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벗어야 침실의 ‘부부공감’
한국부부‘대화부족’으로 성관계 불만족 쌓여…
일상까지 이어져 행복지수도 낮아
성형외과 전문의인 최영석씨(38·가명)는 결혼 11년차다.
아내 유순희씨(35·가명)와 3년 연애끝에 결혼해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흥업소의 여성들과 잠자리를 갖는다.
결혼 초부터 아내는 성관계에 별로 관심이나 반응이 없었고 자신이 뭔가
색다른 체위를 요구하면 ‘짐승’이나 ‘변태’ 취급을 하기 일쑤였다.
딸까지 낳았지만 아내의 출산을 기점으로 부부는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최씨는 서재에 있거나 딸아이와 놀았고
아내 유씨는 침대에서는 등을 돌린 채 자고 자신과 둘만이 있는 기회
조차 아예 차단하는 것처럼 보이는 최씨에 대한 섭섭함으로 속을 태웠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남편에게 먼저 잠자리를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사랑이 동반된 섹스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축복’이라지만
이같은 달콤한 과실을 따먹는 대한민국의 부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통계결과가 나와 주목을 끈다.
발기부전치료제를 판매하는 한국릴리가 한국과 프랑스, 미국, 일본 등
4개국 기혼자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한국 부부들의 경우 배우자와의 성관계 만족도에서
여성은 고작 31.3%, 남성은 53.3%만이 만족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프랑스 남성의 92.7%, 프랑스 여성의 80%의 절반 수준이다.
성관계 만족도가 낮은 이유로 한국 남성들은 ‘성관계 횟수가 적다’
‘아내가 성관계에 관심이 없으며 테크닉이 없다’는 점을 꼽았고,
한국 여성들은 ‘남편이 자신의 성적 충족감만 생각하고 전후의 로맨틱한
분위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처럼 성적 불만족이 있어도 배우자와 대화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이 가장 많았다.
일상생활에서 부부간 대화 만족도는 한국 여성의 경우 35.4%,
한국 남성의 경우 49.4%였다.
결혼 내내 한번도 오르가슴 못 느껴
결혼 14년차인 주부 임수미씨(41·가명)도 남편에 대한 성적 불만을
속으로만 꾹꾹 누르며 살고 있는 경우다.
쾌활한 성격의 남편과 한 달에 두세 번씩 잠자리를 같이 하지만
전혀 즐겁지 않단다.
남편은 임씨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희는 거의 생략한 채 번번이
옷을 벗자마자 삽입을 시도했고 사정한 후엔 보듬어 안아주기는커녕
땀이 흘렀다며 씻으러 갔다.
결혼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임씨는
자신이 혹시 불감증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임씨는 “남자들은 반응없는 여성을 싫어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신혼 때부터 전혀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절정에
다다른 것처럼 신음 소리를 내는 등 연기를 해왔다”며
“나도 다른 여성들처럼 오르가슴이 뭔지 알고 싶은데 이제 와서
남편에게 그동안 연기를 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얘기하자니 남편이
충격을 받을까봐 우려돼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전문의를 찾아가 성적 불만족을 토로하는
50대 여성들이 꽤 있다.
서울아산병원 울산의대 비뇨기과 안태영 교수는 “폐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성적 즐거움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맛보고 싶다며
고민끝에 병원을 찾아 울먹이는 중년여성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성적 불만족의 원인은 크게 기질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미국 뉴욕 프레스비테리언(장로) 병원에 있는 성프로그램인
페인 위트니 클리닉의 대표이면서 세계적 성심리학 학자인
마이클 페렐만 코넬대 심리학과 교수는 “핵심적 원인은 아니더라도
모든 성기능 장애에 심리적 문제가 결부돼 있으므로 발기부전 등
성기능장애가 발생했을 때 신체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 중 어느 쪽이
더 심각한가를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질적인 요인은 발기부전, 조루, 지루, 약물 부작용 등 의학적인
문제에 의해 부부 간 성생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2004년 대한남성과학회(회장 김제종)가 전국 40~80세
남성 총 157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한 결과 40대의 33.2%,
50대 59.3%, 60대 79.7%, 70대 82%가 발기부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루의 경우엔 5분 미만이 33.1%, 2분 미만이 11%로 드러났다.
조루는 20~30대 남성의 경우엔 더 많이 겪는다.
문제는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남성들이 전문의를 찾지 않고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혼자 끙끙 앓는다는 점이다.
서울대학병원 비뇨기과 김수웅 교수는 “국내 성기능장애 환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성기능 장애를 파트너에게 알리지 않은 채 혼자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성기능 장애 숨기고 혼자서만 끙끙
여성의 경우 적절한 성적 자극에도 흥분이 되지 않아
분비물이 나오지 않거나 곧 말라버리는 성흥분 장애 또는
불감증이 대표적 성기능 장애에 해당한다.
하지만 남성의 발기부전에 해당하는 여성의 성흥분
장애의 경우, 클리토리스(음핵)나 질 등 성감 계발이 경험부족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아 못 느끼는 것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심리적인 문제가 없을 경우 누구나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자극을
주면
대부분 감각을 충분히 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킨제이, 마스터즈 존슨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4대 성의학자중 한 사람인 헬렌 카플란은 여성의 성반응에 대해
다음과 같은 조사 보고서를 냈다.
즉 환상만으로 오르가슴을 느끼는 사람이 5~10%, 성교시
클리토리스 자극을 받아야만 오르가슴을 느끼는 사람이 약 40%,
그리고 어떻게 해도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10%라는 것이다.
이는 곧 정상적인 부부관계만 가지고 오르가슴을 느끼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되고 전체 여성의 10%는 불감증이라는 얘기다.
청담마리산부인과 이유미 원장은 “흥분 장애의 원인은 호르몬
분비의 이상, 골반근의 과도한 이완이나 염증 등 병적인 상태,
성기 주변의 혈류장애, 신경학적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자신의 몸에
대한 불만족, 무의식적인 성에 대한 억제, 2차 성징의 문제 등
정신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다”며 “혈액검사나 각종 측정 장비를 통해 호르몬이나
신체적 문제가 발견된 경우에는 그에 준하는 치료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감각훈련이나 상담치료를 병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여성의 경우엔 성교통을 경험하는 사례가 굉장히 많고
심각한 경우 질경련으로 성교가 아예 불가능한 이들도 있다.
이유미 원장은 “성교때마다 통증을 느끼는 여성은 무려 12%나
되는데 이는 성병이나 기타 감염증, 질병, 그 외 육체적 문제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질근육이 수축해 삽입이 불가능해진
상태를 말하는
질경련의 경우 전체 여성의 2~3%가 겪는 문제로 이를 극복하려면
성관계를 할 때 질의 근육을 이완시키는 방법을 병원이나 혼자 또는
파트너와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통 단절로 섹스리스 부부 자초
여성의 흥분 장애나 오르가슴과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은 성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짧아 이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규 고등교육까지 받은 성인 남녀라고 해도 구체적인 성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성생리해부학에 대한 중요한 지식을 전혀 습득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여성이 강한 성적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위한 자극이
어느 지점(여성의 외음부 중에서 특히 클리토리스나 질 내부
12시 방향의 지점인 G-스팟)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는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부부도 마찬가지다.
특히 여성의 경우 유교적 문화 탓에 무의식중에 성을 밝히는 것에
대해 스스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자신의 몸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섹스와 관련된 부위에 대해 상당수
여성이 무지하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자위행위에 대한 사회의 이중잣대다.
언제부터인가 남성의 자위행위는 사춘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누구나 하는 자연스러운 행위로 인정받으면서 영화나
성전문가들의 강연에서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되고 있는 반면 여성의 자위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성의학클리닉 설현욱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남성의 98%, 여성은 최소 75%가 자위행위를 한단다.
설 박사는 “삽입성교보다 자위를 통해 극치감을 느낄 확률은
훨씬 높다”고 말했다.
기질적 원인이 아니라면 부부의 성적 갈등은 주로 심리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심리치료학 박사인 청담성건강센터 유외숙 실장은 “성교 횟수 등
욕구의 불일치나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배우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소통 단절로 인해 서서히 섹스리스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성의 경우엔 자신이 섹스를 밝히는 여자로 보이는 게 두려워서,
남성의 경우엔 배우자로부터 성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비난을 받을까봐 자신의 욕구를 솔직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
심지어 결혼 전 비교적 여러 남자를 상대하며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즐겼던 여성도 결혼 후 행여 자신의 과거를 남편이 눈치챌까봐 되레
성행위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 의도적으로 성적 관심이 전혀 없는 것같이 반응함으로써
파트너와의 성적 적응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는 것.
그 결과 이후 성생활을 통한 즐거움을 가질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린다.
국내 한 조사에 따르면 30대 부부 4쌍 중 한 쌍이 섹스리스다.
이유미 원장은 “섹스리스는 세계적 평균으로는 한 달 간 섹스를 하지
않은 것을 말하지만 우리나라 부부들의 경우엔 2~3개월 간 섹스가
없었던 것을 섹스리스라고 할 수 있다”며 “부부 동의하에 섹스가
뜸해도 큰 문제없이 살아간다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만
어느 한쪽이나 두 사람 모두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관계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얼마 전 성건강센터를 찾아온 김승진씨(34·가명)와
최유선씨(29·가명)는 3년의 연애기간을 거쳐 2년 전 결혼한 커플.
그러나 신혼여행지에서는 물론 지금까지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삽입성교에 성공하지 못했다.
시도를 전혀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남편 김씨의 성기가 금세 풀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몇 번 그런 과정을 거친 후 김씨는 온갖 핑계를 대며 아내와의
잠자리를 피했다.
최씨는 “연애시절엔 남편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성관계를 요구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결혼 후 2년이 다 되도록 성관계를 갖지 못했다”며
“이혼녀라는 딱지가 두려워 이혼을 망설였지만 이제는 한계에
부딪힌 것 같다”고 토로했다.
알고 보니 남편 김씨는 군 입대 전 겪은 첫 성경험이 성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했다.
워낙 성적 감정에 부정적이었던 그는 친구들의 강권에 못 이겨
매매춘을 통해 처음으로 성관계를 했는데 상당한 불쾌감과 허탈감을
느꼈던 것. 이후 그는 어떤 여자와도 성관계를 맺지 못했고 결혼하면
나아질 줄 알았으나 그렇지 못해 좌절을 겪었다.
유외숙 실장은 “남자나 여자나 첫경험이 중요하다”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결혼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배우자에게 간다”고 말했다.
어려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의 경우 남자만 보면 공포심을 갖게 돼
성생활에도 큰 영향을 받는 경우도 많다.
성적 불만이 쌓이면 이혼으로 번져
부부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 섹스리스가 되거나 섹스가
잘 안돼 부부 사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또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거나 이직이나 육아 스트레스, 섹스를
할 수 없을 만큼 불안전한 환경 등 특정 상황에 의해 섹스를
등한시하는 경우도 많다.
우스갯소리로 ‘식구끼리 어떻게 섹스를 하느냐’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
남자라기보다는 식구 같아서 성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아내도 있고,
매일 헝클어진 머리와 헐렁한 티셔츠 차림의 아내에게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남편도 적잖다.
문제는 부부 간 성적 불만이 가정불화는 물론 이혼의 양상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성문제를 비롯해 부부가 서로에 대한 불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다 보니 대한민국 부부의 행복지수도 높지 않다.
지난해 11월 행복가정재단이 기혼남녀 152명(남성 74명, 여성 7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부들의 행복지수는
30점 만점에 평균 19.75점으로 나타났다.
설령 이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부모의 냉랭한 분위기는 결국
아이들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부부로 인연을 맺은 배우자에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대신 결국 포기를
선택하고 자신의 성적 불만을 외도를 통해 해소하려는 사람도 적잖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우리나라가 섹스산업이 지나치게 발달한 점도
부부 간 관계에 소홀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입을 모았다.
‘원수는 매일 밤 침대에서 만난다’는 말이 있다.
이런 상황은 다른 누구도 아닌 부부 스스로가 만들며 이를 바꾸는
것도 부부 자신들이라는 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당신의 성기능은 건강한가(여성 스스로 해보는 자가진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