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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학 박사 1호 이동천의 ‘예술과 천기누설’]
안중근 의사 왼손바닥 위조 특별전에 버젓이 출품
도장 위조한 가짜 서화작품 가장 흔한 수법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시회를 가보면 입구에서부터 관람객이 떠드는 관람 소감을 어쩔 수 없이 듣게 된다. 대부분 전시장 분위기에서부터 전시된 작품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너무너무 좋다’는 내용이다. 사실 감정 전문가인 내 눈에는 ‘특별전’이라는 전시가 거의 다 가짜 작품으로 채워졌는데도 말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조금만 의심하면 가짜에 이토록 쉽게 속지는 않을 것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일은 생각만큼 그리 어렵지 않다. 먼저 우리가 아는 ‘상식’에서 시작하면 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을 무조건 믿기보다 자신의 합리적 사고와 눈을 믿어야 한다. 작품을 좀 더 의식적으로 반복해 관찰하고 한 번이라도 손가락으로 따라 그려보면 절대 엉터리에 속지 않을 것이다.
빨간색 물감으로 도장 그리기도
이제 알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허술한 위조 세계부터 이야기해보자.
도장을 찍지 않고 아예 ‘도장을 그린’ 위조가 있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김홍도의 ‘묘길상’이 이 경우다(그림1). 미술사가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이 작품을 가리켜 “김홍도의 능숙한 수묵담채의 구사와 필치”라고 칭송했다. 이 작품은 간송미술관 2005년 봄 전시에 출품됐다. 작품 도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게 엉터리로 그렸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림2> 강세황(1713~1791)의 가짜 ‘방동기창산수도’에 그려진 도장 ‘첨재(添齋)’ 부분
<그림3> 강세황의 가짜 ‘방심주계산심수도’에 그려진 도장 ‘광지(光之)’ 부분.
이처럼 도장을 찍지 않고 그린 가짜로는 2003년 서울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한국서예사특별전 ‘표암 강세황’에 출품된 강세황의 ‘방동기창산수도’(그림2), ‘방심주계산심수도’(그림3) 등이 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이 가짜 작품들은 모두 빨간색 물감과 붓을 이용해 도장을 흉내 냈다.
누가 봐도 위조 기술치고는 정말 형편없는 수준이다. 이처럼 ‘빨간색 물감을 물에 타서 붓으로 그린 도장’은 붓질 흔적과 물감이 뭉친 것으로 쉽게 식별할 수 있다. 도장을 찍을 때 쓰는 인주는 물과 기름 성분으로 나뉘는데, 조선 후기 서화작품들을 보면 기름 성분 인주를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화작품에 찍힌 도장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이제 더 이상은 서화작품의 진위감정에서 중요하지 않다. 단순히 도장만으로는 작품 진위를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작품에 누구 이름이나 호가 새겨진 도장을 찍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작품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가짜 유명인 낙관 시중에 나돌아
<그림4> 안중근의 가짜 ‘등고자비’에 찍힌 가짜 손바닥(큰 그림)과 안중근 의사의 진짜 손바닥.
첫째, 작가는 죽어도 그의 도장은 남는다는 점이다. 올해 2012년 미술품 경매에 감정가이자 서예가로 활동했던 오세창(1864~1953)이 소장했던 ‘인장 모음-153과’가 출품됐다. 오세창 생전에도 이미 그의 가짜 작품이 나돌았는데, 이제 더는 그의 도장만으로 작품 진위를 밝힐 수 없게 돼버렸다.
둘째, 옛날에도 도장은 똑같이 위조됐지만 지금은 더 정교하게 위조된다는 점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가짜 낙관을 1000개나 가진 고미술상도 있고, 서울 인현동 인쇄소에서는 단돈 2800원에 30분이면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지문 틀을 완성해준다고 한다.
셋째, 도장은 찍는 상황에 따라 같은 도장이라도 다르게 찍힐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도장을 작품 진위감정의 근거로 삼을 때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판단해야 한다. 한 예로, 도장은 종이에 찍느냐 비단에 찍느냐에 따라 다르게 찍힌다.
손바닥을 엉터리로 대충 뭉개서 찍는 위조도 있다. 작가가 도장을 대신해 자기 손바닥을 작품에 찍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도장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예기치 않게 작품을 제작하면 대부분 이름만 쓰고 도장을 찍지 않거나, 나중에 보충해 찍는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자기 손가락을 끊어 구국투쟁을 맹세했던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1910년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죽음을 앞둔 안 의사는 자신이 남긴 서예작품마다 도장을 대신해 손가락이 잘린 왼쪽 손바닥을 찍었다. 2009년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한국서예사특별전 ‘안중근’에 출품됐던 작품 가운데 안 의사의 ‘등고자비’(그림4)는 위조자가 엉터리로 손바닥을 찍은 가짜다.
안중근의 가짜 ‘등고자비’는 글씨에 안 의사의 기백과 글씨 쓰는 습관도 없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가짜 작품에 찍힌 손바닥이 엉망이다. 이를 안 의사의 진짜 손바닥과 비교하면 누구나 육안으로 가짜임을 알 수 있다. 이 정도 위조 수준에 속았다면 안 의사의 손바닥을 똑같이 위조한 작품에 속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모든 게 참 어이없는 현실이다.
중국산 가짜에 수정 덧칠 ‘정곤수 초상’이 기막혀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짝퉁 서화작품 위조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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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말 편찬한 북방 중국어 학습서 ‘노걸대(老乞大)’를 보면, 1350년경 중국 베이징에 물건을 팔러 갔던 고려 상인이 돌아오는 길에 사온 중국 물건들은 적당히 싼 물건이나 가짜였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욕심이라는 건 변함이 없는지, 조선시대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
조선 후기 여항시인 조수삼(1762~1849)은 서울 사는 부자 손 노인이 감쪽같이 속아 가짜 중국 골동품인 벼루, 찻잔 등을 사들이다 살림이 거덜났다고 전한다. 10여 년 전, 필자는 ‘베이징의 인사동’으로 유명한 류리창에서 전문적으로 가짜 중국 서화작품을 파는 롱싱이랑(榮興藝廊) 사장으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짜인 줄 뻔히 알면서도 작품을 사갔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기도 했다.
뻔히 가짜 알면서도 구매하는 사람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인 이왕가박물관이 1918년 박준화로부터 사들인 ‘정곤수 초상’(그림1)은 가짜다. 최근 X선을 투과해 촬영한 결과(그림2) 이를 입증할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육안으로 보이는 초상화 밑에 중국 청나라 관리의 옷차림이 보이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미술사학계는 정곤수(1538~1602)가 임진왜란 때인 1592년과 1597년 두 차례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기에 ‘정곤수 초상’의 제작 시기를 그때쯤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정곤수 초상’은 중국의 가짜 초상화를 사다가 수정하고 덧그려서 조선시대 작품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는 서양화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 위에 다른 그림을 그린 것과는 전혀 다르며, 한국과 중국 두 나라에서 각기 다른 목적으로 위조자가 그린 가짜다.
만일 X선을 투과한 결과 그림 밑에서 명나라(1368~1644) 관리의 옷차림(그림3)이 보였다면, 누구도 정곤수의 얼굴을 모르니 그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린 초상화라고 했을 것이다. ‘다행히’ 청나라(1644~1911) 관리의 옷차림(그림4)이어서 중국에서 그린 가짜 초상화가 우리나라 위조자에 의해 고쳐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중국 고서화 작품 위조는 대략 3단계 과정을 거친다.
1단계는 위조하고자 하는 작가가 활동하던 때 사용했던 종이나 안료 등 창작 재료를 구한다.
2단계는 각각 그림과 글씨, 도장을 위조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인 분업을 통해 작품을 위조한다.
3단계는 표구하는 과정에서 각종 기술을 동원해 오래된 작품 같은 상태와 느낌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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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 작품으로 둔갑해 팔려
다행인 것은 가짜 ‘정곤수 초상’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고서화 작품의 위조는 대체로 수준이 낮다는 점이다. 무조건 지저분하면 오래된 것이고, 특정인의 도장만 찍혀 있으면 특정인 작품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살펴보면 엉터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황당한 일이지만, 우리나라 미술품 경매에서 중국 청나라 황제의 가짜 작품이 조선역관 작품으로 둔갑해 팔리기도 했다.
2003년 서울옥션 제84회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서 필자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상적(1804~1865)의 ‘시고대련’(그림5)에는 이미 청나라 강희제(1654~1722) 작품이라는 의미로 위조한 도장인 ‘강희신한(康熙宸翰)’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도 조선 역관인 이상적의 작품으로 둔갑해 경매 당시 치열한 경합을 거쳐 시작가보다 3배 이상 높은 가격에 팔렸다.
이 중국산 가짜를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위조했는지 그 과정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위조자들은 먼저 싼값에 강희제의 가짜 작품(그림6)을 사들였다. 그다음 강희제의 가짜 도장을 지워야 했지만 종이 바탕에 무늬가 있어 쉽게 시도할 수 없었다. 결국 위조자는 강희제의 가짜 도장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가짜 서명을 하려고 작품 좌우를 바꿨다. 그리고 작품 왼쪽 빈 공간에 이상적의 작품이란 의미로 ‘조선(朝鮮) 이우선(李船)’이라 서명하고 가짜 도장을 찍었다.
이상적은 명필도 아니고 이름난 유학자도 아니다. 다만 김정희(1786~1856)가 제주 유배 중에 그의 지조 있는 인품을 높이 사서 ‘세한도’를 그려줬다는 사실이 김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위조자들이 이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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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前 대통령 휘호 책 펴놓고 베껴
경매 앞두고 대담하게 전시, 가격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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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추정가 8000만~9000만 원에 나온 인쇄품
1990년대 중반, 중국 베이징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에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서예작품을 위조한 인쇄품을 진짜라면서 팔려고 가져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는 황당한 얘기여서 웃어넘겼지만, 언젠가 우리도 한 번쯤 겪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서울 인사동에서 필자는 마침내 인쇄된 그림을 진짜라고 속여 파는 고미술상을 만났다. 운치 있는 고미술품 상점에 들어가 구경하던 중 원작보다 조금 크게 인쇄된 그림을 보고 가격을 물었다. 나이가 지긋한 주인은 겸재 정선의 작품이라면서 200만 원을 불렀다. 어떻게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진짜냐”고 재차 물어봤다. 주인은 정말 진짜이며, 만약 가짜라면 자기가 경찰에 잡혀갈 거라고 말했다.
2007년 서울옥션 제106회 한국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서 필자는 인사동에서와 같은 일을 겪었다. 추정가 8000만~9000만 원에 출품된 ‘북산 김수철, 우봉 조희룡, 대산 강진’의 ‘산수도’(그림1)는 원작이 아니라, 원작을 사진으로 찍은 인쇄품이었다. 경매 도록에는 ‘삼베에 수묵담채, 52×32cm(4폭)’라고 해놓았지만, 실상 원작은 비단에 그린 그림이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비단이 확대돼 올이 굵은 삼베처럼 보였기에 삼베라고 속인 것이다.
위조자는 종이에 인쇄된 것을 감안해, 그림 둘레를 비단 대신 같은 종이인 금색지로 처리했다. 이러한 처리는 이 작품이 마치 일본인 손에서 나온 듯한 느낌을 주려는 의도였다. 위조자는 작품 겉틀을 투명 아크릴로 처리해 발각되지 않도록 주의도 기울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원작 또한 가짜라는 점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인쇄된 고서화작품 중에는 가짜를 진짜로 알고 만들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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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추정가 3000만~4000만 원에 나온 가짜 ‘휘호’ 작품.
그림보다 글씨 인쇄품이 타깃
일반적으로 그림보다는 글씨 인쇄품에서 위조자가 기술을 발휘한다. 2005년 서울옥션 제96회 한국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서 추정가 3000만~4000만 원에 출품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그림2)는 진짜를 영인한 인쇄품이다. 서예작품은 글씨 쓰는 속도, 필획의 겹침에 따라 먹 번짐과 농담이 다른데, 이 영인본은 농담이 변함없이 일정하다. 이 영인본에서는 위조자의 기술이 보이지 않고, ‘한국일보創刊二十周年記念’ 부분에 인쇄 과정에서 생긴 미세한 점이 많이 보였다. 누구나 전시장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의심할 부분이다. 도록만으로는 이것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현장에서 자기 눈으로 경매 전 응찰 희망물품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감정학은 실전 학문으로, 감정가는 반드시 미술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우스갯소리로 감정가는 아파도 안 된다고 한다. 항상 미술시장을 지켜봐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예작품을 전문적으로 위조하는 위조자가 있다. 2002년부터 미술시장에 나온 박 전 대통령의 서예작품을 지켜본 결과 그 수준이 나날이 발전하는데, 아마도 그동안의 판매를 통해 위조자들이 나름대로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한 예로 위조자가 인쇄품을 근거로 똑같이 묘사해 위조한 경우를 살펴보자.
2009년 제114회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에서 예상가 2500만~3000만 원에 출품돼 2550만 원에 낙찰된 박 전 대통령의 ‘휘호’(그림3)는 인쇄된 작품자료를 활용해 위조한 것이다. 작품 크기는 다르게 기입됐지만, 이 작품은 2007년 서울옥션 제105회 한국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 추정가 4000만~6000만 원에 출품했다가 유찰했다. 2009년 제114회 경매에서는 경매도록에 이 출품작의 ‘보조설명’으로 작품 수록처를 1975년판 ‘위대한 생애’ 169쪽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경매 전에 하는 전시인 프리뷰에서 대담하게 출품작 옆에 ‘위대한 생애’ 169쪽을 펼쳐놓고 같이 전시했다. 참고로, ‘위대한 생애’는 민족중흥회가 ‘박정희 대통령 휘호를 중심으로’ 1989년에 발행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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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2550만 원에 낙찰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짜 ‘휘호’.(왼쪽) 그림4. ‘위대한 생애’에 수록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작품.(오른쪽)
글자 간격 멋대로 치명적 실수
2550만 원에 낙찰된 박 전 대통령의 가짜 ‘휘호’와 ‘위대한 생애’ 169쪽에 수록된 작품(그림4)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먼저 간단하게 두 작품의 글자 크기를 같게 해서 맞춰보면 바로 알 수 있다(그림5). 위조자의 치명적 실수는 글자 사이의 상하좌우 간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작품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음으로 글자를 비교해보면, 박 전 대통령의 강단 있는 글씨와 다르게 위조자는 자신의 글씨 습관을 나타냈다. 특히 미묘한 차이지만 글씨 강약을 다르게 표현했다. 예를 들어, ‘年’ 자를 쓸 때 박 대통령은 글씨 중간에 위치한 두 획을 가볍게 쓴 데 반해 위조자는 힘을 줘서 썼다.
감정은 게임보다 재미있다. 필자는 당시 전시장에서 일반인 2명에게 이 작품과 작품 옆에 펼쳐진 ‘위대한 생애’ 책에 있는 도판에서 차이점을 찾아보라고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렇듯 의심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관찰하면 누구나 감정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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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 가짜 ‘휘호’와 ‘위대한 생애’의 글자 크기를 같게 해서 맞춰본 결과.
정교한 컬러 목판화 전문가도 눈뜨고 당했다
‘컬러 중복 인쇄법’으로 근현대 서화작품 대량 복제
그림1.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이 소장한 명대 ‘십죽재화보(十竹齋畵譜)’ 중 ‘조지농분(調脂弄粉)’.
1990년대 말 필자는 우리나라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가르치는 교수가 중국 여행길에서 목판화를 원작으로 잘못 알고 사와 한동안 웃음거리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화가가 판화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속았다는 말이 쉽게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럼 한번 실험을 해보자. 명나라 말기인 1620~1630년 제작된 ‘그림1’은 원작일까, 목판화일까. 정답은 목판화다.
중국 목판화는 기원이 상당히 오래됐다. 당나라 때인 868년 시작된 목판화는 원나라(1271~1368)에 이르러 빨간색과 먹색이라는 두 가지 색을 이용한 채색 기법으로 발전했고, 명나라 때는 ‘컬러 중복 인쇄법(彩色套印法)’이라는 매우 진화한 판화 기법이 출현했다. 이 판화 기법은 색깔에 따라 목판을 달리하는 것으로, 원작 색감에 따라 목판 순서를 달리해 색깔의 짙고 엷음은 물론, 번지는 효과까지 실감나게 재현했다. 지금은 중국 베이징의 롱바오자이(榮寶齋)가 이 기법으로 근현대 서화작품을 대량 복제하고 있다.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관에서 상설전시 중인 ‘옹방강의 서론’(그림2)은 먹색과 빨간색으로 만든 목판본이다. 이 복제품은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추사 김정희 : 학예 일치의 경지’ 전시뿐 아니라 지금 전시에도 ‘원작’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출품됐다. 글자들을 살펴보면 여기저기 목각 흔적이 보인다. 특히 글자 주변으로 보이는 흔적들은 목판을 찍는 과정이 그다지 매끄럽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림2.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목판본 ‘옹방강의 서론’(왼쪽).
그림3.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이 소장한 납전지에 쓴 옹방강 글씨.
그림4. 2억4000만 원에 낙찰된 안평대군의 복제품.
‘원작’ 타이틀 걸고 버젓이 출품
‘옹방강의 서론’은 일반 종이에 만든 것인데, 연구자들이 혹시 중국제 납전지(蠟箋紙)에 쓴 작품(그림3)과 혼동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청나라 납전지는 가공 방법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데, 기본적으로 표면에 얇게 ‘초(蠟)’를 칠한 뒤 옥처럼 반질반질한 돌로 광택을 낸 종이다. 초로 광택을 낸 종이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방수성이 뛰어나고 부식도 방지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종이에 먹이 스며들지 않아 시간이 지날수록 먹 떨어짐이 심하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는 붓으로 베껴서 그리는 모사(模寫)가 서화작품 복제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었다. 모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에 표현된 윤곽을 똑같이 그리는 것으로, 대략 2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종이를 원작에 덮은 후 창문 사이에 고정하고 맞은편에서 비치는 밝은 햇빛을 이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밑에서 빛이 올라오는 ‘라이트박스(light box)’처럼, 얇은 책상 밑에 등불을 달고 그 불빛을 이용하는 것이다.
2002년 서울 예술의전당 한국서예사특별전 ‘조선왕조어필’ 전시에 출품되고 도록에도 실린 안평대군(1418~1453) 이용의 ‘재송엄상좌귀남서(再送嚴上座歸南序)’는 원작이 아니라 모사된 복제품이다. 이 작품은 2010년 에이옥션 제11회 한국 근현대 및 고미술품경매에 안평대군의 진작으로 출품돼 2억4000만 원에 낙찰됐다(그림4).
이 작품은 원작을 모사한 것이 아니라, ‘원작 → 석각 → 석각의 탁본(그림5) → 석각의 탁본을 모사한 복제품’이다. 돌 표면에 글자를 파낸 석각을 종이에 먹으로 뜬 탁본은 일반적으로 원작 글씨보다 필획이 가늘다. 이는 마치 도장을 찍을 때 인주가 묻은 면이 종이에 더 넓게 찍히는 것과 같다.
그림5. 돌에 새겨진 ‘재송엄상좌귀남서’의 탁본.
그림6. 탁본의 흑백을 바꿔 글자가 검은색으로 나온 것.
그림7. 1447년 안평대군이 쓴 ‘몽유도원기’(왼쪽부터).
가짜를 모사한 복제품
그림8. 추정가 3000만~4000만 원에 나온 가짜 ‘추사 김정희의 서첩’.
탁본의 흑백을 바꿔 글자가 검은색으로 나온 것(그림6)으로 복제품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복제품이 탁본보다 필획이 가늘고 필획 간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 복제품을 이보다 3년 전에 쓴 안평대군의 ‘몽유도원기’(그림7)와 비교하면, 글자 크기가 조금 큰데도 결정적으로 필획에 볼륨이 없다.
복제품이라고 꼭 진짜만 모사하는 것은 아니다. 위조자가 모사한 작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고 제작한 경우도 많다. 2003년 서울옥션 제68회 우리의 얼과 발자취전 경매에 추정가 3000만~4000만 원에 출품된 ‘추사 김정희의 서첩’은 북송 명필인 산곡 황정견(黃庭堅·1045~1105)의 가짜 글씨를 모사한 ‘산곡신품’에, 김정희가 그 진위에 상관없이 붓글씨로서의 가치를 인정해 표구 부분에 글씨를 쓴 것처럼 위조됐다. 우리나라 위조자가 중국의 ‘가짜를 모사한 복제품’을 싼값에 사서 김정희의 광팬을 자극하는 미끼로 쓴 것이다.
‘산곡신품’은 매우 복잡한 가짜다. 중국 위조자들은 황정견 서체를 배운 심주(沈周·1427~1509)의 서체를 익혀 황정견의 글씨를 위조했다(황정견 → 심주 → 황정견의 가짜). ‘산곡신품’은 심주의 가짜를 모사한 복제품이다.
3년 후 ‘추사 김정희 서첩’은 추사 김정희 서거 150주기를 기념한 서울 예술의전당 한국서예사특별전 ‘추사 문자반야’에 ‘김정희 제 산곡신품’이란 이름으로 전시되고 도록에도 실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부패를 방지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겠다는 공공기관이 미술시장과 너무 가까웠던 것 같다.
조잡한 표구 실력 가짜 작품이 보인다, 보여
고서화 중 옛 편지 위조한 표구 작품 가장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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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강세황의 가짜 ‘간찰’(왼쪽). 그림2. 강세황의 ‘간찰’을 위조할 의도 없이 모사만 한 경우를 가상한 예.
중국 고서화 보존표구의 최고봉인 펑펑성(馮鵬生)은 시장 가던 길에 길바닥 골동품상에게서 생선 살 돈으로 가격 대비 괜찮은 작품을 샀던 일을 필자에게 무용담처럼 자랑한 적이 있다. 무슨 작품인지도 모른 채 표구만 보고 샀다는 것이다.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자신이 그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라서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표구에는 작품 히스토리와 컬렉터의 문화 수준을 짐작게 하는 정보가 얼마간 숨겨져 있다. 예부터 서화 위조전문가들은 이를 염두에 두고 가짜 작품의 표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서화작품 수명은 표구에 달렸다. 우리나라 가짜 고서화작품을 보면, 대부분 표구에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 지저분하고 엉망이다. 유행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 표구 형식이 때로 진위 감정에 결정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감정가가 아니더라도, 표구에 대한 기본 상식은 작품 감상에 유용하다. 꼼꼼히 살핀 결과 작품 표구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면 의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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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편지만 표구한 김정희의 ‘서찰’.
현전하는 우리 고서화 가운데 수량이 가장 많은 것은 아마도 선비들끼리 주고받은 편지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당대 명필로 이름났던 선비들의 편지가 비교적 많다. 지금처럼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고 전시회가 없었던 옛날에는 문인의 기본 소양인 붓글씨를 배울 만한 교재가 적어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비쌌다. 그래서 명필의 편지는 붓글씨를 학습하는 교재로 양반가에서 소중하게 다루고 보관했다.
2003년 서울 예술의전당 기획 한국서예사특별전 ‘표암 강세황’에 출품했던 학고재 소장품인 강세황(1713~1791) ‘간찰’(그림1)은 위조자가 어처구니없이 실수한 가짜다.
위조자가 종이 한 장에 봉투와 편지를 같이 쓴 것이다. 봉투는 편지를 넣는 것이기에 당연히 분리돼야 마땅하다. 만일 처음부터 위조할 의도 없이 모사만 한 것이라면 봉투는 편지 뒤쪽(왼쪽) 부분에 썼어야 한다(그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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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편지와 봉투 앞뒷면을 펼쳐서 표구한 김정희의 ‘서찰’(왼쪽).
그림5.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최북의 가짜 ‘나무 그늘 아래서의 여유’, 종이에 수묵담채.
강세황 ‘간찰’ 위조 어처구니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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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6. 겉면이 뜯긴 김구의 ‘재덕겸비’.
옛 편지의 표구 방식은 대체로 세 가지다. 봉투 없이 편지만 표구하거나(그림3), 편지와 봉투의 한 면을 같이 표구하거나, 편지와 봉투의 앞뒷면을 펼쳐서 표구한다(그림4). 강세황의 가짜 ‘간찰’을 만든 위조자는 편지와 봉투 뒷면을 같이 표구한 것을 종이 한 장에 같이 쓴 것이라고 잘못 안 듯하다. 극히 예외로, 명필이 아닌 선비가 어려움에 처해 친지에게 편지를 쓸 경우에는 종이 한 장에 쓰기도 했다. 강세황의 가짜 ‘간찰’은 옛날 그림에 큰 글씨로 네 글자를 써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고 돌려보냈다는 내용이다.
작품을 표구하는 과정에서 흔히 사용하던 위조 방법으로, 한 번만 알면 다음부터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게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던 방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사용하는 위조 방법이다. 위조자가 종이에 완성한 그림이나 글씨의 겉면과 속층을 분리해 각각의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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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7. 김정희의 가짜 ‘자화상, 자제소조’, 종이에 수묵담채(위).
그림8. 예산 김정희 종가가 소장한 ‘김정희 초상’ 부분, 비단에 채색.
겉면만으로 만들 경우 속층이 없어져 전체적으로 색감이 옅어진 것을 보완하려고 위조자가 뒷면에 누리끼리한 종이를 댄다. 벗겨진 속층으로 작품을 만들 경우 원작과 비슷하게 먹이나 물감으로 필선과 색깔을 보충하고, 상황에 따라 위조한 도장도 찍는다.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호생관 최북’전에 출품한 최북의 ‘나무 그늘 아래서의 여유’(그림5)는 전체적으로 그림이 희미한데, 이는 그림 겉면을 벗겨내서 그런 것이다. 위조자는 속층으로 표구한 다음 대충 덧칠을 하고 위조한 도장 ‘호생관’을 찍었다. 이 원작의 겉면은 이미 없어졌지만 최북의 그림은 아니다.
전시회 설명에 따르면, 이 작품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1917년 일본인으로부터 사들인 ‘제가화첩’ 가운데 한 작품이다. ‘제가화첩’ 가운데 ‘푸른 바다의 해돋이를 보다’는 겉면이 벗겨진 속층을 표구한 다음 색깔을 덧칠하고 글씨와 도장을 위조했다. 참고로, ‘제가화첩’은 작품 전부가 허접한 가짜다.
가짜 그림에 가짜 글씨의 추사 자화상
2005년 제32회 한국미술품경매 당시 1300만 원에 나왔던 김구(1876~1949)의 ‘재덕겸비(才德兼備)’(그림6)는 원작의 겉면이 뜯긴 속층으로 작품을 만든 경우다. 이 작품은 작가가 먹물을 흥건하게 사용해 종이 아래까지 먹물이 스며든 것을 위조자가 이용했다. 겉면이 사라진 흔적은 글자 중 ‘備’자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2006년 추사 김정희(1786~1856) 서거 150주기를 기념한 서울 예술의전당 한국서예사 특별전 ‘추사 문자반야’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서울 시내버스에 외부광고까지 한 김정희의 ‘자화상, 자제소조’(그림7)는 가짜 그림 위에 가짜 글씨를 오려붙인 황당한 위조작이다.
김정희의 자화상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얼굴 모습(그림8)과도 너무 다르고, 자화상 윗부분에 따로 붙인 글씨 부분은 아무렇게나 자른 종이를 마구 붙여놓아 지저분할 뿐이다. 후대 사람이 종이 부분만 붙였다고 해도, 전혀 근거 없이 자르고 붙인 것이다. 당연히 고급문화 중심에 서 있던 김정희가 그렇게 했을 리 없다.
/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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