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양 미 술 자 료

[스크랩] 赤壁賦(적벽부) 강의 3

bizmoll 2013. 11. 11. 13:52

 

 

 

 

 

 

蘇者曰: 客亦知夫水與月乎?
 소자왈: 객역지부수여월호?

 
소자 말하되 "손님께서도 대저 물과 달을 아시오 ?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서자여사, 이미상왕야. 영허자여피 이졸막소장야.
盈虛 ①충만함과 공허(空虛)함 ②차고 기욺 ③번영(繁榮)함과 쇠퇴(衰退)함.
卒㉠마치다 죽다 군사 나라 마을 무리 백 사람 별안간 마침내 갑자기
消長 쇠하여 사라짐과 성하여 자라감
 
가는 것이 이와 같으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나 끝내 줄고 늘지 않으니,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 能以一瞬
개장자기변자이관지 칙천지증불 능이일순
曾 일찍 증.㉠일찍 거듭 이에 더하다(=增)
 
무릇 변하는 것에서 보면 천지도 한 순간일 수 밖에 없으며,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자기불변자이관지 즉물여아개무진야 이우하선호?
 
변하지 않는 것에서 보면 사물과 내가 모두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차부천지지간 물각유주

또, 대저 천지 사이의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구비오지소유 수일호이막취 유강상지청풍 여산간지명월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한 터럭일지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이득지이위성 목우지이성색 취지무금 용지불갈
 
귀로 얻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만나면 빛을 이루어서,
이를 가져도 금할 이 없고,이를 써도 다함이 없으니,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者之所共樂 客喜而笑 洗盞更酌
시조물자지무진장야 이오여자지공락 객희이소 세잔갱작
 
이는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손님이 기뻐서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따르니,
 
肴核旣盡 杯盤狼藉 相與枕籍乎舟中 不知東方之旣白.
효핵기진 배반낭자 상여침적호주중 부지동방지기백
肴 안주 효.㉠안주 고기안주. 核 씨 핵.杯盤 .술상. 흥취 있게 노는 잔치, 술잔과 쟁반.
杯盤狼藉 술잔과 접시가 마치 이리에게 깔렸던 풀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는 뜻으로, ①술을 마시고 한창 노는 모양()②술자리가 파할 무렵 또는 파한 뒤 술잔과 접시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이르는 말.  狼藉 여기저기 흩어져 어지러움
狼이리 낭.㉠이리 별 이름 어지럽다 허둥지둥하다
藉 깔릴 자.㉠깔다 빌다 갈다 의뢰하다 이바지하다 온화하다 위로하다 돕다 깔개 자리 가령 짓밟다 (적) 밟다 (적) 범하다 (적) 업신여기다 (적) 왁자하다 (적) 적전 (적) 끈 (적) .  枕베게 침.㉠베개 베다
籍문서 적.㉠문서 서적 호적 등록부 대쪽 올리다 밟다 온화하다(藉) (자)
 
고기와 과일 안주가 이미 다하고 술잔과 소반이 어지럽네.
 배안에서 서로 함께 포개어 잠이드니,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네.
 
 
 
 
▶ 소동파는 메이산[眉山:지금의 四川省] 출생. 자 자첨(子瞻), 호 동파거사(東坡居士), 애칭(愛稱) 파공
(坡公) ·파선(坡仙), 이름 식(軾). 소순(蘇洵)의 아들이며 소철(蘇轍)의 형으로 대소(大蘇)라고도 불리었
다. 송나라 제1의 시인이며, 문장에 있어서도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22세 때 진사에 급제하고, 과거시험의 위원장이었던 구양 수(歐陽修)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후원으로
문단에 등장하였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이 실시되자 ‘구법당(舊法黨)’에 속했던 그는
지방관으로 전출되었다.
 
 
천성이 자유인이었으므로 기질적으로도 신법을 싫어하였으며 “독서가 만 권에 달하여도 율(律)은 읽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일이 재앙을 불러 사상 초유의 필화사건을 일으켜 서울로 호송되어
어사대(御史臺)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며, 이 때 나이 44세였다.
심한 취조를 받은 뒤에 후베이성[湖北省]의 황주(黃州)로 유배되었으나, 50세가 되던 해 철종(哲宗)이
즉위함과 동시에 구법당이 득세하여 예부상서(禮部尙書) 등의 대관(大官)을 역임하였다.
 
 
황태후(皇太后)의 죽음을 계기로 신법당이 다시 세력을 잡자 그는 중국 최남단의 하이난섬[海南島]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7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던 중, 휘종(徽宗)의 즉위와 함께 귀양살이가 풀렸으나
돌아오던 도중 장쑤성[江蘇省]의 상주(常州)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폭넓은 재능을 발휘하여 시문서화(詩文書畵) 등에 훌륭한 작품을 남겼으며 좌담(座談)을 잘하고
유머를 좋아하여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었으므로 많은 문인들이 모여들었다.
당시(唐詩)가 서정적인 데 대하여 그의 시는 철학적 요소가 짙었고 새로운 시경(詩境)을 개척하였다.
대표작인 《적벽부(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이 작품은 소동파가 필화(筆禍) 사건으로 죄를 얻어 호북성의 황주[黃州]에 유배되어 1082년의 가을(7월)과 겨울(10월)에 황저우성 밖의 적벽에서 놀다가 지은 것이다. 7월에 지은 것을 《전(前)적벽부》, 10월에 지은 것을 《후적벽부》라 한다.
 
 
이 <작벽부> 라는 작품은 삼국시대의 옛 싸움터 적벽의 아름다운 경치와 역사의 대비,
자연과 일체화하려는 소동파의 제물철학(齊物哲學)이 결부되어,
유려(流麗)한 표현과 함께 문학으로서 높은 경지를 이룬 작품으로 만인이 애독하는 문장이다.
 
杯盤狼藉
전국 시대 초엽, 제()나라 위왕() 때의 일이다.
초()나라의 침략을 받은 위왕은 언변이 좋은 순우곤을 조()나라에 보내어 원군을 청했다.
이윽고 순우곤이 10만의 원군을 이끌고 돌아오자 초나라 군사는 밤의 어둠을 타서 철수하고 말았다.
전화 ()를 모면한 위왕은 크게 기뻐했다. 이어 주연을 베풀고 순우곤을 치하하며 환담했다.
"그대는 얼마나 마시면 취하는고? "
"신()은 한 되[]를 마셔도 취하옵고 한 말[]을 마셔도 취하나이다. "
"허, 한 되를 마셔도 취하는 사람이 어찌 한 말을 마실 수 있단 말인고?"
"예, 경우에 따라 주량이 달라진다는 뜻이옵니다.
만약 고관대작() 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마신다면 두려워서 한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오며,
또한 근엄한 친척 어른들을 모시고 마신다면 자주 일어서서 술잔을 올려야 하므로 두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옵니다.
옛 벗을 만나 회포를 풀면서 마신다면 그땐 대여섯 되쯤 마실 수 있을 것 이옵니다.
하오나 동네 남녀들과 어울려 쌍륙(:주사위 놀이)이나 투호(:화살을 던져 병 속에 넣는 놀이)를 하면서 마신다면 그땐 여덟 되쯤 마시면 취기가 두서너 번 돌 것이옵니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나서 취흥이 일면 남녀가 무릎을 맞대고 신발이 뒤섞이며 ' 술잔과 접시가 마치 이리에게 깔렸던 풀처럼 어지럽게 흩어지고[]'
집 안에 등불이 꺼질 무렵 안주인이 손님들을 돌려보낸 뒤 신() 곁에서 엷은 속적삼의 옷깃을 헤칠 때 색 정적()인 향내가 감돈다면 그땐 한 말이라도 마실 것이옵니다. "
이어 순우곤은 주색을 좋아하는 위왕에게 이렇게 간했다.
"전하,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픈 일이 생긴다'[]고 하였사오니 깊이 통촉하시오소서."
위왕은 그후 술을 마실 때에는 반드시 순우곤을 옆에 앉혀 놓고 마셨다고 한다.
 
사기(史記)의 골계열전(滑稽列傳)
 
湟 성지 황 ㉠성지(城池) 해자(垓子: 성 밖을 둘러싼 못) 우묵한 땅 물에 빠지다
 
 

 

 

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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