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 (동양 화)

[스크랩] 나대경(羅大經) 산거(山居) / 그림, 詩에 빠지다. 조정육.

bizmoll 2013. 7. 31. 17:11

.

 

 

시 속의 시, 그림 속의 그림

 

 

산에 사네(山居)
나대경(羅大經)

 

 

산은 태고인 양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길기도 하네(山靜似太古 日長如小年)
내 집은 깊은 산속에 있어 매년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때면(余家深山之中 每春夏之交)
푸른 이끼 섬돌에 차오르고 떨어진 꽃이 길바닥에 가득하네(蒼蘚盈堦 落花滿徑)
문에는 두드리는 사람 없고 솔 그림자 들쑥날쑥한데(門無剝啄 松影參差)
새 소리 위아래로 오르내릴 제 낮잠이 막 깊이 드네(禽聲上下 午睡初足)
돌아가 산골 샘물 긷고 솔가지 주워와 쓴 차를 끓여 마시네(旋汲山泉 拾松枝 煮苦茗啜之)

 

 

 

▲ 김희성 ‘산정일장’. 종이에 연한 색. 29.5×37.2cm. 간송미술관

 

 

오랫동안 귀농을 꿈꾸던 친구가 드디어 사표를 던졌다. 퇴직금으로 강원도에 작은 집을 장만한 그는 인생 말년을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했다. 산새들이 극성스럽게 고성을 질러도 짜증스럽지 않은 곳으로 떠나는 친구의 얼굴은 긴 세월 우려낸 결심을 실천한 사람의 편안함이 담겨 있었다.

“정말 귀농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하면서 한없이 부러워하는 나를 뒤로 하고 그 친구는 강원도로 떠났다.
   
이제 그는 건조하게 울려대는 알람 대신 부드러운 침묵 속에서 잠을 깰 테고, 창가에 심어둔 대나무들이 뻣뻣해진 근육을 풀 때쯤 잠자리에 들 것이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며 달력을 넘기는 대신 푸른 이끼가 섬돌에 차오르는 모습을 보며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구름의 냄새를 맡고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사노라면 그에게 운명은 더 이상 납처럼 무겁지 않고, 거만하게 혼을 짓누르던 걱정 따위는 맥을 못 추고 물러날 것이다. 먼 산골이라 찾아오는 벗이 없어 적적할 때도 있겠지만 일하다 지치면 낮잠을 자고, 해질녘이면 마루에 앉아 노을을 고봉으로 담은 차를 마시며 시집을 펼칠 것이다. 갈 봄 여름 없이 저만치 홀로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사노라면 앞산은 태고처럼 고요하고, 아침 해는 소년의 앞날처럼 길기만 할 것이다. 산에 사는(山居) 사람의 고즈넉함이 그의 삶을 온기스럽게 데워줄 것이다. 그는 사람답게 살 것이다.
   
   
나는 이런 집에 살 거야
   
친구는 늠름한 산을 배경으로 아담한 살림집을 지었다. 몇 년 전부터 강원도 산골을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더니 특별히 언덕 위에 소나무 세 그루가 서 있는 터전을 골라 이삿짐을 풀었다. 넘치는 책을 주체할 수 없었던 친구는 초옥(草屋)을 두 채 지어 살림집과 서재를 분리했다. 전나무와 생강나무와 두릅나무 사이로 조심스레 기둥을 세우면서 도연명이 부럽지 않도록 복숭아나무를 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문은 위압스러운 철문 대신 싸리문을 세워 바깥과 안의 경계로 삼았다. 할 일 없는 날에 낮잠을 즐길 때면 천상의 학이 내려와 춤을 출 수 있도록 마당은 넓게 비워 두었다. 바람 부는 봄밤이면 복숭아꽃 아래 짜 넣은 편상에서 곡주를 마시며 인생을 음미할 것이다. 그때 싸리문 밖 버드나무는 귀거래한 주인을 위해 무희처럼 춤을 추리니 한 나라의 제왕인들 이보다 더 즐거운 말년을 보낼 수 있으랴. 삶이 곧 꿈이고 꿈이 곧 현실이라 꿈과 현실이 사이좋게 화해한 삶 속에서 집주인은 운명과 격한 전투를 벌이지 않고서도 구절양장 우수 어린 생애를 평화롭게 사는 법을 배울 것이다.
   
꿈을 꾸듯 강원도로 떠난 친구가 살아갈 산촌 생활 모습을 김희성(金喜誠·1710년대~1763년 이후)이 그렸다. 제시(題詩)로는 ‘산은 태고인 양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길다(山靜似太古 日長如少年)’라는 나대경(羅大經·1196~1252)의 시구절을 적었다.(문장이 길어서 뒷부분은 생략했다.)

위의 시구절은 흔히 앞 두 글자씩만 취해 ‘산정일장(山靜日長)’이라는 제목으로 많은 화가의 사랑을 받았는데, 출처는 중국 남송(南宋) 때의 학자인 나대경의 산문집 ‘학림옥로(鶴林玉露)’ 중 산속 생활의 즐거움을 읊은 ‘산거(山居)’ 편에 나온 문장이다. ‘학림옥로’는 나대경의 호 학림(鶴林)을 따서 지은 책으로 모두 18권이며 주희(朱熹), 구양수(歐陽修), 소식(蘇軾) 등의 문인과 학자의 어록, 시문에 관한 논평이 적혀 있다.
   
‘산정일장’을 그린 김희성은 화원(畵員) 화가로 호를 불염재(不染齋), 불염자(不染子)라 했는데 김희겸(金喜謙)이라는 이명(異名)을 썼다. 그의 아들 김후신(金厚臣)도 화원화가였다.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운 까닭에 그의 그림 속에는 스승의 화풍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데 ‘산정일장’도 마찬가지다.

 

‘산정일장’은 ‘학림옥로’의 내용을 모두 여섯 폭으로 그린 작품 중 한 폭으로, 성리학적 이상을 실천하며 사는 은자(隱者)의 삶을 담은 시리즈라 할 수 있다. ‘학림옥로’를 제재로 그린 작가로는 김희성 외에도 심사정(沈師正·1707~1769), 정수영(鄭遂榮·1743~1831), 이인문(李寅文·1745 ~1821), 김홍도(金弘道·1745~?), 오순(吳珣·?), 이재관(李在寬·1783~1838), 허련(許鍊·1809~1892)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때로 ‘학림옥로’의 내용을 여러 폭의 병풍으로 그릴 때도 있었고 한 폭에 전체 내용을 압축해서 그릴 때도 있었다. 어느 경우든 모든 그림 속에는 나대경의 글을 빙자한 화가의 꿈이 담겼다.
   
   
그의 시가 내 가슴에 들어왔다
   
그런데 나대경이 쓴 ‘산거’의 첫 문장 ‘산은 태고인 양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길다(山靜似太古 日長如少年)’라는 문장은 원래 나대경의 글이 아니었다. 당경(唐庚·1071~1121)이 쓴 ‘술에 취해 자다(醉眠)’라는 시의 첫 번째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1606년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주지번(朱之蕃)에 의해 전래된 ‘천고최성첩(千古最盛帖)’ 중 아산 선문대박물관에 소장된 임모본 ‘학림옥로도’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옆에는 ‘나대경이 말하기를 당경의 시 산은 태고인 양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길다(羅鶴林曰唐子西詩云山靜似太古日長如少年…)’라고 적혀 있어(‘子西’는 당경의 字) 나대경이 당경의 시를 인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한동안 학계에서는 이 글이 당경의 시인지 나대경의 산문인지 규명되지 않아 설전을 펼친 적도 있었다. 나대경이 선택한 당경의 시가 나대경의 시로 오인받을 만큼 다른 시구절과 조화를 잘 이루었음을 말해준다.
   
김홍도의 ‘삼공불환도’에 두 개의 서로 다른 글이 한 화면에 담겨 있다면, 김희성의 ‘산정일장도’에는 ‘시 속의 시’가 담겨 있다. 학문 간의 벽을 허물자는 통섭과 융합이 화두가 된 요즘, 그런 운동을 이미 300여년 전에 실천한 조선시대 선배들의 작품을 감상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 주간조선.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그림공부, 사람공부’

 

http://blog.daum.net/sixgardn

 

 

 

 

 

 

산가독서. 김희겸. 지본담채. 29.5x37.2cm

 

 

 

 

우리 옛 그림들의 해후(邂逅)

 

소당 이재관의 <산정일장山靜日長> 병풍


내 집은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아 봄에서 여름으로 바뀔 때면 섬돌에 푸른 이끼가 그득 피어 끼고 떨어진 꽃잎이 길에 너부러진다. 문을 두드리는 이 없고 소나무 그림자만 드리워지니 지저귀는 새 소리 들으며 낮잠을 청한다. 산골 샘물을 긷고 솔가지 주어와 쓴 차를 끓어 마시며...

(余家深山之中 每春夏之交 蒼蘚盈堦 落花滿徑 門無剝啄 松影參差 禽聲上下 午睡初足 旋汲山泉 拾松枝 煮苦茗啜之...)                                              

-당경(唐庚, 1071-1121)의‘산정일장山靜日長’에서


한자문화권에서 나이 들어 벼슬을 사양한[致仕] 선비들이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삶을 담아 오랜 세월 회자된 시문은 전원시인 도잠(陶潛, 365-422)의 ‘귀거래사歸去來辭’, 후한말기 정치가인 중장통(仲長統, 180-220)의 ‘낙지론樂志論’, 그리고 남송때의 당경(唐庚, 1071-1121)의 글인 ‘산정일장山靜日長’을 꼽게 된다. 이 글들은 조선시대 문인들이 즐겨 읽었고, 조선후기에는 그림의 주제가 되어 화면에 옮겨졌다. 또한 조선화단에서 남종화의 수용과 더불어 특히 후기화단에서는 그림속에 차가 등장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를 주제로 한 명품이자 대작으로는 이인문(李寅文, 1745-1824 이후)이 그린 8폭병풍 몇 틀이 남아 전해 특히 주목된다.* 이들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관을 비롯해 개인에게 소장돼 있다. 이 중 한 장면인 흐르는 계곡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이기는 탁족濯足은 종친화가 이경윤(李慶胤, 1545-1611)과 화원 이정(李楨, 1578-1607)이 그린 그림 등 조선 중기에 그려진 그림부터 현존한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그림으로 김두량(金斗樑, 1696-1763)과 김덕하(金德厦,1722-1744) 부자가 함께 그린 <사계四季 산수>의 긴 두루마리 중 <춘하도리원흥경春夏桃李園興景> 가운데 여름 풍경과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최북(崔北, 1712-1786경)의 <고사탁족高士濯足> 소품 등을 비롯하여 이 주제는 직업 화가들에 의해 줄기차게 그려졌다.

또 조선의 화성畵聖으로 일컬어지는 정선(1676-1759)도 <수치탁족潄齒濯足>같은 제사를 쓴 화첩에 속했던 소품도 공개되어 ‘산정일장’을 읽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정선의 경우는 그가 남긴 작품 중에 차를 마시를 그림 이른바 다화(茶畫)은 아직까지 단 한 점도 소개된 것이 없어 이 점은 다소 의외의 사실로 여겨진다.

 

 

<선면산수>, 1866년, 지본담채 20.0x60.6cm, 서울대학교박물관

 

 

김정희의 제자인 허련(許鍊, 1808-1893, 호는 소치小癡)은 1866년, 추사가 세한도를 그린 나이와 같은 59살 나이에 대표작중 하나로 손꼽히는 <선면산수扇面山水>를 그렸다. 소치는 이 그림의 상단 여백에 추사체로 ‘산정일장’ 전문을 빼곡히 적고 있다.

 

 

<삼인해후三人邂逅>,        <전다煎茶>, 지본담채     <치자공반稚子供飯>,         <오수午睡>,

지본담채                          120.0x56.0cm, 개인         지본담채                          지본담채

120.6x60.6cm, 박창훈 구장                                    124.0x56.0cm, 간송미술관   122.3x56.3cm, 리움

 

 

소당이 그린 그림 중에도 차를 주제로 한 것이 여러 점 있어 주목된다. 차 그림을 살피던 중 먼저 알려진 ‘새 소리를 들으며 청하는 낮잠[禽聲上下午睡初足]’인 <오수午睡> 외에 기 공개된 ‘산골 아낙과 어린 아이의 죽순과 고사리 반찬에 보리밥[山妻稚子作荀蕨供麥飯]’인 <치자공반稚子供飯>와 ‘창가에 앉아 글씨 쓰기와 다시 달여 마시는 쓴 차[弄筆窗間再烹苦茗]’인 <전다煎茶> 및 ‘농원 노인과 시냇가 벗들을 만나 뽕나무며 삼베 농사를 묻고 벼 작황에 관한 이야기[邂逅園翁溪友問桑麻說秔稻]’인 <삼인해후三人邂逅> 등 4폭이 일괄임을 알 수 있었다. 이에 2점 내지 4점이 더 존재했을 가능성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미세한 차이가 있으나 크기가 같고, 각 폭에 예외 없이 화가가 쓴 ‘산정무일’에서 따온 제사가 있고, 매 폭 찍힌 ‘진전한화秦篆漢畵’의 백문과 ‘필하무일점진筆下無一點塵’의 주문방인 두 도장 등으로 인해 전체가 한 자리에서 그려진 일괄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들 작품제목은 ‘산정일장’에서 따온 구절에서 비롯하니 알괄 그림들의 그림의 순서도 이를 따르면 될 것이다. 다만 <전다>뿐 아니라 <오수>에도 차 준비하는 동자가 비중 있게 등장해 작품명을 각기 <낮잠>과 <농필弄筆>로 지칭하기도 한다

 

<치자공반>은 1994년 가을 간송미술관에서 연 ‘조선화원화朝鮮畫員畵’ 기획전을 통해 공개되었다.

<전다>는 2009년 여름에 서울의 공화랑에서 개최한 ‘조선시대 서화감상전, 안목眼目과 안복眼福’을 통해 처음 공개되었다. 이 전시의 도록에도 이 작품이 <오수> 대련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나온 경매도록에 박창훈 소장으로 게재돼있는 <삼인해후>는 일견, 혜원선사慧遠禪師, 도잠陶潛, 육수정陸修靜을 그린 호계삼소虎溪三笑의 세 주인공을 그린 것처럼도 보이지만 화면 위쪽에 있는 제사로 보아 ‘산정일장’의 내용에 충실한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경매도록에 나온 이래 근자에 전혀 공개된 적이 없어 현재 그 소장처는 알 수 없고 현존 여부도 불분명해 오늘날에는 단지 도판으로만 그 내용을 살필 수 있을 뿐이다.

 

 

이재관, 그는 중인 신분의 화원이지만 이인상(李麟祥, 1710-1760)과 김홍도의 화맥을 이은 화가로 그가 추구한 그림세계는 여느 직업화가와는 다른 격조로서 문인화 경계로 흔연히 진입, 선비에 필적하는 맑고 담박한 그림 세계를 창출했다. 그림 속의 주인공들은 그가 바라고 원했던 그리고 추구한 이상형으로, 그의 자화상으로 보아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유작인 <오수>와 <송하선인>은 각기 <산거도>와 <송하선인도>란 명칭으로 10원짜리 우표로도 발행된 적이 있다.

 

이원복 /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

 

 

 

 

 

 

 

 

 

唐子西詩云:

 

「山靜似太古,日長如小年。」

 

余家深山之中,每春夏之交,

蒼蘚盈階,落花滿徑,

門無剝啄,松影參差,

禽聲上下。午睡初足,

旋汲山泉,拾松枝,煮苦茗啜之。

 

隨意讀周易、國風、左氏傳、離騷、太史公書及陶杜詩、韓蘇文數篇。

從容步山徑, 撫松竹,

與麛犢共偃息於長林豐草間。

坐弄流泉,漱齒濯足。

既歸竹窗下,則山妻稚子,作筍蕨,供麥飯,欣然一飽。

 

弄筆窗間,隨大小作數十字,

展所藏法帖、墨蹟、畫卷縱觀之。

興到則吟小詩,或草玉露一兩段。

再烹苦茗一杯,出步溪邊,

邂逅園翁溪友,問桑麻,說粳稻,

 

量晴校雨,探節數時,相與劇談一餉。

歸而倚杖柴門之下,則夕陽在山,

綠(翠)萬狀, 變幻頃刻,恍可人目。

牛背笛聲,兩兩來歸,而月印前溪矣。

 

산은 태고인양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길기도 하네
내 집은 깊은 산 속에 있어 매년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때면
푸른 이끼 섬돌에 차오르고 떨어진 꽃잎 길바닥에 가득하네
찾아와 문 두드리는 사람 없고 소나무 그림자 들쑥날쑥한데
새 소리 위 아래로 오르내릴 제 낮잠이 막 깊이 드네
돌아가 산골 샘물 긷고 솔가지 주어와 쓴 차를 끓여 마시네

내키는 대로 주역(周易,국풍(國風),좌씨전(左氏傳) ,이소(離騷),사기(史記),도연명(陶淵明),

두보(杜甫)의 시, 한유(韓愈)와 소동파(蘇東坡)의 문장 몇 편을 읽네
한가로이 오솔길을 거닐며 소나무·대나무를 쓰다듬고
새끼사슴·송아지와 더불어 긴 숲, 우거진 풀 사이에 누워 쉬기도 하고
흐르는 시냇가에 앉아 찰랑이며 양치질도 하고 발도 씻는다네
대나무 그늘진 창 아래로 돌아오면 촌티 나는 아내와 자식들이 
죽순과 고사리 반찬에 보리밥 지어내니 기쁜 마음으로 배불리 먹는다네

창가에 앉아 글씨를 쓰되 크기에 따라 수십 자를 써보기도 하고
간직한 법첩(法帖)·필적(筆跡)·화권(畵卷)을 펴놓고 이리저리 보다가
흥이 나면 짤막한 시도 읊조리고 옥로시 한 두 단락 초잡기도 하네
다시 쓴 차 달여 한 잔 마시고 집밖으로 나가 시냇가를 걷다보면
밭둑의 노인이나 냇가의 벗들과 만나 뽕나무와 삼베 농사를 묻고 벼농사를 얘기하네

날이 개거나 비 올지도 모른다는 얘기 주고받다가
돌아와 지팡이에 기대어 사립문 아래 서니 석양은 서산에 걸려 있고

자줏빛·푸른빛이 온갖 형상으로 문득 변하여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하지
소 잔등에서 피리 불며 짝지어 돌아올 때면

달빛은 앞 시냇물에 뚜렷이 떠오른다네

 

 

 

 

 

 

 

 

 

청말근대 화가 백종위(白宗魏)의 <산정일장(山靜日長)> 성면(成面)

 

 

 

청대(淸代) 화가 항문언(項文彦)의 <산정일장(山靜日長)> 횡폭(橫幅) (1889年作)

 

 

소치(小癡) 허련(許鍊)의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 소치는 화제로 <산정일장(山靜日長)> 전문을 빼곡히 올려놓고 있다.

 

 

청대(淸代) 화가 장차옹(張且翁)의 <산정일장(山靜日長)> (1824年作)

 

 

 

청대(淸代) 화가 고운(顧澐)의 <산정일장(山靜日長)> (1894年作)

 

 

청말(淸末) 화가 오곡상(吳穀祥)의 <산정일장(山靜日長)>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