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뚱금없는 사심(사슴) 한마리가 훌뚝 뛰어나옴시로, “아잡씨! 아잡씨!” 그라그든. “멋할라고 나 부르냐?” “나 잔 살려 줏시오.” “이놈아 내가 너를 엇찌게 살려야.” “아이 나를 잔 살려줏시오. 포수가 나를 잡을라고 지금 막 애를 쓰는데 엇찌게 하든지 나 잔 살려주시오.” - 1979. 8. 1. 전남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박길종(남/58) 구연 중에서
[나무꾼과 선녀] 설화는 호주를 제외한 전세계에 걸쳐 가장 넓게 분포되어 있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선녀와 나무꾼], [선녀와 수탉이 된 총각], [노루와 나무꾼] 등의 이름으로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데 문헌과 채록 자료를 합치면 무려 140여 편이 넘는다. 여기서 신성혼(神聖婚)의 매개자로 나와 나무꾼을 도와주는 짐승이 바로 사슴이다. 즉, 선녀와 나무꾼이란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나무꾼이 신성 징표를 획득하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무능한 나무꾼 혼자서는 이러한 신성 징표를 획득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선녀가 나뭇꾼에게 일방적으로 징표를 부여해서는 이야기가 이상해진다. 따라서 나무꾼과 선녀 사이에 중매자의 개입이 필요한 것이다.
사슴은 예로부터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이자 신성한 동물로 인식되어왔다. 또한 재생과 대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사슴의 뿔은 봄마다 떨어지고 다시 생기길 반복하는데 12살이 될 때까지 그 뿔의 갈라진 가지 수가 해마다 늘어난다. 즉, 해마다 뿔이 다시나니 재생을 상징하는 것이요, 머리에서 나무가 자라니 자연 대지의 동물로 인식된 것이다. 신라 왕관에 보면 사슴 뿔이 곧잘 보이는데 이것은 왕권을 상징하기도 하며 또 십장생인 사슴처럼 왕위가 오래 지속되길 기원하는 뜻도 담겨 있다고 한다. 용의 뿔을 사슴에 견주고 영물인 기린이 사슴의 몸을 가졌다고 믿는 데서도 옛사람들의 사슴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사슴 형상은 청동기시대 유물이나 철기시대의 부작에서부터 회화, 관복 및 생활용품에 단골로 등장한다. 부작으로 쓰인 것은 신석기 이래 수렵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고 회화에서는 주로 장수를 기원하거나 신선과 함께 나타나 선계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관복에 쓰일 때에는 관리의 봉급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는 사슴의 ‘鹿(사슴 록)’자와 봉록의 ‘祿(녹봉 록)’자와의 유사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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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십사필통. |
은동상감상자. 조선시대. |
필통. 조선시대. |
글_박활성 기자 <발췌:디자인진흥원>
십장생도 자수병풍. 조선시대.
죽각지통. 조선말기.
녹도(鹿圖). 장승업. [산수영모십첩병풍) 중. 서울대박물관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