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지연의 그림읽기]
치명적 유혹의 한 마디 “뒤돌아보지 마라”
“뒤돌아보지 마라.”
공포영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포영화에서도 뒤돌아보면 어김없이 귀신이나 살인자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림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뒤돌아보면 사단이 난다.
오늘은 신화 속 금기를 깨고 뒤를 돌아보았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아보려 한다.
아탈란타와 히포메네스
구이도 레니(Guido Reni), 아탈란타와 히포메네스 (Atalanta and Hippomenes),
1630년,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소장
여기 아름다운 공주 아탈란타가 있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아름다우며 빠르고 강한 여전사였으나 딸이 결혼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과 달리 누구와도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왕인 아버지의 끈질긴 설득으로 인해 아탈란타는 달리기 경주를 제안해 자신보다 더 빨리 달리는 남자와 결혼하겠지만 자신에게 지는 남자들은 모조리 죽일 것이라 선언했다.
아름다운 데다 공주라는 신분까지 가진 아탈란타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도전장을 내었지만 그녀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남자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많은 남자들이 경주에 져서 목숨을 잃었지만 이 위험한 경주는 계속됐다. 달리기 경주의 심판을 맡고 있던 히포메네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공주 아탈란타에게 첫눈에 반해 어떻게 하면 공주를 이길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하다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프로디테는 황금사과 3개를 그에게 내려주며 달리기 경주 도중 그녀가 앞지르려 할 때면 이 황금사과를 뒤로 하나씩 던지라고 귀띔했다. 경주가 시작되자 예상대로 히포메네스는 죽을힘을 다해 달렸지만 아탈란타는 금세 그를 따라잡았다.
그때 히포메네스가 첫 번째 사과를 뒤로 던졌다. 그냥 사과가 아닌 금으로 만들어진 사과라니, 공주도 여자였다. 반짝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는 떨어진 사과를 주웠다. 또다시 아탈란타가 따라붙자 히포메네스는 같은 방법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사과를 뒤로 던져 아탈란타를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결국 아탈란타는 뒤돌아보면 안 된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경주에 패배했고, 히포메네스는 승자가 돼 공주를 차지했다.
이탈리아의 화가 구이도 레니처럼 고전미가 넘치도록 인체를 아름답게 묘사한 화가도 드물다. 그의 그림 속 아탈란타와 히포메네스는 옷자락을 나풀거리며 유연한 몸의 선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지금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춤을 추고 있는 것일까. 팔과 다리를 쭉 뻗은 동작은 마치 아름다운 군무를 보는 듯 우아하고 섬세하다. 화면을 꽉 채운 그들의 춤은 완벽한 균형감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하세계로부터 에우디리케를 이끌어내는 오르페우스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Jean-Baptiste Camille Corot),
지하세계로부터 에우디리케를 이끌어내는 오르페우스 (Orpheus Leading Eurydice from the Underworld), 1861년, 미국 휴스턴 미술관 소장
자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해 뒤를 돌아보아 경주에 진 여자의 이야기가 있다면,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뒤를 돌아보아 결국 자신의 것을 영영 잃어버린 남자의 이야기도 있다.
그리스 신화의 그 유명한 오르페우스와 에우디리케의 이야기다.
고요하고 평온한 느낌의 푸른 숲 속,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그림 속 세계는 죽은 자들의 세계다. 흔히 명계는 어두침침한 지옥으로 묘사되지만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는 너무나도 평온한 느낌의 세계를 그려냈다. 망자들이 영원한 휴식을 취하기에 조용한 숲 속처럼 편안한 곳이 있을까. 강 건너의 죽은 자들을 뒤로하고 여기 남녀 한 쌍이 손을 잡고 이 세계를 빠져나오려 하고 있다.
사이좋은 부부였으나 갑자기 뱀에 물려 지하세계로 떠나게 된 아내 에우디리케로 인해 오르페우스는 깊은 슬픔에 빠진다. 그러나 오르페우스가 누구인가. 태양의 신이자 음악의 신 아폴론이 그의 아버지요, 뮤즈 아홉 자매 중 막내 칼리오페가 그의 어머니였다. 부모의 피를 물려받은 오르페우스는 절대 공짜로 강을 건너게 해주지 않는 저승의 뱃사공 카론 영감과 망각의 강 레테는 물론 저승의 신 하데스까지 애달픈 하프소리로 매혹시키고 만다.
명부의 신들마저 감동시킨 오르페우스는 이승으로 나갈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하에 아내 에우디리케를 다시 이승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그러나 지하세계를 거의 다 빠져나와서 오르페우스는 그만 불안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며 아내 에우디리케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고, 결국 에우디리케는 다시 어둠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만다. 슬픔에 미친 오르페우스는 강물에 몸을 던져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명부의 신들마저 감동시킨 오르페우스는 아내 에우디리케를 다시 이승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이승으로 나갈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었다
카미유 코로의 그림 속 오르페우스는 아내 에우디리케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걸음을 내딛고 있다. 아내를 다시 찾은 기쁨에 그의 동작은 힘에 차있고 굳게 잡은 손을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 뒤를 따르는 에우디리케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는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다. 강 건너 지하세계의 신들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어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의 운명은 다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을 놓지 않기 위해 다시 뒤돌아보게 될 것임을 신들은 꿰뚫어 본 것이었을까.
살아가면서 누구나 문득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후회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고, 혹은 한동안 미련으로 주저앉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뒤돌아보는 일이 특히 금기시 되는 이야기가 바로 신화다. 신화 속 주인공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신의 계시를 어기고 자꾸만 뒤돌아본다. 그리고 일종의 징크스처럼 불행이 닥친다. 그럴 걸 알면서 왜 뒤돌아보냐고?
그러나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 뒤돌아보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라. 알면서도 뒤돌아보기에 신이 아닌 인간이고, 그렇기에 삶은 예측 불허가 아닌가.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나아가기엔 우리네 인생엔 너무 많은 추억과 유혹이 함께 있으니.
[강지연의 그림 읽기]
명화 속 바람피우는 신들의 다양한 모습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자유분방한 연애로 화가들에게 다양한 작품 소재를 제공했다.
성경 이야기만큼이나 명화 속에 많이 등장하는 주제인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에 대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 보자. 현대사회에서도 자유연애가 성행하고 있지만 이 신화 속 고대 신들만큼이나 자유롭게 연애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양다리에 불륜은 물론이고 신의 힘을 빌려 인간과의 로맨스도 자주 이루어졌으니 자식들도 엄청 나서 나중에 족보 구성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오늘날 간통죄가 합헌인지 아닌지를 놓고 논쟁하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현재까지 법적으로 무죄(?)인 신들도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연애라면 단연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를 빼놓을 수 없겠다. 아름다운 미모로 주변에 남자가 끊이지 않았던 비너스. 그녀에게도 남편이 있었다. 남편을 두고 바람을 피웠던 그녀에게는 어떤 속사정이 있었는지 신화 속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불카누스의 대장간> (The forge of Vulcan),
1630년,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아내가 바람났다. 그런데 그 사실을 누군가 와서 알려준다면. 그때의 기분이 과연 어떨까.
그리스 신화에서 유명한 이야기인 이 대장간의 장면을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그림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그림 속 남자들은 모두 웃통을 벗고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다. 쇠를 벌겋게 달구고 두드리며 구슬땀을 흘리던 그들에게 머리 위로 후광이 비치는 누군가가 나타나 말을 건다.
그의 말을 듣고 모두가 놀랐지만 역시 가장 놀란 사람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마치 그의 분노와도 마찬가지로 시뻘겋게 쇠를 달구고 있는 대장간의 주인 불카누스다. 그가 방금 들은 말은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원래 불카누스는 모든 신들의 왕 제우스와 여왕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비너스의 그리스 식 이름이 아프로디테인 것처럼, 대장간의 신 불카누스 역시 그리스 식 이름인 헤파이스토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태어날 때부터 미남, 미녀인 다른 신들과는 달리 그는 추남에 절름발이였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어머니인 헤라마저 얼굴을 찌푸리며 그를 버렸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서까지 버림받은 남자. 그런데 추남인 불카누스에게도 뛰어난 재능 한 가지가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강력한 무기와 갑옷을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였는데,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스가 입었던 갑옷 역시 불카누스가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불카누스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대장간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었다. 겉보기에 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황금 의자를 만들어 어머니 헤라에게 보낸 것이다. 이 의자는 사실 무서운 함정으로, 일단 앉으면 일어설 수 없도록 하는 장치가 돼 있었다. 어머니 헤라는 의자에 앉아 꼼짝할 수 없게 되고 나니 아들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인 비너스를 아내로 삼게 해달라는 아들. 결국 불카누스는 비너스와 결혼하게 된다(사실 불카누스의 출생과 결혼에 얽힌 이야기는 여러 설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각색돼 이것과 좀 다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억지로 한 결혼, 그것도 추남에 절름발이와 한 결혼생활이 행복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비너스는 소문난 미남 킬러였다. 묵묵히 대장간 일에 열중하는 불카누스에 만족하지 못한 비너스는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중 젊고 늠름한 전쟁의 신 마르스(그리스 식 이름은 아레스)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만났는데, 심지어 불카누스가 땀 흘려 대장간에서 일하는 동안 집으로 마르스를 끌어들여 밀회를 즐겼다.
그림 속 장면은 이를 보다 못한 태양의 신 아폴론이 대장간으로 가서 불카누스에게 “지금 당신 아내가 전쟁의 신 마르스와 함께 당신 집 침대에서 뒹구는 중이네”라고 폭로하는 것이다. 태양의 신답게 머리에 후광이 비치는 아폴론.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고 있는 불카누스는 얼굴이 좀 나이 들어 보이긴 하지만 대장장이답게 근육질의 몸매를 하고 있다.
스페인의 궁정 화가 벨라스케스는 이 드라마틱한 장면에서 대장간 안의 작은 물건들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이야기에 더욱 긴장감을 부여했다. 그들이 다루고 있는 쇠나 선반 위 물병의 반질반질한 윤기는 감탄할 만한 표현이다.
아침 TV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은 이 장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가.
불카누스는 자신의 집에 특수한 그물침대를 제작해 갖다 놓았다. 비너스와 마르스가 이 침대에 눕는 순간 보이지 않는 그물에 얽혀 꼼짝달싹 못하게 되자, 불카누스는 다른 신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 알몸으로 뒤엉킨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창피를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비너스가 마르스와 앞으로는 대놓고 당당하게 바람을 피울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비너스와 마르스>
(Venus & Mars), 1483년,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 속 비너스는 연인 마르스와 함께 있다. 불륜관계에도 불구하고 둘은 전혀 부정해 보이거나 육체적으로 서로에게 탐닉하는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림 속 비너스와 마르스는 그저 평온한 한 때를 함께하는 사랑하는 남녀의 모습일 뿐이다. 누드가 아닌 얇고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비너스는 기품과 아름다움이 넘치고, 살짝 잠들어 있는 연인 마르스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달콤한 잠에 빠져있는 군신 마르스는 투구와 무기, 갑옷을 내려놓고 무장해제 돼 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딜 봐도 바람피우는 것 같지 않은 두 남녀. 남편인 불카누스가 보면 한참 열 받을 그림이다. 보티첼리는 왜 이 둘의 관계를 고상한 그림으로 나타냈을까. 바로 보티첼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에 답이 있다.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사랑의 위대한 힘으로, 사랑의 신 비너스와 전쟁의 신 마르스의 관계를 통해 부드러움이 무력을 이긴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비너스는 옷을 입고 있지만 마르스는 옷을 벗고 있다. 차가운 바람은 외투를 더 단단히 여미게 하지만 따뜻한 햇살은 외투를 벗게 하는 법. 사랑의 힘은 위대한 것이다. 그들 주위를 장난꾸러기 사티로스들이 무기를 들고 장난치고 있어 그림의 분위기가 더욱 평화롭게 느껴진다.
아무튼 비너스와 마르스가 함께 있는 그림은 세속적이거나 관능적인 그림이 많지만, 이 그림은 유독 그들의 관계를 사랑으로 묘사한다. 보티첼리는 이 그림을 결혼식 선물로 의뢰받아 제작했기 때문에 더욱 사랑의 의미를 강조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결혼이란 제도가 두 남녀 간의 신실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그림이 결혼선물로 적합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베첼리오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다나에와 금빛 소나기>
(Danae and the Shower of Gold), 1554년,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사실 신들의 바람기를 이야기할 것 같으면 모든 신들의 왕인 제우스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여성 편력을 살펴보면 아내인 헤라가 질투의 화신이 된 것도 이해가 간다.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아름다운 여인이라면 일단 건드리고 보는 제우스. 때로는 헤라의 눈을 피해 여러 모습으로 변신도 마다하지 않는데, 그의 눈에 어느 날 미모의 공주 다나에가 들어온다.
아르고스의 왕이었던 다나에의 아버지는 언젠가 딸이 낳은 손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딸을 높은 탑에 가두어 놓아 남자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했다. 그러나 제우스는 황금 구름으로 변해 탑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이는 탑으로 접근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아내인 헤라의 눈을 피해 바람을 피우기 위한 변신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거장 베첼리오 티치아노는 제우스가 변신한 구름이 금빛 소나기를 뿌리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그림 속 침대 위에 누드로 누워있는 여자가 공주 다나에다. 그녀의 곁에 있는 늙은 유모는 큐피트의 역할을 대신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금빛 소나기를 천을 들고 받아내고 있다.
이는 상당히 에로틱한 표현이다. 금빛 소나기는 남성의 정액을 상징한다. 다나에가 침대 위에 옷을 벗고 누워 금빛 소나기를 맞고 있는 장면은 바로 그녀와 제우스의 정사를 의미한다. 다나에는 이로 인해 제우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손자가 자신을 죽일 거란 신탁을 들었던 왕은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지만 제우스가 자신에게 벌을 내릴까 두려워 다나에와 아이를 함께 궤짝에 넣어 바다로 흘려보낸다.
세리포스 섬으로 흘러간 궤짝을 한 어부가 발견했고, 다나에와 아이는 그곳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의 미모 때문에 그곳의 왕 역시 다나에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 그녀의 아들 페르세우스가 결혼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 이리저리 궁리하다 결국 왕은 페르세우스에게 무시무시한 괴물 메두사의 목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페르세우스가 우여곡절 끝에 메두사의 목을 가지고 돌아와 보니 왕이 결혼하자고 다나에를 괴롭힌 탓에 어머니 다나에는 어디론가 도망가 숨어 살고 있었다. 화가 난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목으로 왕을 돌로 만들고 다시 어머니를 찾아 나선다.
어머니인 다나에를 만난 그는 다시 외할아버지가 있는 고향 아르고스로 돌아가는데, 외할아버지는 손자가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려워 아르고스에서 도망친다. 후에 원반던지기 경기에 참가한 페르세우스가 자신이 던진 원반이 관중석으로 날아가 관중 한 명이 맞아 죽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데, 그 사람은 바로 허름한 옷을 입고 있던 자신의 외할아버지였다. 이로써 예언은 이루어졌다.
거장 티치아노는 이 관능적인 주제에 매혹돼 다나에를 소재로 세 번이나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에 얽힌 일화가 하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또 하나의 위대한 화가 미켈란젤로가 이 그림을 본 뒤 티치아노에게 가서 경의를 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방을 나온 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티치아노의 기법에 대해 혹평했다고 한다.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을 남편과 다른 사람들에게 목격당하고도 꿋꿋한 여자나 어떻게든 바람을 피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남자. 신화 속의 신들은 지극히 인간적이지만 확고한 자유연애주의자들이기도 했다. 아침 드라마 속 불륜 이야기를 욕하면서도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보는 것처럼 그들의 이러한 이야기 역시 신화에 사람들이 더욱 흥미를 가지게 하는 양념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 그리고 인간이 그려낸 그림 속 신들의 모습은 당연하게도 인간과 닮아 있다. 화가들은 그래서 더욱 이러한 주제들을 오랫동안 그려오지 않았을까. 그림을 보며 다시 한 번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아침 드라마보다 더 리얼한 명화 속 불륜 이야기
지난 호에서 ‘명화 속 바람피우는 신들’이란 주제로 신들의 자유분방한 연애를 다루었는데, 사실 식상하긴 해도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불륜만큼 다양한 소재로 쓰인 것이 없다.
더구나 아침 TV 드라마에서 울고불고 소리치는 그 장면과 달리 명화 속 불륜 장면들은 얼마나 섬세하게 예술로 승화해 표현됐는지. 오늘은 아침 드라마보다 더 노골적이고 리얼한 불륜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그림들을 소개한다.
야코포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
<비너스와 마르스를 놀라게 하는 불카누스> (Vulcan surprising Venus and Mars),
1555년, 뮌헨 알테피나코텍 소장
그림 속 침대에 누워 있는 비너스의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남자는 대장간의 신 불카누스다. 이 주제는 지난달에 소개한 적이 있다. 추남 대장장이인 불카누스가 어머니 헤라를 협박한 끝에 미의 여신 비너스와 결혼하지만, 불카누스에게 만족하지 못한 비너스는 잘생기고 늠름한 전쟁의 신 마르스와 바람을 피운다는 이야기였다.
비너스와 마르스는 막 침대 위에서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인 불카누스가 들이닥치자, 당황한 마르스는 탁자 밑으로 숨어 들어간다. 그림 오른편에 삐죽 나온 마르스의 머리가 보이시는지.
머리에 쓴 투구로 그가 군신 마르스라는 것을 알 수는 있지만, 바닥에 납작 엎드려 개와 눈이 마주치자 혹시라도 개가 짖는 바람에 숨어 있는 곳이 들통 나 불카누스에게 봉변을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마르스라니. 군신이라는 타이틀에 전혀 걸맞지 않는 장면이다.
시치미를 떼고 누워 있는 비너스는 이불을 번쩍 들어 보이며 “자, 보세요. 아무것도 없죠”라고 말한다. 그러나 남편 불카누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불륜의 무대가 된 침대에서 마르스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찾아낼 요량으로 계속 뒤져보고 있다. 비너스의 은밀한 곳까지 뒤져보는 불카누스의 캐릭터가 아침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의심과 복수로 뭉친 남편의 캐릭터와 닮지 않았나.
갑자기 들이닥친 남편과 시치미를 떼고 누워 있는 아내, 침대 밑에 숨은 정부라니 그야말로 스릴만점의 시청률 최고조 장면이다. 그들 뒤로 누워 있는 큐피트는 비몽사몽 거의 잠이 들어 제대로 망을 봐주지 못했나 보다.
이 그림을 그린 야코포 틴토레토는 베네치아 화파의 대표적인 화가였다. 그림 속 화려한 실내 인테리어의 표현이 멋진 배경을 완성한다. 바닥 타일이나 침대의 무늬, 창가에 놓인 유리병 등의 표현이 거장답게 예사롭지 않다. 불카누스의 등 뒤에 비친 거울 속 그들의 뒷모습도 재미있다. 비너스와 불카누스, 그리고 큐피트의 몸을 보면 유난히 길어 보이는데, 인체를 길어보이게 표현하는 것은 틴토레토의 전형적인 기법이기도 했다. 그는 대가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제자였으나 일찍 스승과 결별했고, 위 그림에서 보듯 다소 거친 느낌의 표현으로 드라마틱한 구성을 즐겼다.
신화 속 인물들의 불륜은 화가들에게 현실 세계에서의 사랑과 욕망에 관한 영감을 제공했다.
안토니오 코레조(Antonio Correggio), <제우스와 이오>(Jupiter and Io),
1530년,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이처럼 관능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그림이 또 있을까. 마치 솜털같이 부드러워 보이는 검은 구름이 여인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고 돈다. 여인의 흰 피부와 검은 구름의 대비가 그림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힌 여인의 표정은 황홀경에 빠진 듯하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장면은 사실은 아름답지 못한 불륜의 장면이다.
신들의 왕이었던 제우스는 어느 날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이오에게 사랑을 속삭이지만 이오는 달아나고, 욕망을 주체할 수 없었던 제우스는 이오를 쫓아 땅으로 내려와 검은 구름으로 변신해 이오를 감싸고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이오의 얼굴 바로 위의 구름 속에서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있는 제우스의 얼굴이 보인다. 그러나 질투심 많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만다.
한낮에 갑자기 낀 먹구름이 수상해 살펴보니 제우스가 이오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헤라에게 들킨 제우스는 이오를 흰 암소로 둔갑시켜 위기를 모면케 하지만, 헤라는 시치미를 떼고 그 암소를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한다. 할 수 없이 제우스는 헤라에게 암소로 변한 이오를 넘기고 헤라는 눈이 백 개 달린 거인 아르고스에게 이오를 지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사랑하는 여인이 고통받는 것이 괴로웠던 제우스는 아들인 헤르메스를 보내 아르고스를 잠재워 죽이고 이오를 풀어주게 한다. 죽은 아르고스가 불쌍했던 헤라는 아르고스의 눈을 공작의 꼬리에 붙여주었고, 그 후 공작의 꼬리에 달린 눈들은 항상 제우스를 감시하며 그가 바람을 피우는지 살폈다고 한다.
그러나 헤라의 질투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헤라는 도망친 이오를 괴롭히기 위해 한 마리의 등에를 보냈고, 이오는 이를 피해 전 세계를 도망 다녀야 했다. 이오가 헤엄쳐 건넌 바다는 이로 인해 ‘이오니아 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제우스는 헤라에게 앞으로 이오와의 관계를 끊을 테니 그녀를 용서해 달라고 애걸했고, 헤라는 제우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윽고 이오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해주었다. 이혼법정을 다룬 TV 드라마 <사랑과 전쟁>도 이처럼 드라마틱하진 못했으리라.
불륜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우리가 늘 일상적이지 않은 일탈을 마음속으로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의 일탈이 현실이 된다면 그림 속 마르스나 이오처럼 매우 피곤한 신세가 되고 만다. 그림 속 이야기로 흥미를 달래고 2012년은 각자의 가정에, 배우자에게 더욱 충실한 한 해가 되시길 바란다.
'서 양 화 (명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박희숙의 미술관 / 바람난 아내.버림받은 여인. (0) | 2013.11.11 |
---|---|
[스크랩] [Art | 박희숙의 미술관] 키스 , 천국에 가는 시간, 목욕하는 여인. (0) | 2013.11.11 |
[스크랩] 상처 입은 남자. 귀스타브 쿠르베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 (0) | 2013.11.11 |
[스크랩] [강지연의 그림읽기]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 (0) | 2013.11.11 |
[스크랩]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12) 고흐 ‘슬픔’ (0) | 2013.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