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1년, 종이에 수묵, 79.2 cm × 138.2 cm, 국보216호, 호암미술관 )
1751년작. 국보 제216호.
종이 바탕에 수묵담채. 세로 79.2㎝, 가로 138.2㎝.
호암미술관 소장.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정선(鄭敾)이 그린 대표적인 진경산수화.
화면 오른쪽 상단에 씌어 있는 화제와 관지(款識)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정선이 75세인 1751년(영조 27)
윤 5월 하순에 비온 뒤의 인왕산 정경을 그린 것이다.
인왕산 아래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부근에서 살았던 정선이 비온 뒤 개고 있는 산의 모습을 화동 언덕(지금의 정독도서관)에서 바라보며 받은 인상과 감흥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구도는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암봉이 화면을 압도하듯 원경에 가득 배치되어 있어 대담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준다. 서서히 걷히는 안개 밖으로 돋보이는 산의 습곡은 짙고 옅은 먹색의 흑백대비로 표현했고,
크고 작은 수목들은 정선 특유의 활달한 편필(偏筆)로 묘사하여 변화를 주었으며, 특히 백색암봉의 양감을
강조하기 위해 구사된 묵찰법에 의한 힘찬 붓질은 화면에 무게감과 함께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이러한 기법은 그가 서울 근교의 실경들을 사생하면서 창안한 특징으로 이 그림에서 보다 완숙된 경지를 보여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가 도달한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 명품이다.
원래 화면 상단에 영의정 심환지(沈煥之)가 쓴 찬시가 있었으나 심씨의 후손이 제사용으로 쓰기 위해 절단해갔다고 한다.
인왕제색도에 숨겨진 우정
인왕제색도는 겸재가 76세 때 그림입니다.
인왕(仁王)은 서울에 있는 인왕산을 말하는 것이고 제색(霽色)이란 큰 비가 온 뒤 맑게 갠 모습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비 개인 인왕산 그림인데 인왕산은 산 전체가 백색화강암으로 되어 있는 바위산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백색화강암을 그리려면 흰색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온통 진한 묵으로 그렸습니다.
이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 그림을 보다보면 감상자의 시선이 어느덧 자연스럽게 우측 앞에 있는 조그마한 집으로 모아집니다.
그림 감상에서 시선이 모아진다면 그건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분명 화가가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며 그것이 바로 그림의 주제이자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저 집은 과연 누구의 집일까요?
사천 이병연의 집입니다. 겸재 정선이 조선후기 진경산수의 거장 이였다면, 사천 이병연은 일만 삼천수가 넘는 시를 지은 대문장가이자 진경시인이었습니다.
사천과 겸재는 10대부터 스승인 김창흡 아래 동문수학한 벗이였습니다.
각각 81세, 84세까지 장수하면서 한동네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의지하며 자란 형제 같은 사이였습니다.
( 시화상간도 [경교명승첩]中 1740~41, 29 x 26.4 cm 간송미술관 )
사천과 겸재가 마주앉아 시와 그림을 주고 받는 모습을 그린 그림.
서로 바로보는 표정이 오랫동안 함께했던 지기끼리만 나눌 수 있는 표정입니다.
겸재가 이 인왕제색도를 그릴 당시, 자신의 피붙이와 다름없는 사천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겸재는 60여년을 형제처럼 지내온 사람을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기가 막힌 심정
이였을까요.
인왕제색도는 사천 이병연이 어두운 비구름이 개이듯 병이 나아 저 당당한 인왕산처럼 다시금 웅장하고
굳건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려낸 그림입니다.
겸재가 사천의 집 주위를 수목들이 호위하듯이 빙 둘러 그려낸 것만 보아도 사천이 병을 이겨내고
당당한 소나무처럼 일어나길 바라는 겸재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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