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시로는 최고라고 해도 좋을 한시 한 편이 있어 소개합니다.
送靈巖使君鄭來仲
영암 태수가 되어 지방으로 가는 정내주를 보내며
肺肺庭前柳。折之花如雪。
뜰 앞에 무성한 버드나무는, 꺾인 꽃이 희기가 눈 같은데
(이별의 징표로 주는 버들가지를 너무 많이 꺾어 주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朝贈太守別。暮贈太守別。
아침에 태수와 이별할 때 선물로 주고, 저녁에 태수와 이별할 때 선물로 주네
(아침에 이별을 시작해서 저녁까지 헤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지방으로 나가야 하니 이별한다고 아침에 만나 버들가지를 주었지만 저녁까지 보내지를 못하고 계속해서 버드나무만 꺾어주고 있는 것이지요. 석별의 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柳禿已無枝。繼以芳蘭折。
버들은 민머리가 되어 벌써 가지가 없으니, 꽃핀 난초를 꺾어 버들을 대신하도다
(뜰 앞의 버들이 없어지도록 이별을 아쉬워하지만 그래도 이별이 아쉬워 이번에는 꽃이 핀 난초를 대신해서 꺾어주게 됩니다. 난초 꽃에는 향기가 있으니 버드나무보다 낫겠지요. 이별을 이처럼 간곡하게 노래한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柳枝猶易衰。蘭香竟不滅。
버들가지는 오히려 쉽게 쇠하여 시들지만, 난초의 향기는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네
<어휘풀이>
使君 : 임금의 명령을 받들고 나라 밖으로나 지방에 가는 사신을 높여 부르는 호칭
鄭來仲 : 鄭來周의 자.
肺肺 : 무성한 모양. 너울너울.
折之花 : 꺾인 꽃, 여기서는 이별의 징표로 주는 하얗게 핀 버들가지를 가리킴
<작자소개>
오광운(吳光運, 1689~1745)
본관 동복(同福). 자 영백(永伯). 호 약산(藥山). 시호 충장(忠章). 1714년(숙종 40)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71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현감(縣監)에 오르고 설서(說書)를 역임, 연잉군(延礽君:英祖)의 서연관(書筵官)이 되었으며 승지(承旨)를 지냈다. 1728년(영조 4) 홍문관(弘文館)의 수찬 ·교리를 역임하고, 이해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그 방조자의 처벌을 주장, 이봉상(李鳳祥) ·남연년(南延年) 등을 처형하게 함으로써 서울에서 내응(內應)을 미연에 방지했다. 1737년 대사간이 되고 1743년 예조참판 등을 지냈으며 1744년 사직(司直)을 거쳐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에 이르렀다. 문장에 뛰어났고 이조판서 ·대제학이 추증되었다. 문집 《약산만고(藥山漫稿)》가 있다.
<해설>
버들가지로 묶어놓은 이별이라고 할 정도로 이 작품은 명작입니다.
이별의 아쉬움과 애틋한 정을 이처럼 간곡하게 노래한 작품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영암이라는 먼 지방으로 나가는 친구 정내주를 보내면서 오광운이 지어서 준 작품입니다.
최고의 이별시로 보통 중국에서는 陽關三疊을 꼽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정지상의 海東三疊을 꼽지만 오광운의 이 작품도 결코 뒤지지 않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뒤지지 않는다기보다 어떤 면에서는 낫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릅니다.
버들가지는 시들기도 쉽고 없어지기도 하지만 난초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으니 이별의 선물로 하기에 가장 적합한 셈이지요. 물론 버들가지가 지니고 있는 원래의 의미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요즘은 이런 이별시가 없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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