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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진진 美術史 강좌] 미술의 또 다른 길을 열어준 感性

bizmoll 2013. 11. 11. 13:06

 

 [흥미진진 美術史 강좌] 미술의 또 다른 길을 열어준 感性
朴一浩
⊙ 1959년 충남 부여 출생.
⊙ 대전고 졸업. 서울대 미학과 졸업. 同 대학원 문학 석사, 철학 박사.
⊙ 충남대 조소과 교수, 제2대 대전시립미술관 관장, 제5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전시총감독, 현대미술학회 회장 역임.
⊙ 저서: <미술은 언어다> <감성으로 보고 이성으로 읽는다> <예술의 길 문화의 길>
    <예술과 상징, 상징형식> 등.
⊙ 상훈: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1995).
朴一浩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그림1] 파르미자니노, ‘목이 긴 성모’, 1535년경, 패널에 유채, 215.9×132.1cm,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르네상스 시대 미술 애호가나 이론가들은 당대 거장들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초기 미켈란젤로 등에 의해 미술의 모든 것이 나왔다는 말들을 쏟아냈다. 미술 창작을 통해 더 이상의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랬을까? 그렇다면 르네상스 이후의 미술은 없어야만 할 텐데, 불행히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새로운 미술 작업이 시도돼 왔고, 시도되고 있다. 아니 그 당시에도 이들의 조급한 결론에 대한 반발이 있었으며, 당시 젊은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한 反(반)르네상스적 움직임인 매너리즘이란 예술 경향이 그것이다.
 
  16세기 중엽이 되면서부터 르네상스 미술의 이성적 재현에 대한 열기는 식어가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의 후기 작품에서 보였던 규칙으로부터의 일탈과 마찬가지로, 매너리즘에 속한 몇몇 작가들은 르네상스 시대 대가들이 만들어낸 규칙들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사용했다. 또 인체비례나 그림 전체의 통일성을 의도적으로 파괴하여 관심을 끌어내려 하기도 했다.
 
  이들의 이런 시도 이면에는 르네상스식 이성적 규칙에 입각한 재현이 미술의 해답일 수는 없으며, 미술작품을 이루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었다.
 
  따라서 미술작품을 이루는 또 다른 방법을 위해 르네상스 시대의 꽉 짜인 구성과 규범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이성적 재현을 통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묘사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 전달보다 감성적 표현을 통한 참신하면서 감동적인 그림을 구현해 내고자 했다.
 
 
  인체비례를 파기한 매너리즘
 
[그림2] 모랄레스, ‘피에타’, 16세기 말경, 마드리드, 페르난도 아카데미.

  [그림1]은 파르미자니노(Francesco Parmigianino·1503~1540)의 ‘목이 긴 성모’다. 이 작품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인체비례 규범을 찾아볼 수 없다. 마리아의 인체, 특히 손과 목이 부자연스러우리만치 길게 늘여져 있고, 하얀 살색으로 처리하여 가냘픈 인상을 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길게 늘여진 아기 예수의 몸은 성모 마리아의 몸으로 연결돼 S자 곡선을 형성, 마리아의 머리 위에서 정점을 이룬다. 오른쪽에 있는 신전 기둥도 길게 늘여져 있는데, 미완성인 채로 남겨두고 있다. 그 주변은 그림의 왼쪽과 달리 여백으로 처리함으로써 여유롭게 보이도록 하고 있다.
 
  인체비례와 공간의 안정성을 파기하는 매너리즘 경향은 또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그림2]는 스페인의 화가 모랄레스(Morales)의 작품 ‘피에타’다. 이 작품은 인체비례의 長身化(장신화) 경향이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파르미자니노 그림에서 보이는 우아함은 찾아볼 수 없고, 화면 전체에 비극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손과 팔이 길게 그려져 있지만, 각이 진 형태로 마무리되어 거친 느낌을 준다. 온몸에 난 상처들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스럽고 탈진한 모습이 느껴진다. 그리스도를 내려다보는 마리아의 얼굴에서는 사랑과 고통의 감정을 동시에 읽어낼 수 있다. 어둡고 음산하게 구성된 전체적인 색조와 강한 명암 대비가 이 비극적 장면을 한층 더 무겁고 침울하게 만들고 있다.
 
  이상의 그림들이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문제제기 성격을 갖는다면,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의 ‘최후의 만찬’([그림3])은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종언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이 그림 한 장을 통해서 르네상스 시대에 지켜졌던 모든 원칙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3]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94, 368.5×569cm, 베네치아, 성 지오르지오 마지오레 성당.

 
  바로크 미술의 새로운 시도
 
  틴토레토 그림 속의 여러 가지 시도는 그 뒤로 이어지는 바로크 미술의 새로운 시도를 위한 신호탄 역할을 하고 있다.
 
  우선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불안정한 사선 구도가 눈에 들어온다. 그 구도 안에 놓인 모든 인물의 윤곽선도 명확하지 않다. 아니, 윤곽선이 그림 속에 파묻혔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보인 치밀한 계산에 의한 꽉 짜인 구성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림 속 인물들의 배열이나 배경이 그림의 전면에 대해 평행적으로 배치되어 있지도 않다. 사선 방향의 테이블이 우리의 시선을 그림 안쪽으로 유도하고 있지만, 중앙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유다, 그리고 시중을 드는 시종들이 모두 딴전을 피우고 있어 그림 전체의 통일성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도가 그림의 초점이 아님도 분명하며,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역동적인 분위기만 느껴진다. 특히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명암 대비법을 강렬하게 구사함으로써 밝고 어두움에 의한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고 종교적인 신비성이 느껴지도록 한 듯 보인다.
 
  매너리즘의 예술적 경향에 대해서는 완벽함을 향했던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저항과 반발 또는 타성에 빠진 미술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렇지만 최근에 이르러 매너리즘에 나타난 감성적 표현이 17세기 바로크 미술에서 다듬어지고 펼쳐졌다는 점에 주목하게 됐다. 그 감성적 표현이 미술작품이 나아갈 또 다른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매너리즘 미술에서는 감성적 표현이 현실적인 미술 상황과 부딪치며 문제제기 방식으로 제시됐다면, 바로크 미술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조형언어로 정착하게 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바로크 미술의 특징
 
  바로크 미술은 이런 배경 속에서 나타났다. 바로크의 어원은 거친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바로코(barroco)’이다. 바로크 미술은 이성 위주의 르네상스 미술과 대조되는 몇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1) 르네상스 미술은 원근법을 통해 하나의 시점으로 통일되고 닫힌 공간을 만들어 내며, 전반적으로 정적인 느낌을 준다. 이에 비해 바로크 미술은 여러 개의 시점을 둠으로써 시각의 분산을 유도하고, 산만하게 퍼져나가는 느낌을 만들어 열린 공간으로 향한다.
 
  2) 르네상스 미술이 균형과 대칭의 조화를 중시한다면, 바로크 미술은 단순한 균형보다 불균형을 선호하고, 복잡한 구도와 흐트러진 형태를 통한 동적인 양상을 연출하려 한다. 또한 다채로운 빛과 색의 분위기를 통해 활기차고 극적인 느낌을 만들어 내고 있다.
 
  3) 르네상스 미술이 知的(지적)인 이해를 전제로 하는 선과 형태를 중시하고 그를 통한 조화와 비례를 강조하고 있다면, 바로크 미술에서는 감성적인 느낌에 호소하는 색채와 밝고 어두움의 대비를 통한 효과를 중시한다.
 
  이상의 특징들을 갖고 있는 바로크 미술은 우리의 감성에 호소하는 미술의 본격적인 시작인 것으로 설명되고 있으며, 감성적 표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의 차이에 따라서 두 개의 흐름으로 나누어진다. 역동적인 화면 구성과 다채로운 색상으로 대표되는 루벤스풍의 그림들과 빛의 효과에 주목하고 화면 전체에 극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렘브란트풍의 그림들로 구분해 볼 수 있다.
 
  前者(전자)의 예로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레우키포스 딸들의 약탈’([그림 4])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의 전체 구성은 다채롭게 구사한 색채, 그 속에서 날뛰는 두 마리 말과 두 남자의 격렬한 동작, 그리고 반항하는 두 딸들의 흐트러진 자세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구성 요소가 하나의 시점으로 모이지 않은 채, 전체적인 운동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 두 딸의 하얀 피부색이 화면의 중앙을 거쳐 오른쪽 위 하얀 말로 연결되고, 그 주위에 있는 두 남자의 거무튀튀한 피부색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림4] 루벤스, ‘레우키포스 딸들의 약탈’, 1618~19년경, 캔버스에 유채, 222×209cm,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등장
 
[그림5] 루벤스, ‘십자가를 세움’, 1609~10, 패널에 유채, 462.3×340.3cm, 안트베르펜 대성당.

  선을 통한 윤곽보다는 빛과 어둠이라는 좀 더 큰 영역들 사이의 대비가 강조되고 있다. 인물들의 배열도 아래에 있는 딸의 오른손에서 시작해 또 다른 딸의 몸을 거쳐 위에 있는 남자의 머리로 향하는 사선적인 형태로 이뤄져, 그림 공간 뒤로 들어가는 듯 동적인 느낌을 만들어 내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이 꽉 짜인 구성을 통한 계획된 그림처럼 보였다면, 이 그림에서는 우리의 시선이 어느 한 곳으로도 모이지 않는 산만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인물들의 흐트러진 자태와 불균형적 형태들이 자유로운 시선의 흐름을 만들어 내 열린 공간의 느낌을 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자유분방함과 활기참, 그리고 역동적인 느낌이 강조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루벤스의 또 다른 작품 ‘십자가를 세움’([그림5])에서도 마찬가지의 회화적 어법들이 보인다. 창백한 피부색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모습이 화면 중앙을 가로지른 사선 형태여서 상승감을 준다.
 
  주변은 어두운 갈색 톤을 주조로 한 색조조절을 보이고 있고, 중앙의 그리스도와는 극명한 명암 대조를 보이고 있다. 또한 개개의 인물들을 묘사한 윤곽선들이 다른 인물들의 윤곽선과 뒤엉켜 있으며, 그 사이를 색조조절에 의한 변화로 메우고 있다. 인물들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독립된 개체로 보인다기보다는 다른 구성 요소들과의 상대적인 관계를 통해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돼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루벤스의 이와 같은 역동성과 활기를 응용해 또 다른 방식의 바로크 미술을 만들어 낸 이가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다.
 
  렘브란트는 어두운 갈색을 주조 톤으로 하면서 어둠을 겨우 면할 정도의 희미한 빛을 묘사하여,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극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연극무대와 같은 효과를 만들어 낸다.
 
  그의 작품 ‘야경’([그림6])은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市(시)의 프란취 코크 부시장이 자위대를 이끌고 야간 순찰을 나가고 있는 장면인데, 연극의 한 장면처럼 그려져 있다. 자위대원 15명이 렘브란트에게 돈을 모아 주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잘 그려줄 것을 부탁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림6] 렘브란트, ‘야경’, 1642, 370.8×444.5c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활기참, 역동성, 다채로운 색상
 
  그런데 그림 속의 인물들은 위엄 있는 군인들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기보다는 출발하기 위해 허둥대는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개개의 인물 중에는 신체의 일부분만 보이기도 하고, 얼굴이 가려진 채 거친 붓 자국으로 단순화해 표현한 이들도 있다. 즉 루벤스의 작품에서 보였던 인물들 사이의 상대적인 관계라는 관점에서 묘사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화면 중앙의 일부분에만 빛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치게 함으로써 시선의 집중을 유도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극적이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흐르게 하여 열린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렘브란트에게는 선과 형태의 윤곽이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인가가 더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렘브란트는 빛의 효과와 밝고 어두움의 변화를 통해 열린 공간을 구축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바로크 미술 작가인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1599~1660)의 작품 ‘시녀들’([그림7])에도 이런 특성들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화면 중앙 오른쪽 위의 열린 문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고, 중앙에 있는 공주 마르가리타에게 빛의 효과가 집중돼 있다.
 
  왼쪽에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벨라스케스 자신의 모습이 반쯤 가려진 캔버스 사이로 보인다. 그리고 중앙 왼쪽에 위치한 거울에는 왕과 왕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초상화 작업을 위해 공주와 시녀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동안 왕과 왕비가 건너편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눈에 보이는 공간에만 주의를 기울였던 종전의 그림 방식과 달리 확장되고 열린 공간을 담아내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즉 벨라스케스의 이 그림에서도 바로크 미술의 열린 공간 개념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바로크 미술 작품들에서 우리는 르네상스 미술에서 볼 수 없었던 활기참과 역동성 및 다채로운 색상을 통한 새로운 분위기를 접하게 된다. 이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림이라기보다 감성이 묻어나는 그림들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바로크 미술의 이러한 요소들이 그 시대에만 국한돼서 나타난 특징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종전의 헬레니즘 미술, 중세 미술, 그리고 매너리즘에서 보였던 조형적 특징들이 합쳐져 나타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7] 벨라스케스, ‘시녀들’, 1656, 캔버스에 유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빛과 어둠의 영역의 배분
 
  헬레니즘 미술의 대표적 작품인 ‘라오콘 군상’에서 나타난 역동적인 포즈와 자세 및 표정에 대한 묘사가 있었고, 종교적 분위기 전달에 주목한 중세 미술의 특징들이 있었다. 그 위에 매너리즘 미술의 인체비례와 구도의 의도적인 파기가 덧붙여지고, 이런 조형적 특징들이 결합되면서 바로크 미술이라는 감성적 경향의 작품들이 꽃을 피우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렘브란트와 벨라스케스의 작품의 공통점은 선과 형태를 극명한 명암 대비를 통해 묘사함으로써 전체 화면에 변화를 주었다는 점이다. 바로크 미술의 조형적 특징은 빛과 어둠의 영역을 크게 배분함으로써 이 두 작가와는 다른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특징은 이후로 전개되는 감성적 경향의 미술 작품들에서 다양하고 혁신된 방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출처 : 보물섬
글쓴이 : mah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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