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양 미 술 자 료

[스크랩] 추흥(秋興).두보 (杜甫) / 조정육 미술사가

bizmoll 2013. 11. 1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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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대신 이름 남긴 시의 성인

 

두보 추흥

 

 

가을의 감흥 (秋興) 1
두보 (杜甫)

 

옥 같은 이슬이 단풍나무 숲을 시들게 하고 (玉露凋傷楓樹林)
무산과 무협에 감도는 기운은 쓸쓸하다 (巫山巫峽氣蕭森)
강의 물결은 하늘로 솟구치고 (江間波浪兼天湧)
변방의 바람과 구름은 땅을 덮어 어둡다 (塞上風雲接地陰)
두 번 핀 국화 보니 눈물겹고 (叢菊兩開他日淚)
외로운 배는 고향 생각나게 하네 (孤舟一繫故園心)
겨울옷을 마련하려 사방에서 가위와 자를 준비하고 (寒衣處處催刀尺)
높은 백제성에는 해질녘 다듬이 소리 급히 울리네 (白帝城高急暮砧)

 

 

작자미상, <추흥팔수(秋興八首)>, 모시에 연한 색, 27×30.7cm, 선문대박물관

 

 

시성(詩聖) 두보(杜甫·712~770)가 ‘가을의 감흥 여덟 수(추흥팔수·秋興八首)’를 지은 곳은 쿠이저우(夔州)였다. 쿠이저우는 장강(長江) 중류에 있는 쓰촨성과 후베이성의 경계에 있는 협곡 마을이다. 충칭(重慶)시에 속한다. 장강의 거친 물살이 흰 거품을 내며 협곡의 절벽 사이를 흐르는 곳이다.

 

55세가 된 두보가 쓰촨성 청두(成都)에서 쿠이저우로 온 것은 그를 돕던 벗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제 의지할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다. 그는 기나긴 유랑생활로 생활은 궁핍했고 가난에 전 몸과 마음도 모두 병들었다. 언제 관직생활을 했는지 가벼운 벼슬살이의 기억마저 흐릿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시를 포기하지 않았다. 고통과 외로움이 세차게 밀려들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쿠이저우에서 400여수의 시를 남겼다. ‘추흥팔수’도 그중의 하나다.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작자 미상의 ‘추흥팔수’는 두보의 시 ‘추흥팔수’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시와 그림이 합본된 ‘천고최성첩(千古最盛帖)’ 중에 들어 있다. 화첩의 오른쪽에는 그림 한 점이 펼쳐져 있고 왼쪽에는 두보의 시 ‘추흥팔수’가 모두 적혀 있다. 한 화면에 전부 다른 내용이 담긴 8편의 시를 동시에 그려 넣을 수는 없는 법.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추흥팔수’ 중 첫 번째 시를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옥 같은 이슬이 내리자 단풍나무숲은 제 빛을 잃고 잿빛으로 변했다. 색이 빠져 나간 숲은 쓸쓸하고 황량하다. 허전한 숲 사이로 찬바람이 인다. 바람이 세차니 장강의 물결이 포효하듯 하늘로 솟구친다. 오랜 세월 객지를 떠돌며 가난과 병에 시달린 두보는 고향에 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두 번째 가을을 맞이했다. 이슬을 맞고서도 시들지 않은 국화를 보자 고향 생각에 와락 눈물이 쏟아진다. 강가에 서 있는 빈 배를 보고 있자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다.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만들며 겨울 채비를 서두르는데 나그네는 올해도 고향에 갈 수 없는 걸까. 향수에 젖은 두보의 가슴이 그리움과 회한으로 먹먹하다.

 

두보의 시에 비해 그림은 매우 건조하다. 시에서 우수와 애절함을 제거해 버리고 오직 ‘팩트(fact)’만을 보여주겠다는 듯 그림을 풀어내는 손길이 자못 쌀쌀맞다. 그나마 마른 붓질을 여러 차례 그린 산과 바위의 피마준법(披麻皴法)이 가을의 쓸쓸함을 드러내주는 것이 다행이다. 감상에 빠지는 것에 무관심한 것 빼고는 작가는 시의 내용에 충실하다. 화면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곳곳에 서 있는 가운데 두 인물이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이슬 맞은 나무를 가리킨다. 옆사람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본다. 동양화에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을 그릴 때 주로 배치하는 인물 구도법이다. 여러 종류의 나무를 함께 그리는 것은 남종화법에서 습관적으로 그리는 수법이다. 왼쪽 하단에는 외로운 배도 그렸고 오른쪽 상단에는 우람한 백제성도 그렸다.

 

시를 이해할 수 있는 소재는 전부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가을의 흥취’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시들어 퍼석거리는 단풍을 발견한 시인의 쓸쓸함, 국화꽃과 빈 배에 담긴 향수와 고적감, 저 멀리서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등이 이 그림에는 없다. 있을 것은 다 있는데 여전히 부재감이 느껴지는 아쉬움. 대상 너머의 세계를 해석하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라고 말하려는 걸까. 그림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욱 쓸쓸해진다.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과 마주하고 있을 때처럼.

 

두보가 자식들에게 재산 대신 물려준 것

 

두보는 이백과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이, 두’라고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백과 두보는 중국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추앙받는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서로의 시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지만 두 사람의 시의 세계는 전혀 달랐다. 이백이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유분방한 시를 펼쳐냈다면 두보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의 비참한 현실을 시에 담았다. 특히 안사의 난(安史之亂·755~763)을 겪으면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상을 훌륭하게 시로 승화시켜 ‘시의 역사(詩史)’라 불린다.

 

9년 동안 지속된 안사의 난으로 중국의 인구가 3600만명이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전쟁은 비참했다. 그런 비참한 상황에서 두보는 시를 썼다. 자신과 백성들의 이야기를 시로 썼다. 결혼식 다음 날 남편을 수비대로 보내야 하는 신부의 비통함, 자손들을 모조리 잃은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강제징집에 맞서 한겨울의 싸늘한 길바닥에 드러누워 우는 비극, 처량한 달빛이 백골을 비추는 격전지의 밤, 전쟁에서 패한 병사가 찾아간 텅 빈 고향 등등, 이 모든 상황이 두보의 시로 승화되었다.

 

양귀비와 현종이 화청지(華淸池)의 온천탕에서 환락에 빠져 있던 날, 그의 아들이 굶어 죽었다는 개인사도 시 속에 기록했다. 남겨진 가족들은 누더기를 걸친 채 유랑하며 겨우 목숨만 연명했다. 잠깐 동안 미관말직에 근무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두보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빈곤했다. 그는 쉰아홉의 나이에 거친 바람이 윙윙대는 강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살아 있을 때 그의 시는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의 위대성을 알려준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0여년이 지난 뒤에야 등장했다. 한유·백거이 등의 눈 밝은 시인들이 두보를 발견했고, 소식·황정견 등이 그 뒤를 따랐다. 두보에 대한 존경은 중국에 국한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때 두보의 인기는 이백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그 비결을 역사가들은 군주에 대한 충성심과 백성을 염려하는 마음을 시 속에 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보의 시를 두고 어떻게 이렇게 건조한 보고서 같은 평가를 내린단 말인가. 그보다는 사람살이에 대한 본원적 성찰이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두보는 시에 관한 한 자존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쩌지 못한 가난이야 견딜 수 있었지만 자신의 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평생 동안 ‘시어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죽어도 그만두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살았다. 궁핍한 시인은 자식들에게 아무런 재산도 물려주지 못했다. 물려주기는커녕 스스로의 가난도 해결하지 못해 굶주리는 날들이 많았다.

대신 1400여수의 시를 남겼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남겨줄 것이 무조건 돈과 부동산만이 아니라는 것을 두보의 시는 말해준다. 이름 없는 촌부로 살더라도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포용하고 긍정하는 사람의 삶이라면 두보처럼 위대하다는 교훈을 들려준다. 시성(詩聖)의 가르침은 죽어서도 여전하다.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

 

/ 주간조선.

http://blog.daum.net/sixgardn

 

 

 

 

 

秋興1 / 杜甫(두보)

 

玉露凋傷楓樹林 (옥로조상풍수림)   옥 같은 이슬 맞아 단풍나무 숲 시들고

巫山巫峽氣蕭森 (무산무협기소삼)   무산의 무협에는 가을 기운 쓸쓸하다

江間波浪兼天湧 (강간파랑겸천용)   강의 물결은 하늘로 솟구치고

塞上風雲接地陰 (새상풍운접지음)   변방의 바람과 구름은 땅을 덮어 음산하다

叢菊兩開他日淚 (총국양개타일루)   국화 떨기 두 차례 피어나니 지난날이 눈물겨워

孤舟一繫故園心 (고주일계고원심)   외로운 배는 고향 생각에 묶여있다

寒衣處處催刀尺 (한의처처최도척)   겨울옷 준비에 곳곳에서 가위질과 자질을 재촉하고

白帝城高急暮砧 (백제성고급모침)   백제성은 높고 저물녘 다듬이질 소리 바쁘기만 하구나

 

 

 

秋興2  / 杜甫(두보)

 

夔府孤城落日斜 (기부고성낙일사)   기주의 외로운 성에는 저녁 해 기울고

每依北斗望京華 (매의북두망경화)   언제나 북두성 보며 서울을 그린다

聽猿實下三聲淚 (청원실하삼성루)   원숭이 울음 세 번 들으면 눈물이 떨어지고

奉使虛隨八月槎 (봉사허수팔월사)   사신 수행은 팔월 뗏목처럼 헛되었다

畵省香爐違伏枕 (화성향로위복침)   상서성에 숙직할 일 몸이 아파 어긋나고

山樓粉堞隱悲笳(산루분첩은비가)   산의 누의 성곽에는 애달픈 피리소리 은은하다

請看石上藤蘿月 (청간석상등라월)   보시오, 바위 위의 등라에 걸린 달이

已暎洲前蘆荻花 (이영주전노적화)   영주 섬 앞 갈대꽃을 비추고 있는 것을

 

 

 

秋興3 / 杜甫(두보)

 

千家山郭靜朝暉 (천가산곽정조휘)   산성의 일천 집들에 아침 햇살 고요한데

日日江樓坐翠微 (일일강루좌취미)   날마다 강가 누대에서 푸른 산기운 속에 앉아본다

信宿漁人還汎汎 (신숙어인환범범)   이틀 밤을 지낸 어부 다시 배를 띄우고     : 泛泛

淸秋燕子故飛飛 (청추연자고비비)   맑은 가을에 제비는 일부러 하늘을 난다

匡衡抗訴功名薄 (광형항소공명박)   광형처럼 간언을 올렸지만 공명은 낮았다

劉向傳經心事違 (유향전경심사위)   유향처럼 경전을 전하려 하나 마음과 일이 어긋나네

同學少年多不賤 (동학소년다불천)   어린 시절 같이 공부한 이들 모두 부귀하여

五陵衣馬自輕肥 (오릉의마자경비)   오릉 땅에 살면서 옷과 말은 빠르고 살찐 것들이라네


 

 

秋興4 / 杜甫(두보)

 

聞道長安似奕 (문도장안사혁기)   듣자니, 장안의 시국이 바둑판이라니    : 棋

百年世事不勝悲 (백년세사불승비)   평생의 세상 일 슬픔 이기지 못하겠네.

王侯第宅皆新主 (왕후제택개신주)   왕후의 저택은 모두가 새 주인

文武衣冠異昔時 (문무의관이석시)   문무의 의관도 옛날과는 다르다네.

直北關山金鼓 (직북관산금고진)   바로 북쪽 관산은 징과 북이 진동한다.   : 振

征西車馬羽書馳 (정서거마우서치)   서쪽 정벌 떠나는 수레와 말들 그리고 격문은 치닫고

魚龍寂寞秋江冷 (어룡적막추강냉)   가을 강은 차갑고 물고기도 조용하니

故國平居有所思 (고국평거유소사)   고국에 살던 그 때가 생각나네.

 

 

秋興5 / 杜甫(두보)

 

蓬萊古闕對南山 (봉래고궐대남산)   봉래산 높은 궁궐은 종남산과 마주보고

承露金莖宵漢間 (승로금경소한간)   이슬 받는 통천대의 금 줄기대는 하늘 은하수에 닿았도다

西望瑤池降王母 (서망요지강왕모)   서쪽으로 요지를 바라보니 서왕모가 내려오고

東來紫氣滿函關 (동래자기만함관)   동에서 온 보랏빛 상서로운 구름 함곡관에 가득하다

雲移雉尾開宮扇 (운이치미개궁선)   구름이 꿩 꼬리 깃 부채로 옮겨지니 궁궐의 부채 열리고

日繞龍鱗識聖顔 (일요용린식성안)   햇빛이 용의 비늘을 둘러싸니 비로소 임금의 얼굴 보였다네

一臥滄江驚歲晩 (일와창강경세만)   푸른 강 자연에 살면서 한해가 저물어감에 놀라나니

幾回靑瑣點朝班 (기회청쇄점조반)   지난 날 조회 때에 청쇄문에서 몇 번이나 점호를 받았던가

 

 

秋興6 / 杜甫(두보)

 

瞿唐峽口曲江頭 (구당협구곡강두)   구당협 어구와 곡강 머리가

萬里風煙接素秋 (만리풍연접소추)   만리나 되는 안개바람으로 가을이 가득하다

花萼夾城通御氣 (화악협성통어기)   화악루의 협성에는 임금의 행차가 이어지고

芙蓉小苑入邊愁 (부용소원입변수)   부용 작은 연못에는 변방 시름 깃든다

珠簾繡柱圍黃鵠 (주렴수주위황곡)   수놓은 기둥의 구슬발은 누런 고니를 두르고

錦纜牙檣起白鷗 (금람아장기백구)   비단 닻줄 상아 돛대에서 흰 갈매기 날아오른다.

回首可憐歌舞地 (회수가련가무지)   머리 돌려 노래하고 춤추던 곳 바라보니 애달프구나

秦中自古帝王州 (진중자고제왕주)   진중은 예로부터 제왕의 고을이라네.

 

 

秋興7 / 杜甫(두보)


昆明池水漢時功 (곤명지수한시공)   곤명지의 물자원은 한나라의 공이니

武帝旌旗在眼中 (무제정기재안중)   한 무제의 깃발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織女機絲虛夜月 (직녀기사허야월)   직녀 베틀 위의 실은 달빛 아래 실없고

石鯨鱗甲動秋風 (석경인갑동추풍)   돌고래 비늘 껍질 가을바람에 펄렁인다.

波漂菰米沈雲黑 (파표고미침운흑)   수초 열매 파도에 떠다니고 검은 구름 물에 잠기고

露冷蓮房墜粉紅 (노냉연방추분홍)   연방엔 이슬이 차고 붉은 연꽃은 떨어진다.   :墜

關塞極天唯鳥道 (관새극천유조도)   변방의 관문 하늘에 닿아 오직 새들만 날고

江湖滿地一漁翁 (강호만지일어옹)   강과 호수만 가득한 땅엔 늙은 어부 한 사람.


 

 

秋興8 / 杜甫(두보)

 

昆吾御宿自逶迆 (곤오어숙자위이)   곤오와 어숙으로 가는 길 구불구불  : 迤 

紫閣峰陰入渼陂 (자각봉음입미피)   자각봉 산그늘 미피 땅에 그리운다

香稻啄鸚鵡粒 (향도탁잔앵무립)   향기로운 벼에는 앵무새 낱알 쪼아 먹고    : 余. 餘

碧梧棲老鳳凰枝 (벽오서로봉황지)   벽오동 나무에는 늘 봉황새가 가지에 깃든다

佳人拾翠春相問 (가인습취춘상문)   봄이면 가인들은 비취새 깃털 주워 서로 묻고  : 捨

仙侶同舟晩更移 (선려동주만갱이)   저녁이면 좋은 짝이 함께 배를 타고 다시 옮겨갔다

彩筆昔曾干氣象 (채필석증간기상)   글솜씨가 한 때는 하늘을 찔렀는데

白頭望苦低垂(백두금망고저수)    백발 된 지금 바라보다 애써 고개 숙인다.   : 吟

 

 

 

윗글이 대부분 카페나 브로그의 글이다.

아래는 중국사이트의 자료이고 상단의 적색 표기는 오자로 보이고 옆에 표기한 字가 맞다.

 

 

 

 

《秋興八首》
杜甫

其一
玉露凋傷楓樹林,巫山巫峽氣蕭森。
江間波浪兼天湧,塞上風雲接地陰。
叢菊兩開他日淚,孤舟一繫故園心。
寒夜處處催刀尺,白帝城高急暮砧。

 

 其二
夔府孤城落日斜,每依北斗望京華。
聽猿實下三聲淚,奉使虛隨八月槎。
畫省香爐違伏枕,山樓粉堞隱悲笳。
請看石上藤蘿月,已映洲前蘆荻花。

 

其三
千家山郭靜朝暉,日日江樓坐翠微。
信宿漁人還泛泛,清秋燕子故飛飛。
匡衡抗疏功名薄,劉向傳經心事違。
同學少年多不賤,五陵衣馬自輕肥。

 

 其四
聞道長安似弈棋,百年世事不勝悲。
王侯第宅皆新主,文武衣冠異昔時。
直北關山金鼓振,征西車馬羽書馳。
魚龍寂寞秋江冷,故國平居有所思。

 

其五
蓬萊宮闕對南山,承露金莖霄漢間。
西望瑤池降王母,東來紫氣滿函關。
雲移雉尾開宮扇,日繞龍鱗識聖顏。
一臥滄江驚歲晚,幾回青瑣點朝班。

 

 其六
瞿塘峽口曲江頭,萬里風煙接素秋。
花萼夾城通御氣,芙蓉小苑入邊愁。
珠簾繡柱圍黃鵠,錦纜牙檣起白鷗。
回首可憐歌舞地,秦中自古帝王州。

 

其七
昆明池水漢時功,武帝旌旗在眼中。
織女機絲虛夜月,石鯨鱗甲動秋風。
波漂菰米沉雲黑,露冷蓮房墮粉紅。
關塞極天惟鳥道,江湖滿地一漁翁。

 

 其八
昆吾御宿自逶迤,紫閣峰陰入渼陂。
香稻啄余鸚鵡粒,碧梧栖老鳳凰枝。
佳人捨翠春相問,仙侶同舟晚更移。
彩筆昔曾干氣象,白頭吟望苦低垂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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