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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도>는 다남자多男子의 상징으로 가장 사랑을 받는 그림이다. <백자도>에는 많은 사내아이가 떼를 지어 놀고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백자도> 에는 어른의 출세한 모습을 본뜨는 놀이들로 가득 차있다. 어사화를 쓰고 목마를 탄 미래의 과거급제자 일행이 악대의 음악에 맞추어 행진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평생도 의 과거급제 장면이다. 참으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보인다. 아들 하나만 바라다 가 여럿을 꿈꾸게 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출세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민화 <백자 도> 속에 간절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간절한 득남의 염원
Dearest Wish for a Son
글。정병모。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교수
사진 1) 범어사 독성각 입구에는 동녀와 동자가 새겨져 있어 안팎으로 다산에 대한 염원이 담긴 도상으로 가득하다.
| 범어사에는 매우 협소하지만 매우 간절한 소망으로 가득 찬 공간이 있다. 바로 독성각이다. 이 전각은 팔상전, 나한전, 독성각이 한 채로 연이어 붙어 있는 팔상나한독성각捌相羅漢獨聖閣중가운데 위치한다.
독성각이란 원래 나반존자를 모신 곳으로 사람들이 복을 기원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전각이 사내아이를 낳는데 영험한 곳으로 소문이 났다. 입구부터 이 전각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기둥 위에 동자와 동녀의 조각을 새겨놓았는데, 이러한 조각은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예이다.
사진 1 둘 다 기둥을 양 손으로 떠받들고 있으면서 다리의 자세에서 자유로운 변화를 주었다. 전각 안을 들어가 보면, 벽면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벽화로 그린 백자도百子圖로 가득 채워져 있다. 독성각, 아이들 조각, 백동자도 벽화, 이 세 요소들의 조화는 이 전각이 아이와 관련이 깊은 공간임을 알려준다.
| 이 전각의 <백자도>그림 1에는쌍상투를 한 동자들이 제기차기, 책읽기, 재주넘기, 술래잡기, 구슬치기, 말타기 등 놀이를 즐기는 모습으로 즐비하다. 이들 벽화의 소재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책을 잔뜩 싸놓은 책상에서 공부를 하는 모습이다. 백동자도와 책거리의 결합이다.
이는 공부를 잘 하는 사내아이를 많이 낳아 출세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찰 벽화로 민화인 백자도가 그려진 것일까? 이는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불교계에서 민간의 요구와 소망을 적극 받아들이려는 움직임 속에서 이루어진 선택이다. 불교계에서는 득남에 대한 대중들의 소망을 결코 외면하지 못했다. 어려워진 현실적인 여건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불교계에서는 대중들의 소망과 취향을 적극 수용하면서 적극적으로 다가간 것이다. 이 시기에 유난히 벽화나 불화 속에 민화나 민화 표현이 많이 등장한 까닭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득남은 단순한 소망이라기 보다는 간절한 신앙차원의 것이다.『 동국세시기』에 기록된 충청도 진천의 풍속 장면을 보면, 득남에 대한 염원이 절절하다.
“진천 풍속에 3월 3일부터 4월 8일까지 여자들이 무당을 데리고 우담牛潭의 동서東西 용왕당龍王堂 및 삼신당三神堂으로 가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 행렬이 끊어지지 않고 사방의 여인들이 모두 와서 기도하므로 사람들이 보기에 시장을 이룬 것같이 1년 내내 들끓었다.”
그림 1) 범어사 독성각 안에는 아이들이 제기차기 놀이와 책읽기 등을 하는 백자도가
중심이 되는 벽화로 그려져 있다.
1년 내내 아들을 소망하는 인파들이 시장바닥처럼 들끓었다고 하니, 아들을 바라는 소망은 얼마나 절실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용하다는 산신, 용왕신, 삼신, 칠성신, 미륵부처에게 빌고, 남녀의 성기 모양의 돌이나 나무에 비벼대며, 몸속에 부적이나 은장도를 지니고, 심지어 수탉의 생식기까지 날 것으로 먹었다. 남아선호의 양태는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생명을 존중하고 생산력을 중요시하며 가부장적인 권위가 지배한 전통사회에서 득남에 대한 열망이 높을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평범하게 보고 넘어갈 수 있는 범어사의 백자도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이처럼 득남의 염원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백자도百子圖는 다남자多男子의 상징으로 가장 사랑을 받는 그림이다. 백동자도에는 꼭 백 명은 아니지만 백 명 정도로 많은 사내아이가 떼를 지어 놀고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 그림의 유래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가장 유력한 주장은 중국 주周나라 문왕에게 백 명의 아들이 있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정조 때 북학파인 유득공柳得恭, 1749~1807이 지은 <맹영광백동도가백자도 孟永光百童圖歌百子圖>가 전하고 있어, 맹영광의 백자도가 조선 후기 백동자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상정해 볼수 있다.
그는 청의 화원 화가로 1645년인조 3에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따라 우리나라에 와서 3년간 머물다 돌아간 적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 전한 그가 그린 백자도의 행방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림 2) 입체적이고 견고한 이미지에 화려한 채색화풍을 구사한 궁중화풍의 백자도다.
서원희, <백자도>, 19세기, 미국 개인 소장
백자도는 원래 궁중회화다. 미국 개인소장 <백자도>그림 2는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자비대령 화원 서원희徐元熙가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이 궁중에서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하나 궁중의 화원이 그린 것으로 보아, 적어도 궁중화풍의 그림임에는 틀림없다. 그림의 왼쪽은 아래부터 괴석과 나무가 있는 산의 일각이 차지하고 그 위에 건물과 태호석으로 막고 오른쪽 공간을 터놓은 편파구도로 되어 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인 동자들은 건물 밖에 있는 매화나무 위에서 놀고 있다. 건물 지붕의 꼭대기에 설치한 취두에는 금박을 붙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윤곽이 뚜렷한 건물이나 입체적인 표현의 나무와 산에서 중량감이 느껴지는 조형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는 궁중회화에서나 가능한 양식이다.
이를 민화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백자도>그림 3가 있다. 이 그림은 궁중화풍의 백자도와 같이 화려한 채색을 베풀었으나, 명료하고 중후한 조형세계가 나타난 궁중 회화와 달리 선적이고 화사한 조형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대상을 표정의 변화가 없는 가는 선묘 위주로 묘사하기 때문에 대상들이 명료하거나 사실적으로 부각되지 않고, 그림 전체가 화사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태호석으로 둘러싸인 정원에서 15명의 어린아이들이 닭싸움을 즐기고 있다. 값비싼 태호석들이 즐비한 정원이 보여주듯, 이 아이들은 부잣집이나 귀한 집 태생임을 시사하고 있다. 아들을 많이 낳는 것 못지않게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도 중요하다. 백자도에서 배경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림 3) 조선의 여인들은 태호석으로 둘러싸인 부귀한 집에서 닭싸움을 즐기는 아이들을 그린 백자도를 안방에 병풍으로 꾸며놓고 늘 득남을 꿈꾼다. 줄을 서서 닭싸움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백자도>,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그림 4) 어린아이들이 풀을 뜯어와 서로 겨루는 투초鬪草놀이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백자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국립민속박물관소장 <백자도>그림 4는 간결한 구성에 맑은 채색을 베푼 그림이다. 우뚝 솟은 파초와 자유로운 형상의 괴석 사이에 아이들이 놀이를 즐기고 있다. 땅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투초鬪草라 하여 편을 나누어 여러 가지 풀을 뜯어와 겨루고 있다. 서로 뜯어온 풀의 이름을 맞추거나 서로 다른 풀을 뜯어 상대방
에게 없는 풀을 누가 더 많이 모았는가를 겨루는 놀이이다. 그런데 백자도에 이처럼 순수하게 어린이다운 놀이들은 줄어들고 출세한 어른을 흉내 내는 놀이의 비중이 점점 높아진다.
그림 5) 득남뿐만 아니라 출세까지 하기를 바라는 매우 현실적인 소망이 작품 속에 절절하다.
<백자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또 다른 작품인 <백자도>그림 5에는 어른의 출세한 모습을 본뜨는 놀이들로 가득 차있다. 원래 궁중의 백자도에 한 두 장면은 장군 놀이와 같이 어른을 흉내 내는 놀이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 병풍에서는 유난히 8첩 중에서 7첩이 출세한 어른을 흉내 내는 놀이로 채워져 있다.
어사화를 쓰고 목마를 탄 미래의 과거급제자 일행이 악대의 음악에 맞추어 행진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평생도의 과거급제 장면이고, 훈련원에 앉아 병사들을 호령하는 모습은 미래의 무관에 대한 꿈이 담겨 있는 장면이다. 참으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보인다. 아들 하나만 바라다가 여럿을 꿈꾸게 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출세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민화 백자도 속에 간절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이나 궁중의 놀이들은 조선이나 서민들의 놀이들로 바뀌게 된다. 이것은 민화가 서민들의 회화로 확산되고 정착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앞서 범어사의 백자도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곁에서 숨 쉬던 풍속이다. 필자도 어렸을 적에 놀아본 경험이 있는 놀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골에 가도 보기 힘들 정도로 역사 속의 한 장면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백자도의 놀이 풍속은 점차 우리와 친숙한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사내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은 그림 속에서 백자도에만 그치지 않았다. 씨가 많은 수박∙연밥∙석류, 씨와 더불어 넝쿨이 길게 이어진 포도, 발음이 비슷해 아들 있다는 뜻의 유자有子로 해석되는 과일 유자柚子, 남근처럼 생긴 오이나 가지 등 과일과 채소를 통해서도 득남을 기원했다. 그러나 이러한 간접적인 비유보다는 직설적으로 그 소망을 빌기에는 백동자만한 것이 없다. 신비화된 중국의 고사를 통해 더욱 큰 효험을 기대한 심리도 읽혀진다. 더욱이 득남에 그치지 않고 출세로 나아간 백자도를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매우 절실한 현실을 엿보게 된다.
국악누리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www.ncktpa.go.kr
출처 : 국립국악원
2007.06 MONTHL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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