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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요셉 보이스 - 그 치열했던 삶의 흔적

bizmoll 2009. 1. 20. 15:55

 

 

JOSEPH BEUYS 1921~1986

 

 

요셉보이스 , 그 치열했던 삶의 흔적

 

 

 

 

그의 작업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작업이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작업의 범주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요셉보이스의 작업은 현대미술을 공부하면서 최초로 이해가 가능했던 것 같다. 때문에 요셉 보이스가 나의 작업행보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큐브C에서 했던 소장전이 었던 전시회에서 봤던 ‘지도의 우화’는 당시 나에게 큰 임팩트를 안겨다 주었다. 그 때 한창 절제된 표현이란 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대미술의 이해에 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시기였다. 지도의 우화 경우는 그 작업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이해 할 수 있었다. 그 것은 보이스 자신의 인생을 나타내는 작업이 었다. 1946년까지 소련땅에서 포로로 잡힌 그의 험난한 인생경로를 느낄수 있었다 할 수 있겠다. 이 것은 내가 그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럼 지금 현대미술을 이해하지못해서 고민 하고있단 말은 결국 그만큼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이다. 결국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이때의 경험을 계기로 요셉 보이스를 주의 깊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Joseph Beuys, the pack, 1969

 

 

요셉 보이스는 과거부터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조금 드라마틱한 그의 인생은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나치 비행사였던 그가 적국의 한복판에 떨어지고 그 곳 원주민의 토속적인 방법에 의해 구사일생했다는 이야기는 참 매력적으로 다가 온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하여 인생이 뒤바뀌었다는 것을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 의 작품엔 토속적인 샤머니즘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 그 같은 인생경험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세계는 이성주의에의 비판. 근대에 있어 예술은 이성이나 과학으로 이루어진 여러 체계들을 비판의 눈초리로 바라보려 하였다. 이는 내가 의도하고자 하는 작품의 관점과도 매우 비슷하다.(예전부터 사이버 펑크에 관한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었음)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주제는 현대문명에 관한 냉철한 시각이다. 그 안에는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역사,정치,사회등등...무궁무진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요셉 보이스 역시 무한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 의 작업은 다분히 메타포적이다. 반면에 나의 작업엔 메타포가 부족하다. 요셉보이스의 작업은 현재 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뭔지 지적하고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이에 좋은 예가 1969년에 한 작업인 '포장'을 들수 있겠다. 그는 이 작품으로 단순한 설치물을 넘어 생생한 상황을 만들어 냈다. 마치 특공대의 작전같은 유랑모험을 위한 생존 설비 일체. 조용히 미끄러져 공간속으로 퍼져나가는 용구들. 평론에 따르면 이 연극적 무대장식은 미적관습 저 너머에서, 첩보기관의 지루한 일상이나 전체주의적인 억압을 기꺼이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그리고 입문의식의 긴장감과 감동을 자아낸다고 한다. 만약 내가 똑 같은 주제로 작업을 했다면 어땠을까? 후...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졸작의 향연이 펼쳐졌을 거라 생각된다.

 

포장은 요셉보이스를 처음 알게해준 작업이기도 하다. 그 때 굉장한 쇼크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때는 요셉보이스가 그렇게 대단한 작가인지 몰랐을 때 였다. 나로선 그의 ‘네임밸류‘를 몰랐던게 좋은 일인 듯 하다. 아마 그의 명성을 알고 작업을 봤을거라면 주관적인 감상이 어려웠을 거라 생각된다.

 

 

 

 Table with Accumulator, Monument to the stag

 

Table with  Accumulator, Monument to the Stag란 작품은  두 작품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 위에 다른 무엇이 올려져 있고 올려져 있는 그것을 바닥의 또 다른 것과 전선 같은 것으로 연결되어있다. 바닥에 까만 선이 그어진 것으로 보아 작품을 사방에서 관찰할 필요 없이 앞쪽에서 보이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생각을 충분히 전달 할 수 있다는 얘기라 생각된다. 이것은 내가 예상한 것처럼 단순한 연결의지가 아닌 영적인 힘과 지상 에너지간의 순환 관계를 의미하는 다소 심오한 것임을 곧 알게 되었다.

그의 자료를 뒤지다가 가장 감명받은 작업은 Scala Napoletana이다.

 

 

Scala Napoletana

 

 

비스듬히 높이 세워진 사다리가 육중해 보이는 납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공과 쇠줄 같은 것으로 이어져 서있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높은 나무 사다리가 비스듬히 선 하나에 의지해 서있는 것과 구와 선을 보고 균형 내지는 진동같은 것을 생각했었는데 정신과 물질의 균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 균형의 의미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경제적 고통과 자연적재해로 길러진 나폴리인들의 강한 성향을 긴 사다리와 양쪽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모습으로 대신하여 그들의 정신적인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 들었다. 높은 사다리는 하늘을 나타내고 납으로 만들어진 무거운 공은 땅을 나타내어 이들의 조화라 한다. 이 것은 아마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샤머니즘 적인 의미일 것이다.  또한 납으로 만들어진 공은 환경오염을 의미하며 의지를 가지고 극복해 나가자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도 했는데 이 말은 그가 한때 환경운동에 동참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러한 의도가 담겨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같이 그의 작품은 군살없는 단순한 소재로 그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한 점이 백미이다. 그는 하고자 하는 얘기를 하나의 표현 만으로도 충분히 전달했다.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강렬할 것이다. 이는 지금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고 계속 공부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요셉 보이스의 작업뿐 아니라 전반적인 현대미술의 이해가 시급할 것이다.

 

 

 

 

그랜드 피아노 같은 모양으로 침투하기, 1966

 

 

 

 

조지 마키우나를 위한 수사슴 기념비는 그가 플럭서스 운동의 창시자인 마키우나스를 추모하기 위해 백남준과 함께 벌인 퍼포먼스에서 사용했던 피아노에 지방과 구리를 조합시켜 만든 작품인걸로 들었다. 이 작업에서 피아노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동물인 수사슴, 즉 고통과 위험으로 상처받은 인간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영적인 존재를 구현하고 있으며, 지방과 구리는 생명의 에너지를 보존하고 전달하는 매체로 존재 한다고 한다.

 

 

 

얼굴에 꿀과 금박을 온통 뒤집어쓴 보이스는 양쪽 발에 각기 펠트와 강철 밑창을 댄 구두를 신고 죽은 토끼를 품에 안고 있습니다. 그는 3시간 동안 죽은 토끼에게 웅얼거리면서 그림을 설명합니다. 이때 관객은 공연장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이 광경을 바라 봅니다. 이 기괴한 퍼포먼스에 대한 보이스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말, 백조, 토끼 같은 동물들은 하나의 존재 단계에서 달느 존재 단계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그들은 영혼의 육화,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영역에 접근해 있는 영적인 존재의 현세적 형태를 나타낸다." 얼굴에 금박을 온통 칠함으로써 보이스는 일종의 영매 혹은 주술사(shaman)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하지도 못하고 알아 듣지도 못할 죽은 토끼와의 대화, 즉 주문을 읊음으로써 그는 탐욕과 폭력의 악순환을 거듭하는 차가운 세계에 따뜻함을 가져다 주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설명 출처 -http://namgane.cafe24.com/detail190.html

 

 

 

나는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도 나를 사랑한다

 

 

이 같이 그는 자신의 삶을 특수한 재료와 도상을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나 역시 내 삶을 주제로 많은 구상을 하지만....글세 그럴때 마다 복잡한 표현만 하다 끝난 것 같다.

요셉 보이스는 주변의 사물을 이용하여 생각지도 못한 진리를 끄집어 낸다. 다시 생각해보면 말만 갖다 붙이는 것 아닐까? 하겠지만 너무나도 설득력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이 같이 주변 사물에 대한 촌철살인한 통찰력은 보이스 작품세계의 백미일 것이다. 물론 이 것은 내가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에 드는 점이 한가지 더 있다. 그것은 다작을 한 다는점. 누구나 다 다작을 하겠지만 보이스는 뭔가 다른 포스가 있는 듯하다. 그의 작품은 같은게 없다. 한 가지 연작으로 우려먹는? 냄새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도대체 이 사람은 작업밑천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물론 이 또한 내가 추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Joseph Beuys 1921-1986

 

.글쓴이: 게살장군, http://blog.daum.net/gaesal 쥔장.

출처 : 나는 너를...너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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