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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박희숙의 미술관] 누굴 위해 벌거벗은 채 머리 손질하나
몸단장하는 여인
연예인이나 일반 여성이 민낯 사진을 인터넷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것이 유행이다. 민낯 종결자가 되려면 화장으로 외모를 빛나게 할 때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목구비와 피부가 남보다 돋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아름다워지고자 남자가 결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비록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여자는 끊임없이 외모를 업그레이드하려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여자가 외모를 돋보이게 하려고 애쓰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받고 싶어서다. 사랑받기 위해 몸단장하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 퐁텐블로 화파의 ‘몸단장하는 여인’이다.
속살이 비치는 날개옷을 입은 여자가 목걸이를 만지면서 보석함에 든 반지를 꺼내고 있다. 화장대에는 나체 여인상을 조각한 거울과 장미꽃, 그리고 빗이 놓여 있다.
비스듬히 놓인 거울에 여인의 얼굴이 반쯤 보인다. 여인 뒤에서 하녀는 열심히 욕조를 청소하는데 이는 여자가 목욕을 끝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뒤에 열려 있는 창문은 아침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퐁텐블로 화파는 16세기 프랑스 퐁텐블로 황실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가 집단을 말한다.
이 작품에서 장미꽃은 비너스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타내며, 여자가 들고 있는 반지는 성적 결합을 뜻한다. 비스듬한 거울은 사랑의 갈등을 암시하며 여자가 매춘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모의 여자일수록 몸매를 뽐내는 것에 열중한다. 자신감 덕분이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몸단장’은 이렇듯 몸을 자랑스럽게 뽐내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피카소가 자신의 첫 번째 연인이던 페르낭드를 모델로 그린 것. 피카소는 고향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모델들과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다. 그는 몽마르트르에 살고 있던 누드모델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동네 술집에서 만났고, 자신의 작품을 봐달라며 그를 유혹했다.
두 사람은 사귄 지 1년 만에 동거에 들어갔는데 사랑에 빠진 피카소는 페르낭드가 자신의 아틀리에에만 있기를 원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그를 소유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피카소의 질투심 때문에 자유롭게 외출하지 못한 페르낭드는 아틀리에에서 누드로 돌아다녔고 피카소는 이런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페르낭드와 동거하면서 피카소는 광란의 밤을 즐겼다.
두 사람은 8년 동안 함께 살았다. 페르낭드는 다른 여자와 끊임없이 사랑을 나누는 피카소의 질투심을 유발하고자 젊고 잘생긴 화가 우발도 오피와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페르낭드가 다른 남자와 떠나자 피카소는 질투 대신 해방감을 느꼈다.
그림에서 페르낭드는 거울을 들고 있는 하녀 앞에서 벌거벗은 채 갈색 머리를 손질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거울을 통해 확인하는 모습은 전통적인 비너스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피카소는 전통적인 비너스의 모습과 다르게 페르랑드를 적극적인 여인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거울을 들고 있는 여자는 피카소 자신을 상징한다. 하녀 이미지를 통해 페르낭드의 아름다움에 존경을 표한 것이다.
(좌)‘몸단장 하는 여인’, 퐁텐플로 화파, 작가 미상, 1559년경, 목판에 유채, 105×70, 우스터 예술박물관 소장. (우)‘몸단장하는 캐시’, 발튀스, 1933년, 캔버스에 유채, 165×150,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여자는 남자와 사귈 때 가장 공들여 몸단장한다. 여자가 이렇게 몸단장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곁눈질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다. 또한 여자는 남자에게 아름다움을 칭송받는 것보다 다른 여자가 어떤 평가를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데이트를 앞둔 여자의 몸단장을 그린 작품으로는 발튀스(본명 발타자르 클로소브스키 드 롤라, 1908~2001)의 ‘몸단장하는 캐시’가 있다. 이 작품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1847년)의 한 장면을 묘사했다.
히스클리프가 마구간에서 나오다 우연히 캐시와 하녀 넬리의 이야기를 엿듣는 바로 그 장면이다. ‘폭풍의 언덕’에서 캐시와 히스클리프의 사랑이 비극으로 바뀌는 중요한 대목이다. ‘몸단장하는 캐시’에서 넬리는 캐시 머리를 빗겨주고 있고, 캐시는 실내 가운을 열어젖힌 채 화장대 앞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본다. 작품 왼쪽 어두운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가 히스클리프다.
히스클리프는 이 작품에서 원작과 다르게 정장 차림의 중산층 남자로 묘사됐는데 발튀스는 “히스클리프의 모습에 나 자신을 그려넣을 줄은 나도 몰랐다. 오늘날 이 그림을 보니 젊은 날 반항했던 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심풀이 친목 도모가 어느새 도박으로
카드놀이
자투리 시간에 무엇을 하면 재미있을까. 무료한 시간을 알차게 보낼 마땅한 일이 없을 때 어떤 사람은 화투를 꺼내든다. 시간 보내기 좋은 데다 동료애도 돈독하게 할 수 있어서다.
‘카드놀이 하는 뗏목꾼’은 바로 무료함을 카드로 달래는 노동자를 그린 작품이다.
두 명의 남자가 마주보고 의자에 앉아 카드놀이에 열중하고, 중앙에 있는 남자는 한쪽 다리를 의자에 올려놓은 채 손으로 턱을 괴고 이를 진지하게 바라본다. 화면 오른쪽 남자는 카드놀이에 열중하는 남자의 어깨 너머로 카드를 유심히 보고 있으며 또 한 남자는 그들과 대조적으로 뗏목이 경로를 벗어나지 않게 하고자 묵묵히 노를 젓는다.
나무와 나무를 연결한 커다란 못과 나무토막은 남자들이 탄 배가 뗏목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중앙에 턱을 괴고 선 남자의 깔끔한 옷과 모자는 그가 뗏목 운반 감독관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화면 전면에 흐트러져 있는 공구는 그들이 뗏목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려고 카드놀이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화면 전면 나무궤짝에는 술병과 지팡이가 놓여 있고 한 남자가 앉아 술을 마신다. 지팡이는 남자가 카드놀이에 끼지 못하고 술을 마시는 이유를 암시한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뗏목꾼보다 수입이 적다. 그래서 카드놀이에 낄 수 없었던 것이다. 배경의 잔잔한 수면은 뗏목을 운반하기 좋은,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임을 나타낸다.
조지 캘럽 빙엄(1811~1879)은 미주리에 정착해 미시시피 강 주변에서 사는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그가 그들에게 매료된 이유는 거친 환경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빙엄은 이 작품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터전으로 생활해야 했던 사람들의 척박한 모습을 드러낸다.
화투는 직장 동료와의 친분을 돈독하게(?) 하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친척과의 어색한 분위기를 일소하고자 할 때도 매우 요긴하게 이용된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일수록 대화가 30분을 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친구와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을 그린 작품은 페르난도 보테로(1932~)의 ‘카드놀이’다.
두 남자가 전등이 켜진 실내의 작은 방에서 카드놀이에 열중하고 바닥에는 담배꽁초가 널렸다. 중절모를 쓰고 넥타이까지 맨 남자가 에이스를 들고 있고 와이셔츠만 입은 남자는 담배를 문 채 자신의 패를 고르고 있다. 등받이 의자와 와이셔츠는 그가 주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 바닥의 담배꽁초와 불 켜진 전등은 두 사람이 오랫동안 카드를 쳤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부릅뜬 눈과 경직된 자세는 카드놀이가 사실상 오락이 아닌 도박임을 암시한다. 남자가 엉덩이 밑에 카드를 숨긴 것은 카드놀이에서 돈을 잃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1‘카드놀이’, 보테로, 1999년, 캔버스에 유채, 107×136, 작가 소장.
2‘사기 도박꾼’, 라투르, 1635년, 캔버스에 유채, 106×146,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이 작품은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테로는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강조하고자 인체를 터질 듯하게 부풀렸다. 또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라틴 유흥문화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라틴 사람은 주말마다 손님을 초대해 카드놀이를 즐긴다.
화투는 손목 운동용 오락이 아니다. 화투를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원동력은 돈이다. 하지만 화투는 친목 도모용이든, 시간 때우기용이든 시간이 흐를수록 도박의 성격을 가지며, 도박이 되는 순간부터 대부분의 사람은 승패에 집착하게 된다. 돈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욕망을 노리는 것이 사기도박이다.
사기 도박꾼을 그린 작품이 조르주 드 라투르(1593~1652)의 ‘사기 도박꾼’이다. 이 작품은 사기꾼의 술수에 넘어가는 어리석은 젊은이를 묘사했다. 실내에서 사람들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화면 오른쪽 앞에 금화를 쌓아둔 젊은 귀족이 손에 든 카드를 보고 있고, 화면 왼쪽의 남자는 에이스 카드를 숨긴 채 비스듬히 앉아 있다. 화면 중앙에 앉아 있는 여인은 카드를 들고 하녀에게 눈짓을 보내고, 포도주 잔을 들고 있는 하녀는 눈으로는 어린 귀족의 카드에 집중하면서 고개는 부인을 향해 있다.
이는 하녀가 귀족의 카드를 훔쳐보고 부인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귀족의 황금색 깃털과 하녀의 터번은 돈에 대한 탐욕을 암시한다. 붉은색은 돈에 대한 욕망을 가리킨다. 얼굴에 빛을 받고 있는 공작은 선을 상징하고, 어두운 얼굴의 사기꾼은 악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풍속화로 당시 민중의 삶을 다뤘다. 17세기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 세 가지 유혹이 여자, 술, 도박이었는데 라투르는 이 세 가지를 한 화면에 담았다.
원제는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지닌 사기 도박꾼’이지만 간단하게 ‘사기 도박꾼’으로 부른다.
가사노동 그 표시 안 나는 고단함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여인들
민족의 명절 추석이다. 선선하면서도 화창한 초가을 날씨가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을 더욱 즐겁게 한다. 그러나 주부들은 풍요로움이 가득한 추석이 반갑지만은 않다. 요즘은 남자가 많이 도와준다고 하지만 명절 기간 내내 힘든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추석 가사 노동의 시작은 장보기다. 필요한 물건을 조금씩만 사도 어깨가 축 늘어질 정도로 무거워 조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주부들은 지친다. 시장을 보고 돌아온 여인을 그린 작품이 장 시메옹 샤르댕(1699~1779)의 ‘시장에서 돌아와’다. 이 작품은 평범한 중산층 여인의 가사 노동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시장에서 닭을 사가지고 온 여인이 탁자에 빵 두 덩어리를 올려놓고 기대어 서 있다. 보자기에 싼 닭과 빵은 장을 봤음을 나타내며, 여인이 머리에 쓴 외출용 모자와 스카프, 그리고 구두는 시장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여인이 탁자에 기대어 선 자세는 시장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와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 여인이 시장에서 사온 닭은 전통적으로 성적 욕망을 암시하는데, 여인의 얼굴이 거실 쪽을 향한 것과 뺨이 붉은 것은 화면 왼쪽의 소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자와 여인의 관계를 암시한다.
바닥에 놓인 그릇과 쓰러진 물병은 가사 노동의 고단함을 나타낸다. 샤르댕은 화면 왼쪽의 문을 반쯤 열어 여러 개 방을 자연스럽게 연결함으로써 공간을 극대화했다.
주부들은 시장에서 힘들게 음식 재료를 사 온 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신선한 음식을 가족에게 먹이려면 서둘러 조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엌에서 여자들이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 빈첸초 캄피(1536~1591)의 ‘부엌의 모습’이다. 그림을 보면 여자들이 주방에서 치즈 혹은 버터를 만들고, 파이를 구우려고 밀가루도 반죽하고 있다. 남자들은 소의 배를 가르고, 쇠꼬챙이에 닭고기를 꽂고 있다.
이 작품에서 여자가 음식을 장만하고, 남자가 고기를 다듬는 것은 주방에서 남자와 여자가 맡은 일을 각각 나타낸다. 주방 안쪽에 보이는 커다란 식탁은 사람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음을 설명하는데, 흰색 테이블보로 덮은 식탁과 식기는 여자가 손님을 초대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주방에서는 지금 잔치음식을 장만하는 중이다. 캄피의 이 작품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교훈적 메시지를 담지 않고 요리와 식재료를 사실적으로만 묘사했다.
주부들이 가사 노동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노동이 고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옛말이 있듯 ‘수고했다’는 말은 노동하는 당사자에겐 큰 힘이 된다. 가족이 이런 말조차 해주는 않는 것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도 가사 노동을 주제로 삼았다. 이 작품은 성서의 한 장면을 묘사했다. 마르타가 집을 방문한 예수를 극진하게 대접하고자 부엌에서 분주하게 일하는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 곁에 앉아 마냥 설교만 듣고 있다. 혼자 부엌에서 일하는 것이 속상한 마르타가 늙은 노파에게 동생이 일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게 그림이 묘사한 내용이다.
마르타는 테이블에 손절구를 올려놓고 절구공이로 마늘을 빻고 있다. 테이블에는 빻기 위해 쪼개 놓은 마늘, 생선 네 마리, 달걀, 그리고 도기 주전자가 놓였으며 늙은 여인이 방 안쪽을 가리키고 있다. 마리아는 부엌 뒤쪽으로 보이는 방에서 예수의 설교를 듣고 있다. 테이블에 놓인 생선은 예수의 설교를 나타내며, 달걀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을 상징한다. 늙은 노파의 손짓은 불만을 토로하는 마르타에 대한 충고다.
전경의 부엌을 어둡게 처리한 것은 어렵고 힘든 가사 노동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마르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명상적이고 종교적인 생활도 중요하지만 여성 노동 또한 가치가 상당하다는 것을 일깨우려는 의도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가 그린 이 작품의 제목은 원경의 설교 장면에서 나왔지만, 그는 17세기 스페인의 평범한 가정을 묘사하고자 부엌 장면을 정면에 내세웠다.
그는 당시 스페인에서 유행하던 ‘보데곤(bodego´n)’방식을 따랐다. 보데곤은 술집이나, 식당, 음식을 배경으로 서민의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그림을 말한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가 보데곤과 종교화라는 서로 다른 장르를 통합해 표현한 최초의 작품이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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