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양 화 (명화)

[스크랩] Edward Hopper 에드워드 호퍼

bizmoll 2013. 7. 3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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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의 아트 오딧세이] 고독한 세상의 낯선 풍경

 

Edward Hopper 에드워드 호퍼

 

 

1940년 여름, 미국 동부 하이웨이에 어둠이 내린다. 인적은 벌써 끊기고 오가는 차도 끊겼다. 모빌가스 주유소 폴 사인 아래 표지등과 우체통 같은 빨간색 주유기에 불이 들어오고 중년의 삶이 고단해 보이는 한 남자가 주유기를 점검하고 있다.

날던 새도 숲속으로 돌아가고, 인적이 끊긴 사무실에서 흘러나오는 긴 불빛만 어둑한 시골의 밤을 밝히고 있다. 기름 넣을 자동차는 언제 오려나.


 

주유소부분, 1940년, 캔버스에 유화, 66.7×102.2cm, 뉴욕 현대미술관(MoMA)">

 


기약 없는 석양만 저물어간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의 작품 <주유소> 중 일부다. 아우성도 없고 주장도 없는, 그저 단순한 정적만 감도는 이 한 장의 풍경에서 깊은 우수와 오랜 시간의 흔적이 느껴진다. 인생이 무엇인지, 예술은 왜 필요한지 삶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 맴돈다.

감동은 소리 없이 온다. 소리치며 달려드는 뜻밖의 행운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런 기쁨은 로또같이 그저 살아가는 데 덤으로 받는 보너스다. 오랜 바람과 깊은 슬픔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리 없이 흐느끼게 하고, 사는 동안 두고두고 반추하며 그 순간을 기억하게 한다.

고요, 정적, 고독, 외로움은 시린 세상살이에 또 다른 에너지다. 호퍼는 자신의 삶 전체를 고요, 외로움과 마주하고, 대도시의 고독과 삶의 풍경을 적막한 빛과 그림자로 엮어 20세기 미국 회화사의 한 획을 그은 화가다.


뉴욕, 뉴욕

 

 

뉴욕은 고독한 도시다. 메트로폴리스의 불야성 42번가, 지상 최고의 쇼핑지 5번가, 왼손에는 독립선언서를, 오른손엔 횃불을 치켜들고 멀리 대서양을 바라보는 맨해튼의 파수꾼 자유의 여신상, 센트럴 파크, 워싱턴 스퀘어, 그리니치 빌리지, 월스트리트, 할렘, 브루클린, 스테이튼 아일랜드,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모두가 삶과 꿈의 천국과 지옥이다.
 
도시는 고독하다. 부가 넘칠수록 삶은 치열해지고 인간적인 정서는 갈수록 메말라간다. 하지만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으로 거리에 실업자로 가득할 때도 뉴욕은 예술과 경제와 자유의 특구였고 브로드웨이 밤무대는 꿈의 낙원이었다.

호퍼는 비개성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인 관찰을 통해 뉴욕 산업사회의 풍경을 연구했다. 화가의 눈으로 창문 너머로부터 빛이 비치는 현실의 풍경과 인간의 고독한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의 세상사와 동떨어진 단순하고 고독한 도시의 풍경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새로운 변화 속에서 현실감각이 뛰어났던 호퍼는 동시대 삶의 모습을 붓으로 그리는 시인이 됐다.

그가 즐겨 그린 등대와 부둣가, 중산층 가옥, 맨해튼 건물, 그리고 도시의 밤 풍경은 192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친 뉴욕의 우울한 시대의 초상이다.

<일요일 이른 아침>, 맨해튼 7번가 미드타운 건물에 햇살이 비친다. 상가의 쇼윈도와 2층의 창문도 모두 조용하다. 우유에 한 방울 블루잉크를 풀어낸 듯 연한 하늘빛이 신선한 아침의 시작을 알린다. 번잡한 인파와 자동차의 그림자는 찾을 길 없고, 비스듬히 서 있는 이발소 사인볼과 덩그러니 자리한 비상용 급수소화전만 일요일 아침 도시의 고요를 지킬 뿐이다.
 
붉은색 벽돌과 노란색 커튼, 그리고 초록색 상가에 비치는 맑은 햇살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 정적의 공간으로 그려냈다. 그는 인공 구조물을 자연과 같은 따뜻한 감성으로 바꾸어 추상 같은 사실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단순함과 생략이 만들어내는 공간을 색채의 인상적 병치와 명암의 극명한 조화로 마무리해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는 회화의 깊이를 보여준다.

호퍼가 나이 일흔에 그린 <아침의 태양>은 단순함과 생략이 만든 또 하나의 걸작이다. 중년의 여인이 가벼운 차림으로 침대 위에 앉아 있다.

아침의 태양, 1952년, 캔버스에 유화, 74×111.8cm, 오하이오 콜럼버스미술관">

 


창문으로 들어오는 뉴욕의 햇살을 맞으며 상념에 잠겨 있다. 맨해튼의 하늘이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르다. 강 건너 브루클린의 공장 굴뚝에서 뿜어 나오는 매캐한 냄새에 실려 오는 소음도, 아침을 알리는 워싱턴 스퀘어 파크의 새소리도, 브로드웨이를 질주하는 자동차 경적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숨죽이고 물끄러미 창밖의 풍경에 시선을 고정시킬 뿐이다. 붉은색 벽돌로 지은 이스트 빌리지의 스카이라인만이 뉴욕의 이미지를 남길 뿐이다. 여인과 침대와 벽에 비치는 아침햇살이 만들어내는 깊은 음영은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우수가 묻어난다. 간밤은 안녕하셨을까.
 

일요일 이른 아침, 1930년, 캔버스에 유화, 71.4×101.9cm, 뉴욕 휘트니미술관">

 


밤의 자화상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1940년대 뉴욕의 밤거리 풍경을 그린 그의 대표작이다. 불면의 밤, 잠이 오지 않는다. 어둠 속에 휴대전화를 꺼내 액정을 켠다. 빛이 쏟아진다. 순간 눈이 부신다. 문자라도 와 있으려나.

카카오톡은. 혹시 이메일은. 기다리던 소식은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은 문자를 열고 또 열어본다.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오지 않았다”고 어느 시인은 고백하지만 그래도 한줄기 빛 같은 희망으로 액정화면을 넘긴다.
 
어제와 변함없는 문자와 스팸으로 가득한 세상, 불면의 밤을 더욱 잠 못 이루게 한다. 그곳에 내가 있다. 새벽 2시가 지날 무렵, 보름을 넘긴 달빛도 힘에 지친 듯 무기력하다.

사는 게 모두 고독이다. 모두가 혼자다.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한겨울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마음에 한줄기 찬바람이 지나며 깊은 회한에 잠긴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 나는 어디쯤 가고 있는 걸까.

한낮에 그리도 북적이던 저 많은 고독한 군중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불 꺼진 가로등 아래 쇼윈도의 불빛만 차게 흘러 다닌다. 강을 건너는 야간열차 헤드라이트가 길게 허공을 비추며 흐린 차창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사방은 고요하다. 세상은 취침 중, 나는 불면의 밤이다.

호퍼가 바라본 불면의 밤, 필리스 아메리카 넘버 원 카페에서 우리들의 고독한 자화상들이 밤을 달래며 차를 마시고 있다. 남녀 주인공과 조연 커피 바리스타, 그리고 등장인물 한 사람 등 출연진 모두 네 명인 단편 영화 스틸처럼 도시인의 고독하고 우울한 내면의 풍경이 단돈 5센트의 커피와 마주하고 있다.

모두들 침묵하고 있다. 커피는 식고, 생각은 깊고, 시간은 더 깊은 새벽으로 흘러간다. 중절모를 쓴 중년의 신사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쥐고 모자 차양 아래 드리워진 그늘 사이로 깊은 시름을 허공에 뿌리고 있다. 주식이라도 날린 걸까. 금발에 가슴이 시원하게 파인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여인은 연인의 시름에 무거운 눈길로 자신의 손과 손톱을 습관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1942년, 캔버스에 유화, 76.2×144cm,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아무 생각 없이 남자와 앉아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선뜻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오늘의 감정과 지나간 시간과 불확실한 미래를 탁자에 걸쳐 놓는다. 둘은 연인일까.

밤을 달래며 불태우는 철부지 청춘의 불나방 같은 사랑이기도 하고, 세월의 시름이 한 줄 지나간 식은 사랑 같기도 하다. 그 옆, 역시 고독한 중년남자의 무기력함에서 미국 산업사회의 단면을 본다. 커피도 사랑도 대화도 귀찮은 듯 물이 담긴 유리잔만 만지작거리는 뒷모습에서 우리의 아버지와 남편과 세상을 본다.

호퍼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나는 밤거리가 특별히 고독한 장소라고 보지 않는다. 나는 장면을 극도로 단순화했고 레스토랑은 더 넓게 그렸다. 아마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도시의 고독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라고 적는다.

호퍼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뉴욕 5번가 빌딩의 숲 잠 못 이루는 밤에, 커다란 유리창에 클로즈업된 인물들의 표정에서 나는 밤보다 더 깊은 어둠을 본다. 깊고 푸른 카페의 불빛이 창 밖으로 흘러내리는 밤 카페 종업원이 “오늘은 어떠셨나요. 저는 힘든 하루였는데 사는 게…” 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말들은 침묵 중이다. 유리창 너머 반대편 유리창에 비친 맞은편 건물의 짙푸른 침묵처럼 고독한 도시의 밤은 깊어만 간다.

여름, 1943년, 캔버스에 유화, 74×111.8cm, 윌밍턴 델라웨어미술관">

 

 


빛과 그림자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은 말이 없다. <여름>, 속이 살짝 비치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인은 뉴욕 자신의 집 계단을 내려오다가 잠시 돌기둥에 기대어 무언가 상념에 잠긴다. 회색과 푸른색, 흰색의 주조에 검정과 노랑으로 악센트를 준 단순한 색깔의 배치는 작열하는 여름 태양빛과 선명한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호퍼는 “그림은 실제의 장소를 그대로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이루는 인상과 윤곽들을 조합한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다지 인간적이지 못한 것 같다.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집 벽으로 쏟아지는 햇빛이었다”라고 말한다.

여인의 우아한 자태와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커튼에서 정적인 깊이와 동적인 역동성이 보이는 순간, 정지 화면 같지만 사랑하는 애인을 전쟁에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있다가 외출하는 아침에 불현듯 떠오르는 절절한 그리움은 아닐지. 표정 깊은 얼굴에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침묵이 흐른다.

호퍼의 빛은 색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호퍼는 “빛은 현실을 표현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며 화가가 관찰하는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나는 빛의 표현에 관심이 있었고, 그림 속에 사물을 묘사하는 빛의 효과를 연구했다. 빛을 포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사물의 형태가 빛 속에서 모습을 감추기 때문이다. 오히려 밤 풍경을 묘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밤에 관찰할 수 있는 빛은 사물의 형태를 단순히 어둡게 드러내지만, 강한 태양빛은 형태를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명암과 색조를 통해 화면의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1942년, 캔버스에 유화, 76.2×144cm,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빛은 화가가 사물을 바라보는 본질이라고 생각하고 표면의 명암을 과감하게 생략했던 것이다. 이러한 호퍼의 빛 철학은 <등대>에서 잘 읽을 수 있다. <등대>의 강렬함은 디테일의 과감한 생략과 명암의 극명한 대조에서 오는 일종의 착각이다.

그의 <등대> 그림에서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등대’라는 단어를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바다와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현실 속 바닷가의 등대가 아니라 예술로서 새로 만들어낸 추상적인 등대다. 그래서 더 등대가 등대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고독한 뉴요커

호퍼는 1882년 뉴욕주 나약(Nyack)에서 태어나 뉴욕미술학교에서 삽화와 회화를 배우고, 뉴욕에 정착해 광고미술로 화가의 삶을 시작했다. 미국 전역과 유럽, 멕시코 각지를 여행하면서 그리기 시작한 도시와 삶의 풍경은 마침내 미국을 대표하는 20세기 사실주의 화풍의 대명사가 됐다.

마흔 둘이라는 다소 늦은 결혼과 자식이 없다는 것 이외에 예술가로서 굴곡진 삶도, 괴팍한 행동도, 위기의 시간도 없이 명예롭고 평범한 화가의 일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다.

맨해튼 워싱턴 스퀘어 노스 3번지 자신의 화실에서 1967년 5월 15일 화창한 봄날, 여든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임종을 부인은 이렇게 회고했다.

뉴욕 소호의 1800년대 공장 건물. 호퍼의 일요일 이른 아침같은 풍경이 살아 있다.">

 


“임종의 순간 호퍼는 집의 작업실에 있는 커다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는 데는 단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고통도 소란도 없이 떠나갔다. 그는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신문은 그의 임종을 기억하며 경의를 표했고, 뉴스위크는 그를 “매우 낮선 화가이자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낯설다니. 무엇이 그를 낯설게 만들었을까. 그의 작업장에서 느껴지는 고독, 간결함, 시공간에 대한 근심, 완결되지 않은 생각, 명상을 통해 단절된 고요함, 깊은 지성에서 풍기는 인상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다. 그가 그린 세상이 우리에게 낯선 느낌을 주는 것은 분초의 시각을 다투는 바쁜 현대인의 삶과는 너무 다른 고독한 세상의 낯선 풍경 때문이다. 호퍼는 시인의 감성으로 세상을 그린 고독한 뉴요커였다.



최선호 111w111@hanmail.net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 뉴욕대 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시카고 스마트뮤지움, 버밍햄 뮤지움 등 작품소장.
현재 전업화가. 저서 <한국의 미 산책>(해냄)


 

 

 


 


 


 


 

 


 





Rooms by the sea


New York Movie

 

 

 


Summer evening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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