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의 그림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그의 살롱전 데뷔때 좋은 성적을 얻었지만, 곧 심사위원들에게 외명 당하기 시작한다.
최소한의 예술적인 시도가 하나의 싸움이고, 이는 마네가 죽는 순간까지 지루하게 계속된다.
풀밭위의 점심식사. 1863
19세기 당시 세계미술의 중심은 파리였고, 그 중에서 관전인 살롱전(le Salon de Paris)에 미술품을 출품하는 것이 모든 화가의 꿈이었다. 그러나 그 심사위원들은 대부분 보수주의자 였고 이들이 바로 그 시대의 대중의 기호를 결정짓는 잣대이기도 했다. 마네는 역시 '풀밭위의 점심식사'를 내놨다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만다..
마네는 사실 살롱의 이런 태도에 대항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대항한 것은 마네의 반대편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네가 전통적인 화법, 외관, 필법, 그리고 소재를 외면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점은 전통적인 것을 고집하고 있는 그들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마네는 이점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붓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피리부는 소년. 1866
전해의 올랭피아의 파문이 아직 가시기도 전에 마네는 이 그림을 살롱전에 출품하지만 또 떨어진다. 거절이유는 인물의 검정색, 빨강색이 배경의 중간톤과 충돌을 일으킨다는 점이란다..
그들에게는 앞을 바라볼 조금의 여유도, 아량도 없다. 오로지 전통과 양식만이 중요했다.
그 외의 것들은 생각할 필요도, 하등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기에 마네을 향한 그들의 눈길은 적대적이었고 비판적이었다..
오페라극장의 가면무도회, 1873
이 그림은 1874년 살롱전에 출품하나 낙선된다. 낙선이유는 당시의 실생활을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마네는 자신의 재능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지 과거의 미술을 뒤집거나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다만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림이 무엇이다 라고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말들에 괘념치 않는다.
하지만 굳이 내 의견을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인간의 영혼, 특히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표현하는 것만이
나의 관심사라고. 그것이 없으면 그림은 아무것도 아니다."
빨래
이 아름다운 정원에서 아름다운 모습의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도 살롱에서 떨어진다.
마네가 그리면 일단 인상부터 찡그리는게 당시의 화단의 모습이다.
나나, 1877
마네의 <올랭피아>가 보들레르 시대의 매춘부라면, <나나>는 제 3공화국의 창녀였다.
이 작품이 보기 좋게 낙선하자 마네는 이렇게 말했다.
"사티로스에게 몸을 맡기는 님프는 괜챤고, 옷을 벗은 아름다운 여인은 안 된다는 거야?" -ㅋ 마네답다..
마네는 이 작품을 카푸친가에 있는 장식품, 그림 등을 파는 가게 진열장에 걸었는데,
이 그림을 보러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실 화가가 자기 그림을 대중에게 보여줄 수 없다면, 그의 예술 행위는 자기 속에 갇힌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다시말해서 그린 그림을 창고에 쌓아 놓거나 보관하기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비평가들은 화가들에게 기다리라고 말한다. 뭘 기다리란 말인가?"그런 구태의연한 심사위원들이 전부 없어지기를 ?"
1882년 겨울에 그이 마지막 작품 <폴리 베르제르의 바>를 내 놓는다.
그의 마지막 그림을 보기 위해 파리 전체가 마네의 화실에 모여 들었다.
A Bar at the Follies - Bergeres, 1881-82
그 중 사람들은 키득거리며 심사위원들이 또 낙선시킬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하나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그는 아무런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한 유파의 우두머리였다. 바로 현대성의 유파이다..살롱전이 그를 거부하면,
이제는 파리가 그 살롱을 거부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작품이 살롱에 전시되었던 1882년..마네는 레죵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이듬해(1883년)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그에게 이 명예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니었을까...
150여년 전 마네가 살았던 시대나 작금의 한국의 화단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이 땅에서 학벌과 문벌과 작풍에서 소외되어 있는 의기소침한 화가들에게 마네는 분명한 대답을 보여주고 있다.
마네는 작품 하나 하나를 하나의 선언으로 출품하였고,
이런 화가의 진정성과 진지함..그리고 엄숙함..
마네와 살롱의 20여년에 걸친 싸움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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