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ile Friant (1863 - 1932)
프랑스 낭시출신의 사실적 내츄널리즘
격동의 19세기는 화가에게나 관객에게나 다 같이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또한 그 만큼 역동적이라 볼꺼리도 풍성했고..프랑스 제 2의 예술도시 낭시(Nancy) 태생의 프리앙은 l'École des Beaux-Arts de Nancy 에서 공부하고, 파리의 아카데미즘의 쌍두마차 중 한명인 카바넬에게서 수업도 받았지만,
그의 작품에는 시기에 따라 쿠르베, 마네, 드가와 모리조의 화풍이 같이 있는 듯 하다.
고전주의적 화풍을 바탕으로 결국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가 자연주의적 경향으로 다가설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어쩌면 화가의 지조없는 행태에 비난이 되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10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게는 한 화가에게서 다양한 그림을 제공받는 기쁨이 있다.
마네의 냉철한 지성적 눈매에 약간 터프한 모습의 화가의 자화상이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이 당시의 고전주의 화가는
이런 자유스런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Chagrin d'Enfant. 1897
<슬픔에 젖은 아이>라는 제목이지만, 아이의 삐친듯한 얼굴이 재밋다.
달래듯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언니의 모습이 마치 집 애들이 한나절 신나게 놀다가
삐치고 달래고 있는 모습처럼 보여..졍겹기도 하다.
아이의 팔목이 너무 두꺼운게 약간 눈에 거슬린다^^
Tendresse Maternelle [Maternal Tenderness]. 1906
위의 작품의 아이의 얼굴과 엄마품속에서 아이의 얼굴을 비교해 보자.
엄마의 옆구리에 올라간 손을 보면 약간의 꾸중 또는 '장난이 심하다'는 잔소리를 하는 듯 한데..
엄마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엄마의 품속이라면,
아무리 혼을 내는 말이라도 아이는 행복하다.
햇빛이 드는 따사로운 오후에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머니와 딸의 모습을
부드럽게 표현한 이 작품은 모네나 모리조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La Lutte [Wrestling]. 1889
마치 사진을 보듯 세밀하게 그려낸 이 그림은 쿠르베의 레슬링을 연상케 한다.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레슬링으로 서로를 겨루는 아이들, 팔짱을 끼고 구경하거나,
이들의 시합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물가에서 새로운 놀이꺼리를 찾는 아이들.
배경뒤에 있는 커다른 나무가 흐뭇하게 웃음짓고 있는 듯 하다.
15살이 되던 1878년, 에밀 프리앙은 낭시(Nancy)에서 열린 살롱전에 상당한 실력으로 데뷔했다.
곧이어 그는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파리에서 당대 최고의 미술가였던 '알렉상드 카바넬(Alexandre Cabanel)'의 화실에서 본격적인 예술교육을 받게 된다.
그러나 아카데미즘의 퇴조와 함께 인상주의의 득세로 인해 젊고 패기찬 프리앙은 많은 갈등을 한 듯한 흔적이 그림 곳곳에서 보인다.
Ombres portees [Cast Shadows]. 1891
마치 드가의 그림을 보는 듯한 이 그림은 영화나 연극의 한 장면을 정지시켜 놓은 듯하다.
용서를 비는 것일까..아님 사랑을 고백하는 것일까..
일단 긍정적인 의미로 사랑의 고백장면으로 놓고 보자.
이렇듯 사랑의 고백은 서로의 눈을 마주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심과 찬란함이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순간의 포착한 듯한 정지된 화면뒤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와
장식없는 뒷배경이 오히려 이 들의 입체감을 살려내고 있다.
Spring
예쁜 여인의 옆에는 항상 거친 친구가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론인 듯 하다.
제법 바람끼가 있는 듯한 잘 차려입은 청년이 한 여인을 마음에 두고 있는 듯
그녀의 길목을 지키고 있어나..주먹을 불끈쥔 그녀의 친구때문에 말을 붙이지도 못하고 있다.
당사자인 그녀도 싫지는 않은듯 이런 모습을 즐기는 듯 하다.
Les Amoureux aka Soir d'automne The Lovers (Autumn Evening)
가을의 어느날...
다리난간에 기댄 채,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눈을 맞추고 있는 그림은 오랜만에 보네) 두 연인의 모습은,
자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사랑의 밀어가 때와 장소가 필요할까..
대상만 있으면 그 곳이 바로 천국이리라..
화가 박희숙은 이런 말을 했다. "사랑은 연회장의 얼음 조각과도 같다.
아무리 아름다운 얼음 조각이라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언제 그 자리에 얼음 조각이 있었는지 기억하기조차 힘들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사랑했던 기억조차 희미해진다.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 추억이 될 때 이미 사랑은 이름만 남게 된다."
La Toussaint [All Saints' Day]. 1888
프리앙의 아카데믹한 화풍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대표작이라 불릴만 하다.
만성절날의 아침거리를 묘사한 것이다.
만성절은 하늘에 있는 모든 성인을 흠모하고 찬미하는 축일로 11월 1일이다.
초라하게 앉아있는 장님에게 동전을 건내려는 소녀와
무심하게 길을 걷는 어른들이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성경책을 들었다고, 의식을 행한다고 신앙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은 진정한 신앙의 태도를 대비를 통해 보여주는 듯 하다.
L'Expiation (The Expiation) 1908
Doleur [Sorrow]. 1898
사랑하는 가족을 땅에 묻고난 뒤, 남은 이들은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지인의 죽음이란 항상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죽음이란 내가 가혹하게 굴어서 그리 되는 것이 아니요,
사는 것 또한 내가 어진 탓이 아니로다..
천지무사(天地無私)라고 했다.
삶과 죽음은 자연의 순리일뿐, 자연의 순리는 인간의 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19세기가 저물어 갈 무렵.. 에밀 프리앙은 역사적/종교적/그리스 신화의 그림에 점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파리에서의 생활을 접고 다시 낭시로 돌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신화속 인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La Discussion politique (Political discussion) . 1889
제목처럼, 그들은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친구와 피해야 할 화제중 하나가 정치, 그리고 스포츠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같은 생각, 같은 편을 들고 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서로 상대편을 지지할 때는..술자리가 불편한 경우가 많은데,
프리앙의 이 그림은 정말 그런 모습을 너무나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토론의 당사자보다는 한 켠에 물러서 있는 관전자 두명의 표정이 압권이다..
프리앙은 에콜 드 보자르의 교수까지 재직하면서 유명세를 떨쳤다.
고전주의에 기반을 둔 그의 그림은 내추럴리즘과 더불어, 사실주의 화법까지 어우러져 서정적인 작품을 만들어 냈다.
Autoportrait aka Un étudiant (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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