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화 (한국)

[스크랩] 임은희

bizmoll 2009. 2. 9. 15:01

신작로 양쪽으로, 늙은 포플러나무는 그늘도 드리우지 않았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 포플러나무는 사람도 없는 논 위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종종 걸음으로 학  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 긴 다리를 지루하게 건넜다. 동산인지 야산인지 구분할 수 없는 낮은 산을 지나서 이제, 띄엄띄엄,,, 포플러나무 몇 그루만 지나면 됐다.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간다. 아버지, 휙, 바람 같은 웃음을 날리신다. 눈만 웃었을 뿐인데 함박처럼 크고 따스하게,,,. 평생 그렇게 웃으셨다. 오토바이 뒤에는 커다란 플라스틱 통이 아버지보다 큰 덩치로 앉아있어서 뒤에서 보면 아버지의 헬멧도 보이지 않았다. 돼지에게 먹일 음식물찌꺼기를 수거하는 통이었는데 늘 시큼한 냄새가 났다. 집에 먼저 도착하신 아버지의 뒤꽁무니를 ‘도쿠’가 꼬리를 흔들며 따라간다.




임은희_서성이다_장지에 혼합재료_115×90cm_2007

 

 




임은희_서성이다_장지에 혼합재료_53×45.5cm_2007

 

초등학교 2학년에 막 올라갔을 무렵, 시골 생활을 그려왔던 아버지는 나른한 도시를 뒤로하고 할머니가 계신 시골에 터를 잡으셨다. 신작로 아래에 푹 커진 곳. 한쪽 마당에 아버지가 철망으로 손수 만드신 메추리집이 있고, 또 다른 한쪽에는 답답해 보이는 사각형의 토끼집이 아래위로 포개어져있다. 토끼풀은 집 옆에 나 있는 방죽에 지천으로 널려있었는데 주로 비스듬히 경사진 곳에 몰려있어서 몸을 기대기에 좋았다. 납작 엎드려서 토끼풀을 뜯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토끼가 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임은희_서성이다_장지에 혼합재료_72.7×60cm_2007

 

 




임은희_서성이다_장지에 혼합재료_84.5×54.5cm_2007
 


토끼의 빨간 눈은 어린 나에게는 참으로 의아한 점 이었는데, 왜 토끼는 ‘도쿠’처럼 까만 눈도 아니면서 ‘도쿠’처럼 착하게 생긴 걸까? 뜯어온 토끼풀을 먹는 입은 연신 오물거리는데 빨간 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토끼는 볼 수 없었고 그런 의아심도 더 이상 갖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토끼란 동물은 빨간 눈과 하얀 털의 상극화된 이미지를 조합시켜 순수하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토끼와 함께 메추리의 긴 비행을 가로 막았던 높은 철망도 걷어지고 그 자리에 시멘트벽이 낮고도 튼튼하게 세워졌다. 그리고 까만 돼지들이 까만 눈을 반짝이며 하루 종일 바닥에 코를 들이대고 꿀꿀거렸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오토바이 뒷자리는 커다란 플라스틱 통이 차지했다.
 




임은희_서성이다_장지에 혼합재료_72.7×60.6cm_2007

 

 




임은희_서성이다_장지에 혼합재료_90.9×72.7cm_2007


가끔, 오토바이를 타는 기회가 있었는데 갈수록 시골냄새가 짙어지는 서쪽방향의 신작로를 달렸다. 유일하게 아버지의 등에 기댔던 시간, 아버지를 감싸 안았던 시간, 펄럭이던 바람이 일직선으로 오토바이를 통과하고 포플러나무와 전봇대가 유성처럼 지나친다. 비디오테이프를 앞뒤로 감았다 풀었다 하는 것처럼 그 시간들을 서성이다보면 꼭 어딘가에 아버지가 계신다. 크고 따스하게 전해오던 미소, 무작정 든든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품, 토끼의 빨간 눈이 사파이어처럼 반들거리며 지켜보고 있다. ■ 임은희





































 





































 

















 













































































































If You Love Me - Nana Mouskouri



     
    출처 : 로진스키..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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