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양 미 술 자 료

[스크랩] 프란시스코 드 고야(1746-1828)

bizmoll 2009. 2. 9. 08:32
프란시스코 드 고야(1746-1828)는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예술관 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뛰어난 기법으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이룩하였다. 그느 후기로코코시대부터 낭만주의에 이르는 역사의 전환기를 살았으며 많은 작품을 제작하여 오늘날 700점의 회화, 900저의 드로잉,300여점의 판화작품을 남겼다. 그는 일생동안 많은 역사적인 사건-왕정의 몰락과 수차례의 큰 전쟁-들을 통하여 종교적, 역사적, 정치적으로 분명한 작가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전 작품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사실주의적이면서 동시에 풍자적인 태도가 두드러져 있다. 또한 사회에 대한 냉소적 태도도 포함되어 있으며 왕실과 귀족, 권력자들의 모습 이면에 드리워져 있는 권력에 대한 조소와 저항의식도 내포되어 있다. 한편 고야는 1792년 장기간 투병의 결과로 듣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신체적 장애와 더불어 마드리드와 고향 사라고사에서 목격했던 잔혹했던 스페인 독립전쟁(1808-1814)은 고야의 성격을 더욱 내성적이고 비관적으로 만들었으며 인간에 대한 신뢰를 점점 상실하게 하였다 그 결과 그의 예술은 점차 변화하게 되는데 <까쁘리초스(Los Caprichos)>(1796-1799년)을 시작으로 <전쟁의 재앙(Los Desastres de la Guerra)>(1810-1820년),<투우술(La Tauromaquia)>(1814-1816 년)그리고 1824년 스페인을 떠나기 일년전에 완성한 <디스빠라떼스(Los Disparates)>(1819-1823년)등 4편의 판화연작에 변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까쁘리초스>는 '변덕스러운 것'이라는 뜻으로 위기에 처한 세계의 변화를 예견하는 작품이다. 고야는 변화하는 세계에서 영원불변한 진실은 오로지 미술가의 상상력에 의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전제왕권이 막을 내리는 시점에서 사회,정치,문화 등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구조의 변화, 기종에 통용되던 가치체계의 몰락, 그리고 거기에서 양향을 받은 지식인들의 위기의식을 표출하였다. 반면<전쟁의 재앙>은 전쟁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보다 실제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전쟁의 잔학한 행위를 고발하고 있다. 잔혹함, 공포감, 비탄, 살인이라는 전쟁의 요소들을 통하여 국가와 정치, 그리고 전쟁이라는 문제에 대한 고야의 개인적인 관점을 보여주었다. <투우술>시리즈는 투우라는 극적인 행사를 통하여 인간의 극단적인 감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판와 <전쟁의 재앙>보다 더욱 복합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화면 속의 이미지는 투우라는 격정의 순간이 고통과 죽음이 감도는 극한적인 상황으로 바뀌어져 있다. 비극적인 운명의 투우사와 격렬하게 저항하는 소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관중은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거리감도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또한 명암의 대조와 공간의 표현이 보호하여 고야만의 독특한 시각적인 구성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1)<프란시스꼬 데 고야와 루시엔떼스,화가> 까쁘리초스1, 1799년판, 220x153mm 에칭,아쿼틴트,드라이포인트
그림2)<하느님이 그녀를 용서하시기를 :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다> 까쁘리초스 16, 1799년판, 202x151mm 에핑, 폴리쉬드, 아쿼틴트, 드라이포인트

출처-고야:얼굴,영혼의 거울

Caprichos (links to a page of works from this series), 1797-99.

출처 :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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