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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박희숙의 미술관] “우리 남편! 돈이 다 아니거든”
바람난 아내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앵그르, 1816년, 캔버스에 유채, 48×39, 파리 샹티이 콩데 미술관 소장(왼쪽). ‘과거와 현재’, 에그, 1858년, 캔버스에 유채, 63×76, 런던 데이트 갤러리 소장(오른쪽). 결혼한 남자는 가족이 자신을 돈 버는 기계로 취급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어다줘야 가족이 행복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아내가 행복을 느끼는 근원은 돈이라 믿곤 한다. 하지만 아내의 행복은 돈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여자는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아내는 사랑을 원한다. 여자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의 결혼 생활을 지옥이라고 느낀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한 여자의 바람기를 그린 작품이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다. 이 작품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3세기 말 이탈리아 라벤더의 말라테스타 가문과 라미니의 다 폴렌타 가문은 상권을 확보하고자 자녀들을 정략 결혼시키기로 합의한다. 그런데 말라테스타 가문은 사돈을 맺으려는 욕심에 당사자인 조반니 대신 동생 파올로를 내세워 프란체스카와 맞선을 보게 한다. 조반니가 절음발이인 데다 못생겼기 때문이다.
파올로의 모습에 반한 프란체스카는 결혼을 하지만 첫날밤에 남편이 파올로가 아닌 조반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프란체스카는 첫눈에 반한 파올로를 잊지 못한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에게 끌렸던 것. 결국 그들의 은밀한 사랑은 발각되고, 조반니는 질투에 눈이 멀어 두 사람의 목을 칼로 베어버린다.
그림을 보면 피올로가 방 안에서 프란체스카의 어깨를 끌어당겨 볼에 키스하고, 프란체스카는 수줍은 듯 고개를 돌리고 있다. 두 사람 뒤로 조반니가 칼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프란체스카가 읽던 책을 떨어뜨린 것은 위급한 상황이 다가옴을 암시한다. 붉은색 드레스는 열정과 두 사람의 죽음을 암시하며 파올로의 칼이 바닥에 꽂힌 것은 방심을 나타낸다.
앵그르는 두 사람의 사랑을 극대화하고자 장식을 없애고 구도를 단순하게 했다. 탁자 위 꽃병에 담긴 백합은 프란체스카의 순결한 마음을 나타낸다.
여자는 사랑해 결혼했더라도 어느 순간 남편에게 무시당한다고 느끼면 아무리 부유해도 불행하다 여긴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도 남들에게 사랑받던 소녀 시절 기억을 버리지 못해서다.
유혹에 넘어간 아내의 인생을 그린 작품이 어거스티스 리오폴드 에그(1816~1863)의 ‘과거와 현재’다. 이 작품은 불륜에 빠진 여자를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한 손에 편지를 들고 의자에 앉은 남자가 거실 탁자에 몸을 반쯤 기댄 채 바닥에 쓰러진 여자를 바라보고 있으며, 탁자 옆에서는 여자아이들이 카드로 집을 짓는다. 남자가 손에 쥔 편지는 아내에게 배달된 연서를 암시하며, 다리를 벌리고 기운 없이 탁자에 몸을 기댄 자세는 불륜을 알아챈 남편의 절망을 의미한다.
여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은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라는 점을 암시하며, 두 손을 꼭 쥔 것은 남편에게 용서를 구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불륜을 경고하는 세 편의 연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극작가인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이 작품에서 아이들이 카드로 집을 짓는 모습은 가정이 깨지리라는 것을 암시하며, 화면 중앙 커다란 거울에 보이는 열린 문은 여자가 가정에서 쫓겨날 운명이라는 점을 나타낸다.
남자는 아내가 집에서 늘 망부석처럼 자신을 기다려준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청상과부는 혼자 살아도 나이 든 과부는 혼자 못 산다는 말도 있듯, 결혼생활이 길수록 남편의 부재를 참지 못한다.
아내는 수녀가 아니다. 아내는 금욕보다 사랑을 원한다. 하지만 남자의 바람과 달리 여자의 바람은 태풍이기에 바람난 여자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예가 많다.
바람난 아내의 극단적 선택을 그린 작품이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1774~1833)의 ‘아가멤논의 살해’다. 이 작품은 신화의 한 장면을 묘사한다.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트로이전쟁 책임자를 맡아 10년 동안 집을 떠난다. 홀로 남은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사촌 아이기스토스와 사랑에 빠진다.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한 아가멤논이 집으로 돌아오자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는 그가 거추장스럽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결국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아가멤논은 침대에 잠들어 있고, 방 밖에는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칼을 들고 서 있다. 침대 아래의 신발, 머리 위 투구와 방패, 그리고 칼은 아가멤논이 무방비 상태라는 것을 암시한다.
칼을 들고 선 클리타임네스트라 뒤쪽의 남자가 아이기스토스다. 그는 남편을 살해하기를 주저하는 여자를 재촉하고 있다. 한쪽 다리로 계단을 밟고 선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자세는 화면의 긴장감을 높인다. 게랭이 커튼을 붉은색으로 칠한 것은 아가멤논의 죽음을 암시한다. 방 안과 밖의 분위기를 서로 다르게 연극적으로 연출한 것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Art | 박희숙의 미술관]
“어떻게 우리 사랑이 변하니?”
버림받은 여인
시간은 사랑을 망가뜨린다. 남자는 여자를 오래 사귀면 처음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와 다르게 집중하지 못한다.
반면 여자는 처음 시작할 때는 시큰둥하지만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는 사랑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것과 익숙한 것에 열망하는 남자, 여자의 본능이 다른 데서 비극이 싹튼다.
바람맞았는데도 사랑에 집착하는 여인을 표현한 작품이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97)의 ‘아, 아마도’다. 이 작품은 만화 이미지를 차용했다.
매력적인 금발의 여인이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귀를 가렸다. 손과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이미지를 나타내는 시각적 표현이다.
말풍선 속 대사가 드러내는 것처럼 그는 ‘왜 자신이 헛되이 기다리는지’를 생각한다. 대사는 그가 남자에게 바람맞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아울러 관람자의 감정 이입을 자극한다.
풍성한 금발머리, 갸름한 얼굴, 붉은색 입술은 만화에서 파생한 전형적 여성 이미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원색의 강렬한 대조, 굵고 강한 검은색 선 역시 만화 이미지를 강조한다.
리히텐슈타인은 1960년대 초반 젊은 여성을 작품에 많이 등장시켰는데 이 작품도 그 시기에 그린 것이다. 그는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면서 만화적 요소를 강조했다. 그리고 만화 원작을 슬라이드 영사기를 이용해 크게 확대한 다음 캔버스에 옮겨 작업하는 방식을 주로 활용했다.
결혼을 앞둔 연인이 헤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돈이다. 여자는 남자 능력을 과대평가하기에 남자의 연봉에 집착한다. 사랑을 양보해도 돈은 양보하기 어려워 헤어짐을 택한다. 사랑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돈은 쉽게 오지 않는다.
‘마리아나’, 로제티, 1868~1870년, 캔버스에 유채, 109×88, 애버딘 미술관 소장(왼쪽).
‘깨어진 맹세’, 칼데론, 1856년, 캔버스에 유채, 91×67,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1828~1882)의 ‘마리아나’는 돈 탓에 버림받은 여자를 표현한 작품.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보복’의 주인공 마리아나를 표현한 것인데, 마리아나는 결혼지참금을 잃어버려 청혼자에게 버림받았다.
마리아나는 수를 놓다 말고 바늘을 손에 쥔 채 생각에 잠겼고, 뒤에 있는 소년은 만돌린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림 액자에 소년이 부르는 노래 가사(키스로 봉한 사랑의 약속은 결국 헛된 키스였구나)가 적혀 있다. 노래는 약속을 저버린 연인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에서 마리아나가 바늘을 손에 쥔 것은 소년의 노래를 들으면서 연인을 떠올린다는 것을 암시하며, 푸른색 드레스는 사랑에 속은 마리아나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로제티가 그린 이 작품의 모델은 정부 제인으로, 제인은 수를 잘 놓았고 예술 감각도 뛰어났다. 로제티는 라파엘로 전파의 한 사람이자 친구인 윌리엄 모리스의 아내 제인과 불륜에 빠져 19세기 영국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제인은 로제티의 후기 그림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데, 그는 제인과의 특별한 사랑을 신화 및 문학작품에 빗댔다.
사랑을 잃지 않고 결혼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항상 새로운 것에 열망하는 남자는 결혼해도 본능에 충실하고자 한다. 반면 여자는 결혼 후에도 자신이 공주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필립 헤르모게네스 칼데론(1833~1898)의 ‘깨어진 맹세’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를 그린 작품이다. 슬픔에 잠긴 여인은 눈을 감은 채 벽에 기대 서 있다. 문 밖에선 남자가 모자를 쓴 여자에게 장미꽃을 건넨다. 장미는 전통적으로 사랑을 상징하는 것으로, 남자와 모자 쓴 여자가 연인 관계임을 암시한다. 벽에 기대 선 여인의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졌다. 발밑에 떨어진 팔찌는 깨진 결혼을 암시한다. 화면 아래에 있는 시든 아이리스도 결혼 파탄을 뜻한다. 아이리스의 꽃말이 잃어버린 사랑이다.
이 작품은 영국 빅토리아시대의 여성 처지를 실감나게 묘사해 대중에게 인기를 끌었다. 칼데론은 이혼하려는 여자에게 경고 메시지를 주고자 이 작품을 그렸다.
영국에서 여성이 이혼할 수 있는 권리를 갖기 시작한 때는 1857년이다. 법이 권리를 제공했으나 여자가 실제로 이혼을 주도하긴 어려웠다. 이혼한 여자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Art | 박희숙의 미술관]
몸과 마음은 훌훌, 사랑은 활활
여름을 즐기는 연인
‘우리는 천천히 일어났다’, 리히텐슈타인 1964년, 캔버스에 마그나와 유채, 173×234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소장.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아스팔트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열기를 내뿜어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더위를 피하고자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곳에서 하루를 보내면 냉방병에 걸려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 더욱 뜨겁고 화끈하게 더위를 만끽해야 한다. 여름 더위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일상을 벗어날 자유 또한 주어지지 않는가. 여름은 축제다. 자유를 최대한 분출할 수 있어서다. 여름휴가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럼에도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 사랑이다. 사랑은 현실이 줄 수 없는 환상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여름만큼이나 뜨거운 사랑을 꿈꾸는 청춘을 그린 작품이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1880~1938)의 ‘해변의 누드 청년과 소녀’다. 이 작품은 젊은이들이 해변에서 벌이는 행동을 과감하게 표현했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벌거벗은 청년이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소녀의 앞을 두 팔을 벌려 가로막고 있다. 소녀는 청년의 행동에 놀라 걸음을 멈추었지만 얼굴을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본다.
벌거벗은 청년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소녀는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키면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암시한다. 또한 청년의 일어선 성기는 남자의 성적 욕망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배경인 우거진 숲은 은밀한 장소라는 사실을 암시하며 두 사람이 성적 욕망을 해결하려 한다는 것을 묘사한다.
키르히너는 피카소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물을 가늘고 뾰족하게 그렸는데 이 작품 역시 이런 특징이 나타나 있다. 키르히너는 발틱 해의 페마른 섬에서 친구 에르나 쉴링과 정기적으로 여름휴가를 보냈고, 그곳의 풍경과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작품도 그곳에서 그린 것으로 ‘실내의 두 나부’라는 작품과 쌍을 이룬다. 키르히너는 캔버스 앞뒤 양면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여름 해변은 낮보다 밤이 더 뜨겁다. 남자 여자 모두 원초적 욕망을 자유롭게 발산하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을 그린 작품이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의 ‘우리는 천천히 일어났다’다. 이 작품은 만화 이미지를 차용해 물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을 단순하게 표현했다. 금발의 백인 남자와 여자가 물속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 눈을 감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머리 스타일만 다를 뿐 눈썹과 입술 형태, 오뚝한 콧날이 비슷하다. 두 사람의 얼굴이 거울 보는 것처럼 닮았다.
굽이치는 물결을 표현한 검은색은 하얀 물방울과 대조를 이루며 노란색이 강하게 돋보인다. 굵고 강한 검은색 선은 만화 이미지를 강조하며, 물결치는 파란색 원색점, 즉 벤데이 점(착색 드로잉 방법을 발명한 삽화가 벤저민 데이(1838~1916)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부른다)은 그림을 인쇄물처럼 보이게 한다.
리히텐슈타인은 대량생산하는 인쇄물처럼 보이게 하려고 벤데이 점을 오랜 시간 일일이 손으로 그려 넣었다. 인쇄물처럼 보이지만 제작 과정이 지난한 그림이다.
벤데이 점은 리히텐슈타인의 창의력을 돋보이게 해주는데, 이전 화가들도 만화에서 특정 장면만 따로 떼어내 예술작품과 결합시키는 수법을 사용했지만, 리히텐슈타인처럼 인쇄기술을 직접 끌어와 만화 이미지를 그대로 살린 화가는 없었다. 리히텐슈타인의 이 작품은 영화의 수중 장면을 클로즈업한 것으로, 화면 옆에 있는 글은 영화에서 음성 같은 기능을 한다. 이 작품에서 말줄임표는 그림 속 두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며 관람자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해변의 사랑은 외모가 먼저다. 사람이 수영복 입은 모습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름답고 몸매가 좋은 여자 앞에는 남자가 줄을 서고 조금 외모가 떨어지는 여자에게는 날파리만 꼬이는 법이다.
해변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놓고 싸우는 남자를 그린 작품이 프란츠 폰 슈투크(1863~1928)의 ‘여인을 놓고 싸우는 남자들’이다. 이 작품은 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자끼리 여자를 놓고 격렬하게 싸우는 것을 묘사했다.
두 명의 남자는 힘을 과시하면서 상대를 제압하고자 온몸이 긴장해 있다. 옆에 서 있는 여자는 싸움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는 싸움의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방관자다. 슈투크의 이 작품은 남자의 동물적 본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여자는 남자의 인생을 망치는 요부다.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서 있는 여자의 자세는 남자를 지배하는 존재라는 점을 나타낸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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