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양 화 (명화)

[스크랩] <진주 귀걸이의 소녀>.달리의<기억의 영속성> / 박희숙

bizmoll 2013. 7. 31. 17:21

.

 

 

 

그림을 소재로 한 영화 속 비밀

 

진주 귀걸이의 소녀

 

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허구인지 혼동하기 쉽다.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허구를 현실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처럼, 그림을 소재로 한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림은 정지된 화면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것은 관람자의 몫이었다.
영화는 이야기가 없는 그림과 달리 극적 재미를 주기 위해 관람자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보여준다. 하지만 감독이 추구하는 상상의 산물인 영화를 본 대중들은 마치 그림 속 이야기가 진실인 것으로 혼동한다. 사실 그림 속 진실은 상상했던 것보다 평범하다.

영화 속의 줄거리를 그림의 진실인 것처럼 오해하는 대표적인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피티 웨버 감독이 2003년에 제작하고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슨이 주인공으로 열연한 <진주 귀걸이의 소녀>다.

 

▲ <진주 귀걸이의 소녀>-1665년경, 캔버스에 유채, 45*40, 헤이그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 소장

 

 

영화는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장편소설 <진주 귀걸이의 소녀>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그림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의 소녀> 작품을 보고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먼저 영화의 줄거리를 보면, 1660년 네덜란드에 살고 있던 소녀 그리트는 아버지가 시력을 잃자 가계에 도움에 되고자 화가 베르메르의 집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트가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자 베르메르는 그녀에게 색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베르메르의 탐욕스러운 후원자가 그리트를 마음에 들어 해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 줄 것을 요청한다.

그리트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던 베르메르는 비밀스럽게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마지막으로 아내의 진주 귀걸이를 걸어준다. 베르메르의 아내는 그리트가 자신의 귀걸이를 하고 초상화의 모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해 그녀를 쫓아버린다는 이야기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의 소녀>를 살펴보면 아무런 장식도 없는 어두운 방에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고 있다.

흰색의 칼라가 있는 황색의 겉옷을 입고 있는 소녀는 머리에 청색 터번을 쓰고 있고 터번 위에는 연노란 베일이 어깨 위까지 늘어져 있다.

소녀가 머리에 두룬 터번은 15세기 유럽에서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장식품으로 당시 투르크와 전쟁이었던 유럽은 아랍의 생활방식과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됐다.

이 작품에서 흑색에 가까운 어두운 배경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즐겨 그렸던 초상화 방식이다. 단조로운 배경은 인물을 더욱 뚜렷하게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무늬가 없는 황갈색의 옷은 흰색의 칼라를 강조하며 소녀의 얼굴에 관람자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소녀가 입을 살짝 벌리고 있는 모습은 마치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이는 네덜란드 풍속화의 기법 중 하나다.

얀 베르메르<1632-1675>의 이 작품에서 소녀의 귀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진주는 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반짝거리고 있는데, 진주는 전통적으로 정결함을 상징하고 있지만 종교적 의미가 숨겨져 있다.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았던 이삭이 아내에게 처음으로 선물한 것이 진주다. 부부간에 귀로 진주처럼 감미로운 말만 듣지 말고 그 어떤 말이라도 귀담아 들으라는 의미다.

베르메르가 소녀에게 터번을 씌운 것은 진주의 종교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그림 <진주 귀걸이의 소녀>는 영화의 줄거리와 달리 젊은 여인의 결혼식에 맞추어 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과학·기술3차원의 세계를 처음으로 표현

조토의 '동방박사의 경배'

 

사람, 거리, 건물 등등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은 3차원의 세계로 이뤄졌다. 그림에서 인물이나 사물을 처음으로 3차원 방식으로 표현한 화가가 조토다. 그는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데, 고대 회화의 기초단계인 선적인 도안에서 벗어나 인물이나 사물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조토가 도안 방식에서 벗어나 인물이나 사물에 입체감을 주어 자연스럽게 표현한 혁신적인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탈리아 파도바 성당에 그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연작이다. 조토는 14세기 서유럽에서 유행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그리면서도 주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창조했다.

 

▲ 동방박사 경배 -1304~1308, 프레스코화, 이탈리아 아레나 성당 소장.

 

 

연작 중에서도 조토가 혁신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창조한 작품을 꼽으라면 '동방박사의 경배'다. 이 작품은 신약성서 마태복음의 한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마구간 안에서 성모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별을 따라 왔던 동방박사들이 경배를 드리고 있다.

먼저 이 작품에서 조토의 혁신적인 방식이 잘 나타나 있는 곳이 마구간이다. 조토는 마구간 안에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가 있는 공간과 동방박사가 경의를 표하는 외부와의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마구간 지붕 안쪽에 짙은 색을 사용해 깊이감을 주었다. 당시에는 원근법이 발달하지 않았다.

또한 조토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으로 인물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다른 화가들은 인물들의 얼굴을 선과 면을 사용해 도상학적인 형태로만 나타냈었다. 조토는 인물의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실제의 모델을 관찰해 사실적으로 그렸다.

성모는 전통적으로 파란색과 붉은 색으로 된 옷을 입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파란색은 거의 훼손되어서 보이지 않는다. 조토는 파란색 부분만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템페라를 사용했다.

전통적으로 프레스코는 젖은 석회가 마르기 전 물에 갠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말하는데 안료가 석회에 깊숙이 스며들어 비교적 손상이 적다. 조토가 성모의 파란색 옷에 템페라 기법을 사용한 것은 천보다 선명한 색으로 표현하고 싶어서다.

안료를 달걀 노른자에 섞어서 그림을 그리는 템페라는 유화 물감이 발명되기 전 많이 사용되었다. 템페라는 색상이 선명하고 붓질이 용이하지만 프레스코화와 달리 접착력이 없어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안료가 떨어져 나가 그림이 손상된다.

동방박사가 왕관을 벗고 있는 것은 아기 예수에 대한 경배를 의미하며 전통적으로 동방박사는 청년, 장년, 노년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세 가지 대륙을 상징한다.

인물과 마구간 그리고 탁자는 실제의 모델을 관찰해 사실적으로 묘사됐지만, 낙타는 실제와 다르다. 낙타의 눈은 사람의 눈과 같이 푸른색이며 낙타의 발굽은 원래 셋인데 이 작품에서는 말발굽으로 그려졌다. 이는 조토가 낙타를 보지 못하고 상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조토(1267~1337)의 이 작품에서 가장 큰 특징은 마구간 위에 있는 별이다. 전통적으로 예수 탄생의 별은 성경에 따라 아기 예수를 가리키고 있는데 조토는 상상만으로 별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1301년 지구에 나타난 핼리혜성을 관찰해 그렸다.

당시에는 기독교 사상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시대지만 조토는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자신이 관찰했던 것을 그린 것이다. 조토가 관찰해 그린 핼리혜성은 오늘날과 똑같은 모습이다. 그 이후 1985년 핼리혜성을 탐사하는 우주선에 조토의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사라진 다빈치 명화 흔적 찾았다

 

베키오 궁전 벽면에 숨겨진 비밀

 

“체르카 트로바(Cerca Trova)!”

이탈리아 피렌체의 관광명소인 베키오 궁전 2층에는 ‘500인 회의실’이라는 대형 홀이 자리하고 있다. 홀의 양쪽 벽면에는 1563년 르네상스 화가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와 그의 제자들이 메디치 가문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대형 벽화 시리즈를 그렸다.

 

▲ 피렌체 베키오 궁전 벽화에 그려진 글귀 “찾으라 그리하면 발견할 것이다(Cerca Trova)” 

ⓒCity of Florence

 

 

그 중 ‘스칸나갈로 전투(Battle of Scannagalo)’라 불리는 바사리의 프레스코화 ‘마르치아노 전투(Battle of Marciano)’의 한 부분에서 ‘체르카 트로바’라는 글자가 발견됐다.

“찾으라 그리하면 발견할 것이다(Chi cerca, trova)”라는 성경 글귀다.

1970년대에 이 글귀를 발견한 피렌체 출신의 미술사가 마우리치오 세라치니(Maurizio Seracini)는 “사라진 다빈치의 작품이 여기 숨겨져 있다”는 바사리의 암호라고 주장했지만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 만큼 비웃음만 샀다. 

이후 세라치는 과학적인 분석법을 공부했다.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가 운영하는 ‘예술·건축·고고학을 위한 학제연구 과학센터(CISA3)’ 소장 직까지 맡게 된다. 그리고 최근 피렌체 시장의 허락을 받은 다음 과학장비를 이용, 벽면을 조사해 다빈치의 사라진 명화의 흔적을 발견했다. 30년 넘은 노력의 결실이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지난해 9월 관련기사(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atidx=0000053875)를 통해 세라치니 교수의 탐색 작업을 보도한 바 있다.


다빈치의 사라진 명화 ‘앙기아리 전투’

1505년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1505년 베키오 궁전에 벽화 ‘앙기아리 전투(Battle of Anghiari)’를 그리기 시작했다. 피렌체 공국 중심의 이탈리아 연합군이 1440년 앙기아리 평원에서 밀라노 공국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 내용이다. 맞은편 벽면에는 미켈란젤로가 ‘카시나 전투(Battle of Cascina)’를 그리기로 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구상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고 다빈치도 완성을 하지 못했다. 이후 작품은 종적을 감추었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안료가 녹아버렸다거나 불에 타 없어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 루벤스가 다빈치의 명화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앙기아리 전투’  ⓒLouvre

여러 작가들이 그린 습작만이 전해지고 있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한 벨기에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앙기아리 전투’가 그 예로 앞발을 든 말의 긴장된 근육과 잔혹한 표정으로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세라치니 교수는 ‘체르카 트로바’라는 글씨를 단서로 다빈치의 그림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등 국제연구진을 구성해 베키오 궁전의 벽면을 조사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2007년 프리랜서 사진작가 데이빗 요더(David Yoder)가 팀에 합류하면서 로버트 스미더(Robert Smither)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ANL) 연구원을 발굴했다. 은퇴를 앞둔 스미더 연구원은 인체 내에서 암의 위치를 고해상도 이미지로 찍어낼 수 있는 특수 카메라를 개발하던 중이었는데, 세라치니 교수의 계획을 듣고 흥미를 느껴 내시경 형태의 특수 감마선 카메라를 제작했다.

감마선 카메라는 일반 카메라와 구조가 비슷하지만 유리렌즈 대신 구리결정(copper crystals)이 사용된다. 중성자를 발사하면 목표물에 맞은 뒤 감마선으로 반사되는데 이를 분석해 화학성분의 유무를 알아낸다.

바사리의 프레스코화 뒤에서 특수물질 발견

연구진은 바사리의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벽에 지름 3센티미터의 구멍 여섯 개를 뚫고 내시경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구멍을 뚫을 위치는 이탈리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피렌체의 ‘피에트레 두레 미술복원 전문학교(OPD)’가 정해주었다. 균열이 발생했거나 복원 작업이 진행되어 바사리의 원작을 훼손시키지 않을 만한 위치였다.

벽면 뒤에서 수집된 샘플은 피렌체 소재 에디테크(Editech) 연구소와 폰테데라 소재 폰틀랩(Pontlab) 연구소가 분석했고, 다빈치의 그림이 벽면 뒤에 숨겨져 있다는 네 가지의 증거가 모아졌다.

첫째로 X선 분광기식 주사전자현미경(SEM-EDX)으로 분석한 결과, 다빈치가 ‘모나리자’와 ‘세례자 요한’ 등에 쓰인 안료와 동일한 성분의 검은색 물질이 발견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최근 논문에서 이 물질이 다빈치의 그림 전체에서 나타난다고 밝힌 바 있다.

둘째로 붉은색 조각을 분석했더니 광택제로 사용된 유기물질로 드러났다. 현대식 바름벽에는 사용되지 않는 물질이다. 셋째로 고해상도 내시경 카메라로 촬영된 이미지를 살펴보면 뒷벽에서 베이지색 물질이 발견됐다. 붓으로 칠할 때만 나타나는 문양이었다.

넷째로 500인 홀 내에서 레이더 스캔을 실시한 결과, 현재의 벽 뒤에 공간이 비어 있고 그 너머에 또 다른 벽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사리가 프레스코화를 그릴 당시에 다빈치의 작품을 훼손하지 않으려 새로운 벽을 세운 것으로 추측됐다. 500인 홀의 다른 벽면에서는 이러한 공간이 발견되지 않았다.



▲ 세라치니 교수가 바사리의 프레스코화에 구멍을 뚫어 벽면 뒤를 조사하고 있다.  ⓒDavid Yoder

 

 

연구진은 추가 분석을 실시해 조사결과를 종합할 예정. 그러나 다빈치의 사라진 명작이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다빈치의 작품을 꺼내려면 현재의 벽을 허물어야 하는데 바사리의 작품이 벽면에 그려졌기 때문에 훼손이 불가피하다. 이번 발견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보여 해결책을 찾아나갈 전망이다.

한편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은 피렌체 시와 협약을 맺고 조사과정을 촬영해 오는 18일 TV 다큐멘터리로 방영할 예정이다. (링크 참조 : http://natgeotv.com/uk/finding-the-lost-da-vinci/videos/da-vincis-lost-painting)

 

 

 

 

시계 자체의 본성에 도전한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영속성’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은 모두 시간에 의해 정해져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가 결정된다.

흐르는 시간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시계다. 분과 초 단위로 시간을 잴 수 있는 시계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도구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활동할 때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시각을 알려주는 시계 자체의 본성에 대해 도전한 작품이 달리의 '기억의 영속성'이다. 텅 빈 해변 가까이에 있는 탁자에 금속 시계가 흘러내리고 있고 그 옆에는 뚜껑이 닫혀 있는 붉은색 회중시계가 놓여 있다. 탁자 위의 나뭇가지와 바닥에 놓여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생물체에도 회중시계가 걸쳐져 있다. 늘어진 시계와 괴상한 생물체와 달리 화면 오른쪽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선명하게 보인다.

 

▲ <기억의 영속성>-1931년, 캔버스에 유채, 24*33, 뉴욕 현대 미술관 소장

 

 

이 작품에서 늘어진 시계는 시간을 재는 시계가 고유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가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시계를 그리게 된 계기는 치즈였다. 달리는 스페인 북부 리가트 항구 마을의 풍경을 그리던 중 아내 갈라와 영화를 보기로 한다. 하지만 편두통 때문에 영화 구경을 포기한다. 아내가 외출하자 달리는 혼자 작업실에서 프랑스 산 까망베르 치즈로 식사를 했다.

녹아내린 치즈가 작품의 모티브

달리는 작업실에서 그리던 풍경을 응시하다가 탁자에 놓인 까망베르 치즈가 더위 때문에 접시에서 녹아 퍼져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접시에서 부드럽게 퍼지면서 녹아내린 까망베르 치즈의 모습은 곧 달리에게 녹아내리는 시계의 영감을 주었다.

달리는 1920년 발표된, '시간이 중력에 의해 어떻게 휘어질 수 있는가'를 설명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에 매료돼 ‘만일 시간이 스스로 휘어질 수 있다면, 왜 시계는 안 되겠는가?’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까망베르 치즈에서 영감을 받은 달리는 이 작품을 두 시간 만에 완성했는데 딱딱한 치즈도 여름 날씨에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것처럼 시간에 지배받지 않기 위해서는 시계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붉은색 회중시계를 덮고 있는 것은 개미다. 개미떼는 이 작품에서 유일한 생명체로 부패를 상징한다. 달리가 부패나 죽음의 상징으로 개미를 그려 넣은 것은 생물체를 소멸시키는 동물을 개미로 보았기 때문이다. 생명체를 소명시키는 개미는 그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암시한다.

달리는 개미와 같이 종종 그림에 죽은 벌레나 고슴도치의 시체를 그려 넣었는데 그는 죽은 동물을 통해 자신의 극심한 고통과 분노를 표출했다.

화면 중앙 말안장처럼 늘어진 시계가 걸쳐져 있는 괴상한 생물체는 물처럼 생긴 것이 달리의 캐리커처다. 긴 속눈썹은 명상이나 수면, 죽음에 의해 감겨진 눈을 암시한다. 또한 감겨진 눈은 생각의 자유로움을 암시한다. 그는 생각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시간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면 오른쪽 절벽은 바르셀로나의 북쪽 리가트 지방의 바위 형상이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절벽은 이 작품이 처음 풍경화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살바도르 달리(1904~1989)가 그린 이 작품의 원제목은 '부드러운 시계'로 달리의 특정적인 이미지인 부드러운 시계의 역할이 주어진 첫 번째 작품이다. 이후 부드러운 시계 모티브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과학·기술작품 속에 담겨 있는 저울의 의미

 

쿠엔틴 마시스의 '은행가와 그의 아내'

 

우리 생활과 밀접한 저울은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물건의 무게를 정확하게 측량하는 도구로서, 일상생활은 물론 의학, 물리학, 약학 등등 과학 기술 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재료의 정확한 무게가 기술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저울은 국가 간의 무역에서도 중요하다. 상거래의 기본 단위가 되어서다.

저울은 기원전 2000년 검, 창, 방패 등 여러 가지 생필품을 생산하기 위해 발달하기 시작했다. 납, 주석, 구리 등을 정밀하게 섞어서 만들어진 저울은 기원전 1000년부터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되었고, 정확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기원전 221년 중국에서는 도량형제도가 성립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삼국시대 초기부터 척관법(길이의 단위: 척, 무게의 단위: 관)을 썼다.

요즘 초정밀 전자저울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나 인류 최초로 쓴 저울은 맞저울이다. 맞저울은 천칭이라고 하는데, 가운데 줏대에 지렛대를 걸쳐 놓아 양쪽에 똑같은 크기의 저울판을 달아 놓았다. 저울판 한쪽에는 물건을 달 물체를, 다른 한쪽에는 추를 놓아 평행을 이루게 해 물건의 무게를 다는 방식이다

 

 

▲ <은행가와 그의 아내>-1514년, 나무에 유채, 74*68,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맞저울의 사용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 마시스의 '은행가와 그의 아내'이다. 이 작품은 16세기 초 상업의 발달을 보여주고 있다.

남자는 신중한 자세로 저울을 들고 동전의 무게를 달아 금의 함량을 재고 있고 기도서를 읽고 있던 아내는 남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남자가 들고 있는 저울은 기원전 5세기부터 사용됐던 방식의 저울이다.

선과 악의 이중적인 가치 가리켜

탁자 위에는 여러 가지 동전들이 쌓여 있고 아내가 읽고 있는 기도서에는 성 모자상 그림이 나와 있다. 저울로 동전의 무게를 달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행동은 당시 상업도시로 발전하고 있던 안트베르펜의 사회 분위기를 나타낸다.

화면 맨 왼쪽에 황금받침대와 뚜껑이 달려 있는 수정잔과 검은 벨벳 헝겊 조각 위에 진주가 놓여 있다. 진주는 담보물을 나타내며 남자의 직업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저울은 전통적으로 황금이 지닌 선과 악의 이중적인 가치를 가리키며 금화는 탐욕에 대한 상징물이다. 기도서는 종교적인 신앙심을 나타내며, 금의 무게를 달고 있는 남자의 행동은 현실적인 부를, 기도서는 정신적인 것을 상징한다.

성스러움과 현실적인 것의 균형을 제시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 실내 풍경은 허영보다는 실리를 중요시한 인물의 가치관을 암시하고 있다.

신중한 대금업자의 성격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 작품의 주제는 성서 레위기의 ‘너희는 재판할 때나 물건을 재고 달고 되고 할 때에 부정하게 하지 마라. 바른 저울과 바른 추와 바른 에바와 바른 한 올을 써야 한다.’라고 한 하나님의 경고다.

탁자 위에 거울이 놓여 있다. 거울 속에 한 남자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통해 책을 읽는 듯 보인다. 거울 속 십자가 형태의 창틀은 남자가 읽고 있는 책이 성경책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여자가 읽고 있는 성경책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쿠엔틴 마시스(1460년경~1530)의 이 작품에 등장하는 환전상과 고리대금업자는 탐욕을 암시하는 인물로 싹트는 자본주의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칼럼니스트

 

 

 

/ The Science Times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