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양 미 술 자 료

[스크랩] 구스타브 쿠르베의 [오르낭에서의 매장]

bizmoll 2009. 1. 20. 16:24



쿠르베, [오르낭에서의 매장]A Burial at Ornans
1849-50,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돌깨는 사람들]과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오르낭에서의 매장] 또한

사실주의자 쿠르베의 면모가 잘 드러난 걸작이다.

이 작품은 오르낭의 고향집 다락방에서 제작한 대작으로,

이를테면 사실주의의 선언서 같은 작품이다.
원제가 "군중도, 오르낭에서의 매장에 대한 역사적 평가"인 이 작품은

평범한 시골 사람들의 일상을 위대한 역사화 형식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당시 미술 애호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뭐 이런 걸 소재로해서 그림을 그린사람이 화가 맞아?)

길이가 6미터가 넘는 이 그림은 그 크기만으로도 관객들에게

뭔가 위대하고 거창한 혹은 이상적인 이야기를 전해주리라 지레 짐작하게 했다.

역사화라는 것이 전부 종교적 신화적 혹은 역사적 영웅들의 활약상을 그린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그림을 마주한 당시의 프랑스 관객들은

자신이 알고 있거나 기릴 만한 영웅이 그림에 단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내용 자체가 평범한 촌부들의 평범한 일상사라는 것을 알고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농사나 짓던  촌놈 하나 죽은걸 가지도 이렇게 크게 그려도 되나?)  

죽은 사람이 뭔가 위대한 일을 하다 죽었다든지,

죽은 영혼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 신의 영광을 찬미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 죽었으니 묻고 슬퍼한다는 평범한 내용이었기에

관객들은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렇게 현실을 냉철하게 묘사하면서 쿠르베는 이렇게 말했다고한다.


"사실주의란 다른그 무엇이 아니다. 오로지 이상을 거부하는 것일 뿐이다. "
죽음이라는 자연적 현상과 그것을 슬퍼하는 사회적 현상을 넘어

이상화 신비화 하거나 도덕적 교훈부터 찾는 것은

현실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 쿠르베의 생각이었다.

촌부의 죽음이 영웅의 죽음보다 못하다고 볼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에게 화가란 정직하게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그리는 이였다.

 이처럼 전통적인 관념의 이술가가 아니라 냉정한 해부학자의 시선으로 사실을 표현한 까닭에,

그가 죽은 뒤 [오르낭에서의 매장]이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갈 때 "[매장]을

루브르에 들이는 것은 모든 미학에 대한 부정" 이라는 격렬한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미술사가들은 쿠르베의 그런 태도를 자기 시대의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 애쓴, 진실로 근대적인 투쟁으로 보고 있다.

출처 : 아름다운 미술관(전 5060 미술관)
글쓴이 : 5060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