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양 화 (명화)

[스크랩] 렘브란트 - 자화상, 내면의 속삭임

bizmoll 2013. 8. 24. 10:37
렘브란트는 63년이라는 생애에 약 60점(100여점이라고도 함)에 달하는 자화상을 남겨 놓고 있다.

이 방대한 자화상을 그린 화가는 서양 회화 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으며, 굳이 비길 만한 예를 찾자면, 짧고도 비극적인 생애를 산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반 고호이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들은 자기 응시의 화가,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파헤치는, 내향적이자 인간의 정신적 갈등에 남달리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가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렘브란트에게 있어 자화상은, 렘브란트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와 예술적 편력(遍歷)을 더듬는 이정표(里程標)가 되고 있기도 하다.


SELF FORTRAIT

1628년경 板 油彩 23.4×17.2Cm

카셀 국립 미술관 소장



이 작품에는 연대가 기입되어 있지 않으나, 다른 자화상과 비교하여 1628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며, 렘브란트의 가장 젊은 날의 초상화이다.


SELF FORTRAIT

1629년경 板 油彩 37.9×28.9Cm

헤이그 마우리리치하이스 왕립 미술관 소장



SELF PORTRAIT

1640년 캔버스 油彩 102×80Cm

런던 국립 갤러리 소장



렘브란트 34세 때의 초상화이다. 이탈리아 풍의 호화로운 옷을 걸치고 베레모를 쓰고 의연히 앉아 있는 모습은 세속적인 성공을 거둔 화가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화풍으로 보아 이 작품의 중요성은 그것이 렘브란트의 이탈리아 회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는데 있다.


렘브란트는 평생 동안 이탈리아 땅을 밟지 않았다. 그 이유는 네덜란드에서도 이탈리아 회화에 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 자화상이 바로 네덜란드에서 본 이탈리아의 두 거장, 라파엘로와 티지아노의 작품에서 촉발되어 그려진 작품이다.


사실 렘브란트는 40년대에 들어서면서 바로크에서 탈피하여 고전적 세계의 전환의 징후를 보이며 그 경향이 이 작품에서도 눈에 뜨인다. 그러나 그는 고전을 본뜨면서도 자기 자신의 표현에 귀착하고 있다.


1657년경 板 油彩 49.2×41Cm

비인 미술사 박물관 소장



작품에는 제작 연도가 적혀 있지 않으나, 1657년 작 이라는 연대 추정이 확실하다면 이 초상화는 렘브란트의 나이 51세의 것이다. 이미 여기에서는 젊은 날의 패기는 없으나 대신 당당한 원숙기의 한 화가의 모습이 유감없이 묘출(描出)되고 있다. 얼굴이며 어깨 부분이며 다 같이 불굴의 의지에 넘쳐 있고 인간적인 시련을 겪은 한 인간의 의지가 넘치는 작품이다. 사실 1656년은 렘브란트가 파산 선고를 받은 해이다. 그러한 경제적인 역경과 이에 따르는 갖가지 어려움을 렘브란트는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이 초상화는 극복의 의지가 정력적으로 보이는 마지막 초상화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후의 초상화에서는 노경(老境)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어느 전문가에 의하면 이 초상화가 그려진 이후의 렘브란트는 급속하게 늙어갔다.


SELF PORTRAIT AS THE APOSTLE PAUL (사도 바울로 분장한 자화상)

1661년 캔버스 油彩 91×77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소장




이 자화상이 그려진 1661년은 노년에 들어선 렘브란트로서는 매우 풍성한 다작의 해이다. 이 해에 그는 다시 성서 시리즈를 그렸으며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이다. 작품의 제목은 제쳐 놓고 이 그림의 주인공이 렘브란트 자신임은 틀림이 없다. 그는 한손에는 책을 들고 있고, 망토 깃 밑으로 단검의 손잡이가 비쳐지고 있다. 그는 무엇인가를 묻는 듯 또는 물으면서도 그 대답을 넘겨짚은 듯한 눈초리로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초리는 노경에도 날카로움을 잃지 않고 있으며 '아직도 나에게 예언하는 힘이 있고 산을 움직일 수 있는 신앙심이 있더라도, 거기에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있은 것만 못하다.' 라고한 성 베드로의 말씀을 스스로 터득한 것인지... 그가 남긴 마지막 자화상은 그의 죽음의 해인 1669년의 것이다.


Self-Portrait

1669년.Oil on canvas, 59 x 51 cm

Mauritshuis, The Hague



Self-Portrait

1669년.Oil on canvas, 86 x 70.5 cm

National Gallery, London

 

 


그는 자신의 비속한 용모 때문에 주변에서 경원을 당했고, 또 단정치 못한 옷차림 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의 혐오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작업도중에 어떤 사람의 방문도 거절했다고 한다.


렘브란트만큼 많은 자화상(약 100점)을 그린 사람도 없다. 그것은 언제나 자기에 대하여 겸허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는 훌륭한 화가로서의 자신의 멋진 모습보다는, 몹시 어두운 배경 속에서 무엇인가 괴롭고 슬픔에 잠긴 듯한 찌그러진 인상의 자기 모습을 남겼다. 이처럼 렘브란트는 사람의 마음과 감정, 느낌, 생각 등을 뛰어나게 표현할 줄 아는 훌륭한 화가였다.


그러나 루벤스가 화가로서 성공을 거두고 부유했던 반면, 렘브란트는 가난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가 죽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옷 몇 벌과 그림 도구뿐 이었다고 전해진다.



Self-Portrait

1660년. Oil on canvas, 80,5 x 67,5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Portrait of the Artist at His Easel

1660년. Oil on canvas, 111 x 90 cm

Musee du Louvre, Paris

 

 

 


출처 : Free As The Wind. (바람처럼 자유로이...)
글쓴이 : 강병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