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양 미 술 자 료

[스크랩] 少年行. 이백(李白) / 조정육 미술사가.

bizmoll 2013. 11. 1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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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詩에 빠지다

 

소년이 백마 타고 호희의 술집으로 들어가네

 

소년의 나들이 즐거움(少年行)

이백(李白)

 

오릉의 소년들 금시 동쪽을 지날 때(五陵年少金市東)
은안장 백마 타고 봄바람을 가르네(銀鞍白馬度春風)
떨어진 꽃 짓밟고서 어디로 놀러가나(洛花踏盡遊何處)
웃으면서 들어가니 호희의 술집이네(笑入胡姬醉肆中)

 

 

이인문, <소년행락>, 비단에 연한 색, 21×27.5cm. 간송미술관

 

 

꾀꼬리가 운다. 송화가루가 흩날린다. 지난 밤 험한 비에 홍매화가 뚝뚝 지더니 청명한 봄바람에 복사꽃이 팍팍 핀다. 덩달아 강물이 붉어진다. 일찌감치 봄비에 머리 푼 실버들이 춘정을 핑계 삼아 뻐꾸기를 유혹한다.

천금으로도 못 살 이 좋은 봄날에 유혹을 이기 못하는 생명이 어디 뻐꾸기뿐이랴. 곱게 차려입은 젊은이가 말을 몰고 오릉으로 나왔다. 오릉은 장안에 있는 한(漢)나라 다섯 황제의 능이 있는 곳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멋쟁이들이 판을 치는 금시(번화가)에 행차하는데 기왕이면 간지나게 제대로 꾸미고 길을 나섰다.

은안장에 백마를 탔으니 이 정도면 여인네들의 눈길을 사로잡을만하지 않겠는가. 설레임으로 달리는 말발굽에, 바닥에 떨어진 꽃이파리가 어지럽다. 이마에 땀이 흥건히 배이도록 달려 도착한 곳은 호희의 술집. 이국적인 여인들이 술과 노래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이백(李白·701~762)의 시 ‘소년행(少年行)’을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인문(李寅文·1745~1821)이 붓으로 형상화했다. 화면의 중심에는 봄 기운에 마음이 들뜬 젊은이가 말을 달리며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게 보인다. 화면은 온통 봄색이다.

혈색 좋은 복사꽃과 버드나무가 강줄기를 따라 끝없이 심어져 있다. 푸르스름한 산 아래 보이는 금시(번화가)가 젊은이가 가고자하는 술집이 있는 곳이리라. 금시에 있는 호희(胡姬)의 술집에 가면 푸른 눈의 이국적인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젊은이의 마음이 바쁘다. 
   
   
은안장에 백마 타고 젊은이가 찾아간 곳
   
이인문은 산뜻한 봄날의 정경을 그리면서 나무가 만들어놓은 공간 안에 주인공을 배치하는 전통적 구도를 활용했다. A4용지만 한 크기의 화면이 별로 좁다고 느껴지지 않은 것은 전경(前景)과 후경(後景) 사이의 수면을 넓게 비워 놓았기 때문이다. 경물(景物)의 배치도 안정감을 고려했다. 버드나무와 복사꽃으로 무게가 기울어지지 않도록 인물을 그리면서 다리를 세웠다. 다리는 시에는 등장하지 않는 보조장치다.

시의도(詩意圖)는 시를 소재로 그린 그림이지만 시 자체에 매달려 끌려가는 그림은 아니다. 언어가 평면으로 변환될 때의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고려한 후 그려진다. 시에는 시의 언어가 있듯 그림 또한 그림만의 시각 언어가 있다. 화가는 시에서 읽은 시의(詩意)를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로 화폭에 옮긴다. 감상자가 그림에서 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색채와 경물을 통해 시의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이 그림의 화제(畵題)인 ‘소년행락(少年行樂)’은 운수산초(雲水山樵) 배성식(裵成植)이 이백의 시 ‘소년행’을 그림 옆 별지(別紙)에 적어 놓아서 붙여지게 되었다. 배성식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이백의 시를 곁들였다고 해서 이 그림이 이백의 시를 그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림 속에는 ‘고송유수관도인’이라는 이인문의 호만 적혔을 뿐 다른 아무런 화제도 적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김홍도(金弘道·1745~?)가 그린 ‘소년행락’과 친연성이 있어 혹시 배성식이 자의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닐까 의심된다. 김홍도의 ‘소년행락’은 이인문의 작품과 흡사한 소재를 그렸으면서도 화제는 다른 작가의 것이기 때문이다.
   

 

김홍도, <소년행락>, 종이에 연한 색, 26×21.8cm, 간송미술관

 

   
장대에서 버들을 꺾다
   
수양버들 두 그루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앞쪽의 나무는 조금 진하게, 뒤쪽의 나무는 조금 성글게 그려 변화를 주었다. 능청거리는 수양버들 아래 백마를 탄 젊은이를 배치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인물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버들가지와 들풀은 진한 연두색으로 그려 봄날의 정취를 드러냈다.

같은 듯 다른 미묘한 봄색의 차이를 크고 작은 태점으로 그렸다. 나무에 썼던 짙은 검은색은 백마의 말갈기와 꼬리를 거쳐 ‘춘일로방정(春日路傍情)’이라는 화제(畵題)를 쓰고 나서야 마무리되었다. 그림은 이인문의 ‘소년행락’과 비슷한데 화제는 아니다. 김홍도는 누구의 시를 화제로 삼았을까. 시를 살펴보자. 

   
‘산호 채찍 버리니(遺却珊瑚鞭)
백마가 가지 않네(白馬驕不行)
장대에서 버들을 꺾으니(章臺折楊柳)
봄날 길가의 정취로다(春日路傍情)’

 

 

이 시는 당 시인 최국보(崔國輔)의 ‘소년행(少年行)’ 마지막 구절이다. 장대(章臺)는 한(漢)나라 때의 거리(街) 이름으로 술집이 많은 동네로 유명했다. 이백의 시에서 언급한 호희의 술집과 같은 의미다. 산호 채찍을 들 만큼 부유한 집 자제들이 채찍 대신 버들가지를 꺾는다. 버들가지는 술집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심어놓은 나무다. 그 버들가지를 꺾었다니 의미심장하다. 김홍도는 그림 속에 말을 탄 젊은이가 버드나무 곁을 지나는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장대가에 와 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림만으로는 젊은이가 장대가에 와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승마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애매함을 일시에 해결해주는 것이 ‘春日路傍情’이라는 화제다. ‘봄날 길가의 정취’라는 시구절을 적어 놓자 평범해 보이던 버들가지는 젊은이를 향해 유혹하듯 흐느적거리는 장대가의 질탕함을 상징하게 된다. 그 유혹이 얼마나 강했으면 봄날만 되면 젊은이를 불러들여 버들을 꺾게 할까. 감히 거절할 수 없는 독한 유혹을 김홍도는 버드나무와 화제에 진한 색을 칠해 표현했다. 화제 한 구절로 그림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노련한 계산이다. 시보다 더 시적인 그림이다.

 

김양기, <춘일로방정>, 종이에 연한 색, 32.4×23.7cm, 간송미술관

 

 

아버지보다 못한 아들

 

긍원(肯園) 김양기(金良驥:1793-?)도 김홍도의 <소년행락>과 똑같은 화제의 그림을 남겼다. 김양기는 김홍도의 아들로 아버지를 따라 도화서 화원을 지냈다. 김양기는 김홍도가 연풍현감에 부임하여 상암사(上菴寺)에서 기도를 올린 후 얻은 아들이다. 김홍도가 48세라는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김양기는 아버지에게 직접적으로 그림을 배웠다기보다는 아버지의 그림을 임모하면서 스스로 그림공부를 했으리라 추측된다. 그 결과 그림 속에 내재된 정신의 깊이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하고 외형적인 묘사만 배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 위험성을 아버지와 똑같은 화제를 쓴 <춘일로방정(春日路傍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두 그루 수양버들 사이에 두 마리 까치가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버드나무는 두 줄로 윤곽선을 긋고 속을 담묵과 농묵을 곁들여 칠한 간일한 모습이다. 밑부분을 생략해서 까치가 있는 부분의 버드나무를 클로즈업한 느낌이다. 봄날의 서정을 전하고자 한 작품이다.

 

그런데 김양기의 작품은 최국보의「소년행」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평범한 ‘봄날 길가의 정취’를 그렸을 뿐이다. 아버지가 그린 <소년행락>의 버드나무를 보고 그렸지만 그 버드나무는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꺾어대는 장대가의 버드나무가 아니다.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버드나무다. 이것은 김양기가 시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섣불리 붓을 든 결과다. 이인문과 김홍도가 굳이 그림 속에 말 탄 인물을 넣고자 고집했던 이유를 김양기는 너무 쉽게 생각해버렸다. 그냥 봄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면 되지 않을까. 봄날 길가의 정취인데.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김양기는 최국보의 시를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그림 속에 있는 화제를 보고 단순히 봄날을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하여 화제만 따와서 자기식의 그림을 그렸을 지도 모른다. 이 경우, 그림의 원전(시)이 가진 의미는 사라지게 되어 ‘시의도(詩意圖)’가 아닌 단순화 화조화가 된다. 김양기는 아버지의 정신이 아닌 겉모습만 배웠다.

 

그의 <춘일로방정>은 아버지의 두 작품, <소년행락>의 화제에 <마상청앵도>의 그림 일부를 합성해놓은 것 같다. 김홍도와 김양기가 자신들의 작품에 똑같은 화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후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그림 제목을 붙인 것은 대단한 식견이 아닐 수 없다. 김홍도의 작품에는 최국보의 <소년행>을, 김양기의 작품에는 소년행인 지 아닌 지는 확실치 않은 ‘봄날 길가의 정취’를 제목으로 붙였다.

 

 

 

(참고도판)김홍도, <마상청앵>, 종이에 연한 색, 117.2cm×52cm. 간송미술관

 

 

누가 다른 사람의 그림을 표절했을까

 

이인문과 김홍도의 <소년행락>을 살펴 본 사람은 의문이 들 것이다. 서로 다른 시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두 그림이 비슷하다. 그렇다면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고 표절하지 않았을까. 만약 표절했다면 누가 했을까. 이인문일까. 김홍도일까.

이인문과 김홍도는 나이가 같은 동갑이었고 친한 친구였다. 둘 다 자비대령화원으로 당시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들이었다. 그들은 공인으로써 궁궐에 필요한 그림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친한 친구로써 함께 어울리며 주문받은 그림을 그렸다. 마성린(馬聖麟·1727∼1798이후)이 쓴 『안화당사집(安和堂私集)』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별제 김홍도, 만호 신한평, 주부 김응환, 이인문, 한종일. 이종현 등의 명화가들이 중부동 감목관 강희언의 집에 모여 공사간(公私間)의 주문에 응했다. 이때 볼 만한 것이 많고 내가 또 평소 그림을 좋아하는지라 봄부터 겨울까지 왕래하며 깊이 완상하고 화제를 적기도 했다.”

 

한국회화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기라성같은 화가들이 한 집에 모여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들에 의해 조선 후기 회화사의 한 페이지가 채워졌다. 그들은 행여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빼앗길까 봐 숨어서 작업하지 않고 함께 모여서 그림을 그렸다. 서로의 작품을 보면서 자극을 받으면서 영감도 얻었을 것이다. 이제 이인문과 김홍도의 <소년행락>이 제작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의 작품을 표절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표절은 없었다. 이백과 최국보가 같은 제목의 시를 썼듯 이인문과 김홍도도 같은 화제로 그림을 그렸다. 같은 소재로 쓴 시가 비슷하면서도 다르듯 그림 또한 마찬가지다. 이인문은 이백의 시에서 떨어진 꽃을 짓밟을 정도로 급히 가는 인물에 꽂혀 붉은 꽃을 그렸다.

김홍도는 최국보의 시에서, 장대에서 버들을 꽂는 모습에 꽂혀 버드나무를 크게 부각시켜 그렸다. 비슷한 것 같은데 자세히 보니 다르다. 그러고 보니 이인문의 그림 옆에 이백의 시를 적어놓은 운수산초 배성식이야말로 시와 그림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아닌가. 그림을 깊이 보는 즐거움이 호희의 술집을 찾는 젊은이의 들뜸 못지 않다.

 

오랫동안 귀기울이며 들어야 조용히 속삭여주는 옛그림 읽기의 설레임.

이 맛 때문에 옛그림읽기의 순례를 멈출 수 없다.

 

 

 

조정육의 행복한 그림읽기 < /P>

http://blog.daum.net/sixgardn/

 

 

 

 

 

 

折楊柳(절양류) /이백(李白)

 

버들가지 꺾으며

 

垂楊拂綠水(수양불녹수) : 늘어진 버들가지 녹수를 스치고
搖艶東風年(요염동풍년) : 동풍불 때 요염하게 흔드네
花明玉關雪(화명옥관설) : 꽃은 피어 환한데 옥관에는 눈오고
葉暖金窗煙(섭난금창연) : 잎은 따뜻하니 금빛 창문에 아른거리네 .
美人結長想(미인결장상) : 미인은 긴 그리움에 맺혀
對此心淒然(대차심처연) : 이를 보니 마음이 쓸쓸하다.
攀條折春色(반조절춘색) : 가지를 잡고 봄빛을 꺾어
遠寄龍庭前(원기룡정전) : 멀리 용정 앞으로 부쳐 보낸다.

 

窗 창. 굴뚝 창.窓의 本字

折楊柳라는 題의 시가 많다. 거의가 艶詩(사랑시)다.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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