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浪 李 鍾 祥
요즘 수묵화(水墨畵)와 사군자(四君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군자를 직접 배우려는 열의도 높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양(量)이 많아지다 보면 질(質)이 떨어질 수도 있듯이 우려되는 것도 없지 않다. 만약 검정물감으로 그리는 것이 수묵화요, 4가지의 식물을 그리는 것이 사군자라고 안일하게 믿어 그 속에 담긴 정신세계를 알지 못한 채 형식만을 흉내낸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비록 사군자가 중국에서 연원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 화목(畵目)은 이미 고려 때부터 우리 조상의 정신 속에 뿌리를 내려 독특한 우리 그림이 된지 오래다.
우리는 흔히 사군자를 '매란국죽(梅蘭菊竹)'이라고도 하지만, '난죽매국'으로 순서를 바꿔 부르기도 한다. 언뜻 보기에는 별스럽지 않은 문제같지만 실은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예부터 동양인의 생각(思考)과 예술에서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개의 개념을 상대적으로 보지 않고 하나로 조화시키려는 일원적 가치관을 보여왔다. 음악이 시간예술이고 회화가 공간예술이라는 현대미학(美學) 이론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사군자를 '매란국죽'이라고 순서 짓는 까닭은 사계(四季)가 분명한 환경 아래서 봄(春-東), 여름(夏-南), 가을(秋-西), 겨울(冬-北)의 시간적 변역(變易)을 의미하는 것이며 '난죽매국'이라고 순서 짓는 것은 남(南-老陽), 북(北-老陰), 동(東-小陽), 서(西-小陰)의 공간적 불역(不易)을 의미하는 습화(習畵)의 순서이기 때문이다.
동서남북의 방위와 춘하추동의 계절을 하나의 시공(時空)으로 일원화시켜 충족될 수 있는 그림이 곧 사군자인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바탕아래 현세적으로는 유교적 선비사상의 충절(忠節)을 의미, 매(仁), 국(義), 난(禮), 죽(智)을 높여 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또 조형적인 형상성으로 파악할 때 온 세상(萬類)의 가시(可視)적 현상(現象)은 곡선(蘭), 직선(竹)의 음양으로 대별되며, 그 중간자(中間子)인 반곡선(半曲線-菊), 반직선(半直線-梅)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동양화를 공부하려면 이같은 기본적인 조형실습을 통하여 높은 정신세계를 터득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사군자를 마치 산수화나 인물화를 그리기 위한 기초과정처럼 이해하면 큰 잘못이다. 사군자는 그 자체가 기초가 되면서도 곧 완성(完成)인 독립된 화목(畵目)인 것이다.
사의화(寫意畵)의 정수인 것이다. 잡다한 화목의 동양회화를 사군자 하나로 집약, 모든 조형양식과 예술철학을 응집했다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거대한 우주를 내다 보여주는 열쇠구멍과도 같은 이치로 사군자를 공부한다는 것은 동양화의 전부를 보는 것과도 같다. 일찍이 중국의 왕유(王維)는 우주의 만상(萬相)을 집약해서 수운묵장(水暈墨章)으로 표현하고 그림 그리는 방법 중에서 수묵화가 으뜸이라고 했다. 수묵은 단순한 흑색(黑色)이 아니라 만상의 합색(合色)이며 또 무채(無彩)인 것이다. 흑(黑)을 색으로 말한다면 까마득한 우주의 현색(玄色)이랄 수 있다.
이러한 수묵화는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완성되는데 의미가 있다. 이것은 피나는 노력으로 법도를 뛰어넘는 데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책자(書卷)의 기(氣)와 문자의 향(香)이 없고서는 먹물로 비질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수묵의 정신이 만들은 예술이 곧 사군자 화목이다. 이와 같이 수운묵장이 지니는 단순화와 집약화의 일회성(一回性)은 분립(不立) 문자의 선(禪)의 경지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표현의 주관(主觀)주의사상은 이상적 관념주의에 빠져들게 됨으로써 많은 문인일사(文人逸士)들이 자기의 심회를 토해내는 그릇으로서 사군자를 그려왔다.
사군자가 발전되는 주기를 보면 대체적으로 정권의 혼돈기와 교체기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유교적 충절사상 때문이기도 하다. 송(宋)말 정사초(鄭思肖)가 오랑캐(元)에게 나라를 뺏겼다하여 뿌리뽑힌 난을 그려놓고 더럽혀진 땅에 난을 싣지 않겠다고 울분을 표현한 것이나, 대한제국의 민영익(閔泳翊)이 왜놈에게 나라를 뺏겨 울분한 나머지 중국에 망명하여 오창석(吳昌碩)과 교우하며 충절을 의미하는 대나무를 집 뒤에 심고 천심죽재(天尋竹齋)라 이름하고 난을 그리며 망국의 한을 풀은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사군자 중에 묵죽이 중국에서 초당(初唐)때,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때 그려졌다고 하니 사군자 중에 대나무 소재가 가장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나무는 사시에 푸르러 곧고 굳은 절개가 충의열사에 비유되고 직선적이며 남성적인 기개가 호연지기하여 많은 문인묵객들이 즐겨 그렸다.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리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고 하여 대나무를 벗삼았고 서거정(徐居正)은 사가집(四佳集)에 '굽지도 않고 곧고도 발라서 천지간에 맑기가 으뜸'이라고 대나무의 기상을 상찬했다.
추사(秋史)의 '뇌운북죽화(雷雲墨竹話)'에도 우리 나라에서는 묵죽을 전공하면 화과의 품위가 산수화보다 높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묵죽을 중시하여 초기에 수문(秀文), 안견(安堅), 박팽년(朴彭年) 등이 한국적인 묵죽도를 남겼고 중기의 이정(李霆)에 이르러 좌수(左手) 묵죽의 높은 품격의 작품을 남겼다. 후기에는 거의 그의 양식을 토대로 하여 김세록(金世錄), 유덕장(柳德章), 조희룡(趙熙龍) 등이 뛰어난 한국적 묵죽도를 그렸다. 대나무 소재 다음으로는 매화가 그려졌는데 당(唐) 초기에는 역시 화훼로서 구륵진채(鉤勒眞彩)로 그려졌을 뿐 독립된 화목으로는 없었던 것을 이약(李約)이 처음으로 매화만을 그렸다고 하며 오대(五代)의 등창우(岌昌祐), 서희(徐熙)가 또한 매화를 그렸으나 모두 쌍구법(雙鉤法)이었다. 서숭사(徐崇嗣)에 이르러 몰골매(沒骨梅)를 그렸고 진상(陳常)이 비백채화매(飛白彩花梅)를 그렸으며 최백(崔白)이 묵매를 시도하여 석중인(釋中仁)에 이르러 본격적인 묵매와 '화매취상설(畵梅取象說)'의 화매론이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의 정지상(鄭知常)과 차원부(車原부) 등에 의해 그려졌으며 조선의 어몽룡(魚夢龍), 조희룡(趙熙龍) 등이 묵매에 뛰어났고 특히 김수철(金秀哲)은 한국적인 독특한 묵죽양식을 창출하였다. 대작으로는 오원(吾園)의 백매십곡병(白梅十曲屛)이 꼽힌다.
묵매 다음으로 난이 그려졌는데 이 또한 다른 화훼와 섞여 구륵진채로 그려져 오던 것을 송말원초(宋末元初)의 정소남(鄭所南), 조이재(趙彛齋), 관중희(管仲姬) 등이 묵란을 그렸고 그 후에 마린(馬麟), 백양산인(白陽山人)이 독특한 사의를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묵란이 그려졌는지 확실치 않으나 일반 화훼와 곁들여 산발적으로 구륵볍에 의해 그려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군자로서 면모를 갖추어 묵란이 본격적으로 그려진 것은 이조말기의 김정희(金正喜), 이하응(李昰應), 정학교(丁學敎), 임양재(林樣材), 김응원(金應元), 민영익(閔泳翊) 등에 의해서였다.
특히 완당의 '부작난도(不作蘭圖)'가 모여주는 한국인의 '무위지경(無爲之境)'은 시서화(詩書畵) 일치의 신운(神韻)을 한껏 보여주는 희대의 걸작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국화가 사군자로 그려졌는데 지금도 국화는 묵국(墨菊)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채국(彩菊)을 많이 그리는 것처럼 그 소재가 일찍부터 다루어져 화훼 금문(錦文) 장식문 등 수없이 보이나 묵국으로서 정절을 표상하는 덕목 삼아 사군자의 위치에 오른 것은 몹시 일천하다. '선화화보(宣和畵譜)'에 송(宋)의 황전(黃烹), 조창(趙昌), 서희(徐熙) 등이 채국을 그렸는데 남송, 원(元), 명(明)에 이르러 조이재, 이소(李昭) 등이 묵국으로서 능히 오상고절(傲霜高節)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규방작가들에 의해 일찍이 화훼와 곁들여 채국이 그려져왔으나 묵국은 말기에 이르러서야 묵객들이 즐겨 다루게 되었다.
(1982. 4. 25 / 조선일보, 일요문화강좌 지상박물관대학)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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