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양 화 (명화)

[스크랩] 르느와르..부드러운 햇살같은 질감

bizmoll 2013. 8. 24. 10:22

 

모네가 빛의 위대함과 눈부심을 그린 화가라면,

르느와르는 봄빛같은 따스함을 캔버스에 담아낸 화가가 아닌가 한다.

사랑스러운 질감과 보풀거리는 듯한 느낌..

르느와르는 작품의 작품에 보다 많은 빛과 밝음, 그리고 기쁨을 표현하였다.

 

르누아르, 르느와르, 르누와르, 르느아르 라는 이름으로..

 

 

뱃놀이에서의 점심. 1881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USA

 

위 그림은 르느와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가 주력했던 부드럽고 아름다운 그림의 결정체와 같은 그림이다.

인상파와 결렬한 그의 붓에는

특히 여인의 피부위에서 뽀얗게 피어나는 햇살의 반사광,.

르느와르는 여전히 인상파에 속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왼쪽에서 강아지를 얼르고 있는 여인이 르느와르의 부인이 되는 '알린 샤르고' 다.

 

 

물랭 드 라 갈레트. 1876

Musee d'Orsay, Paris, France

 

<물랭 드 라 갈레트> 역시 그의 대표적인 대작이다.

어찌보면 르느와르가 인상파와 결별하기 전에 그린 그림들이

그만의 색채를 더 잘 드러내주는 그림들이 많은 것 같다.

르느와르는 마네처럼 검은색을 다른 인상파 화가들보다 유독 많이 사용했다.

이 그림에서도 검은색은 흰색의 부드러운 지점을 돋보이게 하며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Pierre Auguste Renoir, 1841.2.25~1919.12.3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자화상. 1875

Francine & Sterling Clarke Institute, Williamstown, MA

 

가난한 도자기공의 아들로 태어난 화가는 도자기에 밑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다가

20세가 되던 1861년에 '에콜 드 보자르'에 들어가

글레르의 아틀리에에서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도구를 살수도,

모델을 살수도 없었고, 먹을 것을 사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Portrait de Romaine Lacaux, 1864

 

1863년은 르노와르가 <춤추는 에스메랄다>로 살롱에 입선한 해다.

이 성공에 힘입어 초상화 주문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 작품으로 말미암아 르노와르는 그 성가가 높아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상당히 아카데믹한 초기작이다.

 

 

La Loge <객석> 1874

Courtauld Institute Galleries, London, UK

 

 

클로드 모네의 초상화 1875

Musee d'Orsay, Paris, France

 

르느와르는 그림을 배우던 초기 시절, 젊었을 때부터 모네를 알게 되었다.

이 둘은 평생의 예술을 함께 하는 친구가 되었다.

제2회 인상파전에 출품했던 이 작품은,

모네와의 우정을 나타냄과 동시에

인상주의가 가장 순수하게 추구했던 시기의 화가의 한 단면이다.

르느와르는 그의 총감독 하에 1874년 첫 번째 인상파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 참담한 것이었다.

그들은 비평가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고,

관람객들은 매우 적었으며, 재정적인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무렵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어준

화상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뒤랑-루엘 이다.

뒤랑-루엘을 통해 르노와르는 다른 여러 화상들을 만나고,

자신의 후원자들을 조직하게 되면서 커다란 힘을 얻게 된다.

재정적인 어려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 것이다.

 

 

Path Leading to the High Grass,

approx. 1875

Musee d'Orsay at Paris

 

인상파풍의 밝은 볕살에 넘치는 명랑한 정경을 시원스레 그린 작품이다.

이 화폭 전체에서 풍기는 섬세하고도, 유연한 필촉은

르노와르 특유의 감각으로서 이와 똑같은 테마를 피사로나 모네도 그렸지만

이같은 유화(柔和)한 감촉은 르노와르 독자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르노와르의 풍경화 구도는 결코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레 경묘히 다룬다는 점도 특색임을 이 그림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보류 풍경

 

르노와르는 풍경을 결코 하나하나의 묘사하려 들지 않았다.

반면, 숲과 나무, 하늘과 구름을 따로이 설명하려 들지 않고

이를 하나로 융합하여 서로 대화하는 일체의 색감이 감돌도록 포착한다.

 

 

Dame Au Piano (피아노를 치는 부인)

1875, 캔버스에 유채, 93.4*74.3cm

시카고 미술관

 

대부분의 그림해설에서 이 그림의 모델을 화가의 아내라고 하는데

르느와르가 아내를 만난 시기는 1880년도,

그러니깐 그의 나이 40이 가까울 때였다.

이 그림은 1875년도에 제작되었기에 그의 아내를 만나기 전이다.

아마 당시 무료로 모델이 되어 준 '리자'가 맞는 듯하다.

Lise는 그가 31세가 될 때까지 그의 작품의 모델이 되어주었다.

그의 전기 작품에 자연과 함께 등장하는 여인은 거의 전부가 그녀이다.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

Madame Charpentier and Her Children Paul (at her knee) and Georgette

1878, Oil on canvas

 

1879년 살롱전에서 파란을 일으켰던 대형작.

아르그리트와 그녀의 딸 조르제트, 아들 폴(당시 풍습대로 여아 옷을 입혔다)의 모습을 담았다.

푸르스트는 샤르 팡티에 부인을 싫어했는데도

자신의 저서 <다시 찾은 시간>에서 이 그림에 관해 긴 묘사를 할애한 바 있다.

그는 "티치아노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에 비할만한 감미로운 그림"에

찬탄을 금하지 못하면서 르누아르의 이 작품은

다른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볼 수 없는 "우아한 가정과

정교한 복장에서 풍기는 시정(詩情)"을 완벽하게 포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작품은 1879년 살롱전에 선보여 대단히 호평을 얻었다.

이때부터 그려진 작품들은 소위 살롱의 검증 하에 출품되는 것으로 인식되어져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게 되어, 르노와르에게 부와 명성을 허락하게 된다.

자신만의 스튜디오를 파리에 갖게 되고

르노와르는 편안하게 작품활동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읽는 여인> 1876

Musee d'Orsay at Paris

 

자연보다는 인물을 중심으로 빛의 효과를 탐색하던

르느와르의 초기에 주로 그린 여인의 초상화들 중 하나이다.

이 모델은 ‘마고’라는

몽마르뜨의 화류계 여자로서 르느와르의 다른 작품에도 등장한다.

이 여자가 장티푸스(?)로 죽었을 때 르느와르는 그녀의 장례식 비용를 부담했다고 하네요. 눈썹과 육감적인 입술이 상당한 미인으로 보인다.

책을 읽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터치를 붉은색으로 처리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치 에로틱한 책을 읽고 그기에 몰입된 관능성이 보인다.

 

 

음악회에서

그의 나이 서른 살에 접어들면서부터

이 무렵에 그는 곧잘 소녀들을 모델로 해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특히 발랄한 젊은 소녀들을 대상으로 즐겨 그림을 그렸다.

 

 

Girl with Falcon 1880

 

 

Irene Cahen d'Anvers

1879

E.G. Buhrle Collection at Zurich

 

그의 예술의 옹호자였던 은행가 '루이 깡 단베르' 씨의 귀여운 막내딸이 모델이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의 한 가닥, 한 가닥은

르노와르 특유의 흐르는 듯한 붓놀림으로,

산만한 듯하면서도 매끄럽게 다듬어졌다. 청결하고 감미로운 작품이다.

  

Sleeping Girl, 1880

 

Two Sisters (on the terrace)<테라스에서>1881년

Oil on Canvas,

Art Institute of Chicago

"카탈로그에는 '두 자매'로 돼 있고, 대중은 '당신의 누이(가 계란을 빨아먹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한 비평가가 찾아낸 르누아르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은 그림의 하나였던 그림에 대한 평가의 전부였다. 모델들은 푸르네즈 레스토랑의 테라스에 앉아 있는데,

이 그림은 그 자매보다 장소 때문에 더 잘 알려져 있다.

 

르느와르 Renoir 는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열여덟 살 어린 여인,

20세의 Aline Charigot 를 만나 사랑을 키우게 된다.

알린은 르느와르를 알게되자 바느질일을 그만두고 그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그림 그리는 일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던 르느와르는

결혼의 결단은 내리지 못했다.

 

 

Portrait of Jeanne Samary,

1878, oil on canvas,

The Hermitage at St. Petersburg

 

사마리는 1875년 파리에서 상연된 몰레에르의 명작 '타르퀴프'에서

‘드린’ 역으로 데뷔하여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여배우이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활달하고 명쾌한 성격에 지적인 인상으로 사람들을 매혹시켰다고 한다. 르누아르 특유의 밀도가 짙은 핑크색 배경에

감싸인 여배우의 매력이 따뜻하면서도 맑고 우아하게 드러난다.

 

 

사마리 부인의 초상

 

Girls Putting Flowers in their Hats, 1890

Metropolitan Museum of Art at New York

 

 

Girls at the Piano

1892, oil on canvas,

Musee d'Orsay, Paris

 

부드러운 색조의 하모니를 꾀하고 있다.

여유 만만한 곡선의 굽이침이 화면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는데,

르노와르는 이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간을 몹시 좋아했다.

주제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범속한 장면이긴 하지만,

이러한 일상성 속의 유연함을 그는 다양한

색조로 포착한 것이다

 

 

목욕하는 여인들 1887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USA

 

목욕하는 여인들은 르느와르의 대표적인 그림이다.

이 당시 르느와르는 자신의 개성을 완전하게 표현하기 위해

인상파와 완전히 결별했다.

르느와르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남부지방을 여행하면서

자신의 형상을 햇살과 뒤섞는 법을 발견했던 것이다.

 

 

Bathers - Les baigneuses, 1918

 

르느와르가 말년에 류마치스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쉬지 않고 그렸던 누드화들 중 하나다.

이 시기에 그는 더욱 열정적으로 작업을 했다.

젊은 육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자연과도 같은

그 아름다움에 동화되어가는 기쁨을 놓치기 싫었던 모양이다.

르느와르는 많은 누드화를 그렸는데

말년의 그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이다.

 

 

초원에서 (On the Meadow)

1890, oil on canvas,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기타를 치는 여인 (화가의 아내)

 

1890년경에 이르면 르노와르의 부인상은 한껏 무르익어 간다.

모델도 점점 더 풍만한 여인이 많아지며,

그런 풍만한 육체 속에 감각적인 표현이 여물어 간다.

1910년 무렵 르느와르는 걸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르느와르는 손가락에 붓을 묶어놓고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질병속에서도 르느와르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르느와르의 아내는 1915년에 아들 장을 만나러 갔다가 세상을 떠났고

르느와르는 아내보다 4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출처 : Free As The Wind. (바람처럼 자유로이...)
글쓴이 : 강병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