날이 풀리면 다시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기러기의 이동을 보고, 사람들은 믿음을 배웠습니다.

 

둘째는, 예(禮)입니다. 기러기는 하늘을 날 때 ‘V 자’ 모양을 이룹니다. 맨 앞에서 대열을 이끄는 기러기는 경험 많고 힘이 좋은 우두머리 새입니다. 앞서서 바람을 가르면 뒤따르는 나이 어린 새들이 쉽게 날 수 있습니다.

서로 도우며 질서를 지키는 예절 바른 모습입니다. 오랫동안 기러기를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이렇게 차례를 지켜 비행할 때 약 70 % 정도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셋째는, 절(節)입니다. 한번 정한 짝과 평생 함께하니, 절개가 있습니다. 홀로 된 신세를 두고, ‘짝 잃은 외기러기’라고 할 만큼 기러기의 사랑은 한결같은 데가 있습니다.

 

넷째는, 지(智)입니다. 무리 중에 따로 보초를 세워 놓고, 적의 공격을 알리게 합니다. 참 슬기로운 새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기러기의 여러 가지 덕성을 본받고자 하였습니다. 혼례식에서 신랑은 기러기와 함께 신부 집에 갔습니다. 이때 기러기 나르는 사람을 ‘기럭아비’라고 하였습니다. 원래는 살아 있는 기러기를 쓰다, 나중에는 나무 기러기로 바뀌었습니다. 이 기러기는 부부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옛날 압록강 근방에 길랑이란 총각과 미월이란 처녀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우연히 둘은 다리 다친 기러기 한 마리를 정성껏 돌봤습니다.

그런 어느 날 길랑은 과거를 보러 떠나게 되었고, 미월은 눈물을 흘리며 배웅하였습니다. 미월은 홀로 기러기를 보살피며 살았습니다. 이듬해 단오날, 미월은 그네를 타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고을 수령이 미월의 미모에 반해 첩으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미월은 수령의 청을 거절하여 옥에 갇혔습니다. 미월은 이 사연을 편지로 써서 기러기 다리에 묶고 간절하게 말했습니다.

“기럭아, 부디 이 사연을 길랑에게 알려다오!”

기러기는 먼 하늘을 날아 길랑에게 갔습니다. 마침내 암행어사가 된 길랑은 미월을 구하고, 수령을 혼내 주게 됩니다. 압록강 유역에 전해 오는 옛 이야기로 춘향전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혼례식에 기러기를 전하는 아름다운 풍습은 이런 사연으로 더욱 뜻이 깊습니다.

 

 

 

 

 

 

 메추리 - 조지운
조 이삭 쪼아 먹는 메추리, 가정의 평안 상징

 

 

조지운, 메추리, 17세기, 24.8 cm × 15.8 cm, 간송미술관 소장

 

 

통통하게 살찐 메추리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진 낱알을 쪼아 먹고 있습니다. 빨간 열매가 매달린 나뭇가지나 붉은 잎사귀로 보아 계절은 가을이 분명합니다. 메추리 그림은 주로 조와 함께 그려졌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메추리를 나타내는 한자 중에 ‘안(安)’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편안하다는 뜻의 ‘안(安)’과 소리가 같습니다. 한편 조는 벼과의 식물입니다. 벼는 한자로‘화(禾)’라고 하는데, 이 글자는 화목하다는 뜻의 ‘화(和)’와 소리가 같습니다. 메추리와 조가 함께 있는 그림은 ‘안화도(安和圖)’라고 합니다. 편안하고 화목한 모습을 담은 그림이라는 뜻이지요.

아마 그런 마음을 담은 그림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 싶습니다. 조금 억지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옛 사람들은 이런 의미를 그림에 담는 데 익숙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메추리 그림 선물은 가정의 화목과 편안함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소리가 같은 글자를 이용하여 뜻을 엮어 내는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가을날 조 이삭을 쪼아 먹는 메추리 그림은 풍성한 느낌이 듭니다. 메추리는 살이 쪄서 보기 좋고, 조는 특히 이삭이 많이 달리는 작물이므로, 부귀와 풍요를 기원하는 뜻도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메추리는 암수 한 쌍이 아주 다정하게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번 짝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함께 한다고 하니, 메추리 그림에는 부부간의 사랑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메추리 그림은 볼품이 없습니다. 짜리몽땅한 몸집이며, 얼룩덜룩한 털빛이 더욱 그렇습니다. 같은 과에 속하는 꿩처럼, 꼬리가 길지도 않고 소리도 우렁차지 않습니다. 겨우 키 작은 풀밭 등지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갈 뿐입니다.

작은 풀 한 포기를 만나도 조심스럽게 돌아가니, 그저 겸손하게 자신의 처지를 아는 듯합니다. 옛사람들은 이런 메추리에게서 오히려 배울 점을 보았습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처지에 맞게 행동하면 다른 이의 공격을 받지도 않고 마음도 편하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메추리는 왜 꽁지깃이 없는지, 옛 이야기를 통해 알아 보겠습니다.

 

어느 날 배고픈 여우가 먹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 나무 그늘에 메추리 한 마리가 졸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여우가 메추리를 붙잡자, 메추리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우야, 날 살려 주면 맛있는 걸 많이 먹게 해 줄게.”

여우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메추리를 놓아 주었습니다.

“그래, 지금 당장 맛있는 걸 내놔 봐!”

여우는 메추리에게 다그쳤습니다. 메추리는 여우를 데리고 길가로 갔습니다. 마침 한 아주머니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들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났습니다. 메추리는 팔짝팔짝 뛰어서 아주머니 앞으로 갔습니다.

아주머니는 난데없이 나타난 메추리를 잡으려고 빨리 걷기 시작했습니다. 메추리는 가만 기다렸다 손이 닿을 즈음 잽싸게 달아나곤 하였습니다. 애가 탄 아주머니는 아예 광주리를 내려놓고 메추리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길가 숲에 숨어 있던 여우는 광주리에 든 밥을 맛있게 훔쳐 먹을 수 있었습니다.

메추리는 여우 곁으로 돌아와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재미난 걸 좀 보여 줄까?”

여우는 또 귀가 솔깃하였습니다. 마침 길 저쪽에서 옹기 장수 둘이 옹기를 가득 짊어지고 걸어왔습니다. 메추리는 앞 사람의 옹기 짐 위로 날아올랐습니다. 뒤따라오던 사람이 메추리를 보자 작대기로 내리쳤습니다. 메추리가 살짝 피해 버리자, 그만 옹기들이 와장창 깨져 버렸습니다. 앞서 가던 이는 너무 화가 나서 상대방의 옹기도 박살을 내 버렸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 보던 여우는 그만 배꼽이 빠지게 웃었습니다. 메추리는 또 다른 제안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엄청 슬픈 걸 보여 줄까?”

여우는 이번에도 재미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메추리는 길가 구덩이 속으로 여우를 들어가게 한 다음, 코만 내놓고 있게 하였습니다. 메추리가 여우 코 위에 살짝 앉는 순간 지나가던 소금 장수가 가까이 와서 작대기를 휘둘렀습니다. 메추리가 살짝 옆으로 비키자 그만 작대기는 여우의 코를 정통으로 맞춰 버렸습니다. 여우는 너무 아프고 화가 나서 곁에 있는 메추리를 꽉 물었습니다. 메추리는 살살 빌며 말했습니다.

“여우야, 죽더라도 어머니 소리 한 번만 들어 보자.”

순진한 여우가 어머니를 외치자 메추리는 있는 힘을 다해 날아올랐습니다. 여우는 놓치지 않으려고 꽁지깃을 꽉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만 메추리 꽁지깃이 쏙 빠져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게 - 심사정
옆으로 걷는 모습, 여유 있고 겸손한 선비 닮아



 

 

 

심사정, 게, 종이에 수묵, 23 cm ×14.6 cmm,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게 한 마리가 식물의 줄기 위에 올라앉아 있습니다. 이 게는 생김새로 보아 주로 민물에서 사는 참게입니다. 집게발 아래쪽에 털이 붙어 있고, 등딱지는 둥근 사각형을 이루고 있지요.

바다 가까운 강에서 주로 사는데, 지금처럼 농약을 많이 치지 않았던 옛날에는 논에서도 많이 살았답니다. 참게는 가을에 산란을 위해 바다로 내려가는데, 조상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통통하게 알밴 게를 잡았습니다.

이 그림은 붓놀림을 빨리 하여 순식간에 그렸지만, 대상의 특징을 잘 잡아냈습니다. 부드러운 털이 있는 억센 집게와 가늘고 날렵하며 끝이 날카로운 다리들을 특히 자연스럽게 나타내었습니다.

옛사람들은 단단하고 야무지게 생겼으며, 위험이 닥쳤을 때도 물러서지 않고 용감하게 집게발을 들고 덤비는 게를 좋아하였습니다. 게다가 옆으로 걷는 모습에서 여유 있고 겸손한 선비의 모습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게를 ‘창자 없는 귀공자’라거나 ‘옆으로 걷는 선비’라고 불렀습니다.

게가 매달려 있는 식물은 갈대입니다. 쓱쓱 대강 그렸는데도 어떻게 갈대인지 알았을까요? 억새나 수수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화가들이 게 그림을 즐겨 그린 내력을 알게 되면 금방 수긍할 수 있을 겁니다.

게의 등딱지는 한자로 ‘갑(甲)’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갑은 십간(十干)의 첫 번째로, 시험 성적으로 치면 가장 우수한 경우를 말하지요. 시험 보러 가는 사람에게 게 그림을 선물하면, 가장 좋은 성적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갈대는 한자로 ‘로(蘆)’라고 하는데, 이 글자는 과거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내리는 음식과 같은 소리가 납니다. 의미는 다르다 하더라도 소리가 같으면 연상 작용을 통해서 다른 뜻을 떠올리게 되지요.

그러니 게가 갈대에 매달리는 그림은, 과거에 급제해서 임금이 내리는 음식을 받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그림에는 두 마리의 게가 그려진 경우도 있는데, 두 번의 시험에 모두 장원 급제하라는 뜻이지요.

 

이제 게의 등딱지는 왜 납작해졌는지, 집게발의 털은 왜 생겼는지 옛 이야기를 통해 알아 보겠습니다.

 

게와 원숭이는 친구 사이였습니다. 둘은 사이좋게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게는 살금살금 옆으로 걷고, 원숭이는 어기적어기적 네 발로 기었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

게가 길 한가운데서 갑자기 떡을 하나 주우며 소리쳤습니다. 원숭이도 혹시 또 떡이 있나 여기저기 둘러보았습니다. 겨우 조그만 감씨 하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원숭이는 감씨를 주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꾀를 냈습니다.

“친구야, 이 감씨를 땅에 묻으면 커다란 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리는 거 알아?”

게는 원숭이의 말을 듣자 그만 감이 먹고 싶었습니다. 홍시가 잔뜩 매달린 감나무를 떠올리자 그만 입에서 군침이 돌았습니다.

“내가 이 떡을 줄 테니 감씨와 바꾸지 않으련?”

게는 그만 원숭이 꾀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원숭이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떡을 낚아채서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 바보야! 감씨를 심고 얼마를 기다려야 감이 열리는지 알기나 해? 어디 몇 년이나 걸리는지 기다려 보라지.”

게는 그제야 자신이 속은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떡을 쉽사리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게는 화를 감추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감이야 기다리면 언제든 열리지 않겠어? 그나저나 그 떡은 삭은 가지에 걸어 놓고 먹어야 맛있는데…….”

게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원숭이는 곧장 떡을 삭은 가지에 걸었습니다. 그 순간 나뭇가지가 뚝 부러지며 떡이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하필 등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게의 등짝이 납작해졌습니다. 게는 아픔을 참으면서도 떡을 짊어진 채 게 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원숭이가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보았으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원숭이는 심술이 나서 게 구멍에 대고 방귀를 뀌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와 지독한 냄새에 화가 난 게는 집게발로 원숭이 엉덩이를 물어뜯었습니다. 원숭이는 깜짝 놀라 도망갔습니다.

이때부터 게 등은 납작하고, 집게발에는 살점?털이 붙어 있게 되었습니다. 대신 원숭이 엉덩이는 털이 없이 빨갛게 되었답니다.

 

/박영대 (광주교육대학교 교수·화가)  

 

출처: 소년한국일보 http://kids.hankooki.com/edu/culture_symbol.htm


 

출처 : 산그늘솔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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