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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에곤 실레.Egon Schiele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bizmoll 2013. 7. 3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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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뒤틀리고 일그러진 욕망의 자화상

 

수많은 미술가가 자화상을 남겼지만, 누구도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처럼 메마르고 수척한 나체(裸體)의 자화상을 통해 뒤틀리고 일그러진 욕망의 치부를 노출한 적이 없다. 실레는 자기의 몸에 대해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연민마저 없어 보인다. 마치 날카로운 펜 끝으로 내려치듯 거칠게 그려진 그의 몸은 오직 혐오와 공포, 처벌과 자책의 대상일 뿐이었다.

 

오스트리아 화가 실레에게 육체적 욕망은 죽음과 고통의 전초였다. 그가 15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매독으로 고통받다 미치광이처럼 죽어갔기 때문이다. 20세기 초까지도 성욕은 죄악시되었고, 사람들은 매독과 자위행위가 광기의 원인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실레에겐 사춘기를 맞아 성에 눈을 뜨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자신의 몸을 보듬어 줄 틈도 없이, 다만 두려워하고 혐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레의 '자화상' - 1910년, 종이에 과슈·수채·목탄·연필, 42.5×29.5cm, 개인 소장.

 

 

불편한 자세로 선 채 불안에 가득한 눈으로 정면을 쏘아보는 실레의 왜곡된 자화상은 본능에 이끌려 성과 자위에 탐닉했던 스스로에 대한 처벌과 자책의 증거다. 그가 남긴 많은 작품은 성적인 욕망을 다루었으되 에로틱하다기보다는 그로테스크하다. 파격적인 그림으로 늘 비난에 시달리던 실레는 결혼 이후 비교적 평탄하게 살았다. 그러나 1918년 임신 중이던 부인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고, 실레는 그 후 사흘 동안 부인의 초상화를 그리다 같은 병으로 죽었다. 고작 28세였다.

만약 아기가 태어나는 걸 볼 수 있었다면 그토록 누추하기 그지없던 자기 몸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기적에 감탄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아마도 안온하고 부드러운 실레의 자화상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 조선

 

 

 

[Art | 박희숙의 미술관]

어허, 아무도 몰래 은밀하게 즐기라니까

 

남자의 자위행위

 

이유가 무엇이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중년의 기러기 아빠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서글프다. 인기척이 없는 방, 텅 빈 식탁, 씻지 않은 그릇이 수북한 개수대 등 집 안 모든 것이 그가 혼자임을 확실하게 증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기러기 아빠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집안일이 아니다. 아침 발기다. 아침 발기는 강한 남자라는 확실한 증거이자 여전히 젊다는 척도로, 중년 남자의 아침 발기는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자랑해도 될 사건이다.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Egon_Schiele_-_Eros_-_1911.jpeg

 

 ‘에로스’, 실레, 1911년, 구아슈, 수채와 검은색 초크, 55×45, 개인 소장.

 

그러나 기러기 아빠는 박수 쳐줄 아내가 옆에 없다. 써먹기는커녕 자랑할 사람조차 없는 것이다. 철없던 시절처럼 자위행위를 하자니 서글픔이 가슴을 치고 올라온다. 하지만 어쩌랴. 아이들 교육 때문이라는데. 서글픈 인생이지만 눈치 없는 녀석을 달래는 수밖에 없다.

 

자위행위를 하는 남자를 표현한 작품이 에곤 실레(1890~1918)의 ‘에로스’다. 이 작품은 실레의 자화상이다. 검은색 의자에 앉아 있는 실레는 손으로 페니스를 붙잡고 있다. 정면을 향해 있는 시선이 거울을 보면서 자위행위를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실레는 자신을 관찰하려고 거울을 이용했다.

 

꽉 다문 입술과 페니스를 잡은 손은 자위행위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지만, 눈 주변의 어두운 색이 자위행위에 대한 죄의식과 불안한 심리를 표현한다. 붉은색 페니스는 과도한 성적 욕망을 암시하면서 아직 절정에 이르지 못했음을 나타내며, 몸에 비해 커다랗게 묘사한 페니스는 남자가 성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붉은색 배경은 붉은색 페니스를 강조하면서 성적 쾌락을 상징한다.

 

단색 배경과 협소한 의자는 육체를 더욱 불안정하게 보이게 하고, 페니스보다 훨씬 작은 손의 움직임은 신경질적으로 보이며, 벌리고 있는 다리 근육은 자위행위로 인해 부자연스럽다. 펼쳐진 옷은 성적 욕구에서 해방됐음을 암시하며 유난히 크게 묘사한 옷은 남자의 원초적 욕망의 크기를 반영한다.

 

실레의 이 작품에서 비쩍 마른 몸과 달리 페니스를 크게 묘사한 것은 남자의 생명은 발기라는 것을 의미한다. 의자에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은 자위행위를 죄악시하는 현실을 나타낸다. 당시 사회는 자위행위를 죄로 여겼다.

 

제목 ‘에로스’는 서구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대명사지만 실레에게 에로스는 본능적인 정욕을 대변한다. 그가 자위행위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은 매독으로 불구가 된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 때문이다. 실레의 아버지는 매독으로 얻은 분노를 가족에게 쏟아부었다. 실레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오히려 성적으로 풀어냈다.

 

기러기 아빠 처지에서는 자위행위가 아내보다 더 좋을 때가 있다. 아침 식탁에 보양식은 없지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이상형의 여자와 섹스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상형 여자와의 섹스를 꿈꾼 남자를 그린 작품이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위대한 마스터베이터의 얼굴’이다. 이 작품 역시 달리의 자화상이다. 달리는 친구의 아내인 갈라를 처음 만나고 이 작품을 만들었다.

 

기묘하게 생긴 커다란 바위가 해변 중앙에 걸쳐 있고 바위 꼭대기에 있는 금발의 여인이 남자의 페니스에 입을 맞추고 있다. 바위는 달리의 머리이며 뾰족한 코가 해변 바닥에 닿아 있다. 길고 부드러운 속눈썹으로 덮인 눈은 살며시 감았다. 입 부분에는 거대한 메뚜기가 붙어 있다. 메뚜기의 배 부분엔 개미가 득실거린다. 메뚜기는 달리의 속마음을 의미하며 개미는 부패를 상징한다. 창백한 뺨과 달리 홍조는 자위행위를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금발의 여인이 갈라이며 해변은 여름에 갈라를 만났던 추억의 장소 크레우스 곶이다. 달리는 갈라를 처음 본 순간부터 운명의 여인임을 느꼈다. 그녀는 달리의 이상형이었으며 돌파구였다. 달리는 갈라 외에 다른 여자를 보고는 발기하지 못했다. 그는 평생 성적 욕구가 일 때마다 자위행위를 했고 그 방법 외에는 절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엔 성적 이미지를 내포한 것들이 많다.

 

남자에게 자위행위는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만족을 주지만 은밀하게 혼자 해야만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남자는 심리적으로 자신의 페니스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페니스를 여자에게 대놓고 과시하고 싶은 남자들을 여자들은 ‘바바리맨’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여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면 지를수록 행동이 더 과감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위대한 마스터베이터의 얼굴’, 달리, 1929년, 캔버스에 유채, 110×150,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소장.(왼쪽) ‘정원’, 매카시, 1992년, 설치 작품, 개인 소장.(오른쪽)

 

 

공공장소에서 성적 욕망을 과시하는 남자를 그린 작품이 폴 매카시(1945~)의 ‘정원’이다. 잎이 무성한 나무 둥치 사이에서 남자가 바지를 반쯤 내린 채 큰 나무를 양손으로 끌어안고 있다. 머리숱이 없는 머리와 주름진 얼굴은 남자가 중년임을 암시한다. 나무 둥치에 가려졌지만 발치 끝에 있는 바지와 벌거벗은 엉덩이가 지금 자위행위 중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림 오른쪽에 크게 부각된 돌과 큰 나무는 남자의 페니스를 상징하며, 큰 나무 둥치에 가려진 잎이 무성한 작은 나무들은 여자를 암시한다. 남자가 작은 나무들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모습은 이미 성을 상실했다는 의미다. 매카시는 돌이 가득한 야외 정원을 만든 다음 자위행위를 하는 로봇 인물을 배치해 성적 도덕성을 나타내고자 했다.

 

기러기 아빠에게 자위행위는 건강을 위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해가 된다. 눈치 없는 녀석에게 자유를 준다고 밖으로 내보내선 안 된다. 페니스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 당신을 국가가 관리한다.

 

/ 주간동아

 

 

 

 

 

[Painter’s letter]

Egon Schiele (1890-1918)

 

하나의 마음으로 존경할 분을 만난다는 건 최고의 행운이다. 구스타프 클림트를 존경하여 그의 흔적을 따라가려 했던 에곤 실레. 스승의 달 5월에 그가 감사 편지를 쓴다면, 그 편지는 분명 클림트에게 전달될 것이다. 살아 있는 선을 그린 화가, 에곤 실레의 편지이다.

 

To. Gustav Klimt

“선생님, 제 여러 그림과 선생님의 드로잉 한 작품을 바꿀 수 있을까요?“

기억나시나요. 17살의 제가 오스트리아 미술계의 거장인 클림트 선생님을 찾아가 던진 질문 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왜 내 작품과 교환하고 싶은 거지? 자네 드로잉이 훨씬 훌륭한데. “라고 답해주셨죠.

기억 못 하실 수 있지만, 이 한마디의 칭찬이 제 그림에 대한 확신의 뿌리가 되었다고 하면 놀라실까요?

절약이라는 단어를 당최 몰랐던 제가, 헤픈 멋내기용의 씀씀이 탓에 최악의 재정상태에 이르렀을 때에도 선생님께서는 빈 공방과 후원자분들을 소개해 주셨죠.

사람들은 저를 보고 “클림트 그룹”에 속하는 한 사람으로만 보았지만, 전 스스로를 “은으로 된 클림트”라고 불렀습니다. 제 그림 한 점 한 점에는, 선생님의 주된 모티브였던 성, 질병, 죽음의 정신세계가 선생님과 같은 ‘금빛’을 내주길 바라는 희망이 들어 있으니까요. 선생님의 <다나에>작품과 비슷하게 그린 저의 <다나에>(누구나 선생님의 작품을 더 좋아할 것을 확실히 알면서도 그린 그림)도 그저 순수한 존경심의 표시라 말하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우아하고 화려한 선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그림을 배우게 되었지만, 이후에는 저만의 길을 걷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비뚤어지고 비실제적인 선들이 난무한 제 그림을 보고 “이건 에곤 실레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죠. 모든 것이 선생님의 은혜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전 저를 믿어요. 그렇기에 제 작품이 빈이 배출한 근대 최고 미술작품이라 생각하는데, 그걸 굳이 숨겨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전 애당초 겸손의 미덕과는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유명하지도 않았던 저를 열렬히 환호해주며 지원해준 애호가들도 저의 이런 확고한 자신감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전, 여행을 좋아하고, 제 잘난 멋에 사며, 멋내기가 취미인 이기적인 도도한 남자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누나를 어린 시절 잃어야만 했던 순간에 태어난 깊은 고뇌와 우울한 감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제 그림의 드로잉의 선에 담아냈습니다. 적어도 제 드로잉은 그 누구의 선보다 강한 힘이 있다고 말할 수 있네요. 제가 이런 확신을 하게 된 것은, 의심할 것도 없이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값어치하고, 가장 순수하며, 가장 고귀한 열매가 되리라 스스로 믿었고, 그리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첫 전시회에서 제 작품의 가격에 최고치 가격을 매겼습니다. 제가 요구한 800크로네는 몇 년 후까지 높은 가격을 기록했다고 하네요. 당연히, 알려지지도 않은 제 그림은 단 한 점도 팔리지 못했지만(웃음). 그래도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1917년, 쿤스트샤우 전람회를 통해 선생님의 명작 <키스>를 본 이후부터, 저를 에워 둘러싼 모든 것에서 벗어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잘 다니던 예술학교를 그만둔 것부터 시작해서). 이제 제가 바라보는 모든 현상들은 그날의 흥분으로 새롭게 바뀌었으니까요. 그날 이후부터 선생님을 만나 30살 연상을 넘는 우정이 가능했던 건, 기존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열망이라는 공통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Seated Woman with Left Leg Drawn Up 왼쪽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 있는 여자, 1971

 

 

제가 추구했던 것은, 한 마디로 ‘예술적 자유로움’입니다. 그것은 그 시대에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지라도 옳지 못함으로 평가받아서는 안될 성질의 것입니다. 예술가를 세상의 과녁으로 꼼짝 못하게 꽂아버리면, 성 세바스티아노처럼(혹은 전시회 포스터 속 제 모습처럼) ‘세상의 몰이해에 대한 희생양’이 되어버리고 마니까요.   

저는 ‘예술가의 자유로움’을 자화상과 누드를 통해 표현했습니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밝힌 견해처럼 ‘진정한 자아는 곧 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뿐 아니라, 내가 어떤 신비스런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알기 원했죠.

어쩌면, 저의 (애호가들만이 환호한) 교만은 세상에 홀로 맞서 싸우는 저를 더 사랑하려고 애쓴 노력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후 제가 책임져야 하는 어려운 가계사정과, 현실에서 벗어난 예술가의 자유로움 사이에서, 그리고 누드를 외설적인 빨간 띠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과 예술적 표현의 자유로움 사이에서(선생님께서는 제가 입에 담지조차 못하는 부당한 죄명으로 어떻게 감옥에 다녀왔는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자유로운 연애방식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예술가의 자유로운 영혼 사이에서 전 홀로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제 인생이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고 했죠. 하지만, 저는 친동생 게르티조차도 모르는 혼자만의 괴로움을 앞으로도 겪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이런 슬픔이야말로 예술가에게 절대적인 창조적 인간을 빚어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제 애인이자 모델이었던 발리와의 사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품의 모델들과 숱한 스캔들이 났었던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저 또한 모델이자 애인이었던 발리에게 큰 책임감은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예술적인 영감을 주는 뮤즈가 항상 필요했고, 이것이 제가 여성을 사랑하는 방식이었으니까요. 제가 나체화를 많이 그렸다고 해서 망나니 같은 호색가는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저의 사랑을 부적절한 애정행각으로만 보았습니다.

발리는 쉴새 없이 떠들어 대는 것만 빼면 고귀한 여인임이 틀림없습니다. 모두가 외면했던 감옥에서 위로의 말을 해주던 그녀였으니까요. 하지만, 전 이웃이었던 에디트와 결혼을 약속합니다. 결혼 전 발리를 만나, 우리의 사랑을 1년에 한 번 다녀오는 여름여행에서만 임시 유지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물론 에디트와 함께 셋이서 말이죠. 결국 발리는 절 떠났습니다.

저는 <죽음과 여자>라는 작품을 그리며 진정 그녀와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죠. 결국, 사랑은 예술가로서 누리는 자유로움의 영역 안에 좀처럼 끼어들기 여럽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선생님, 세계적 유명화가는 결코 생존에 알려지지 않는다는 이상한 법칙에 제가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고흐의 운명처럼 생존에 유명세를 못 치렀으니 말입니다(웃음). 하지만, 전 선생님을 만나 진정한 예술가의 길을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멋진 순간은, 선생님의 작품을 만난 1917년의 전시회이니 말입니다∙∙∙.   

From. Egon Schiele

/ 헤럴드 경제 육성연 기자.

 

 

 

 

 

Egon Schiele

(June 12, 1890 – October 31, 1918)

 

At the end of 1918, the influenza epidemic that claimed over twenty million lives worldwide reached Vienna. Edith, who was six months pregnant, succumbed to it on October 28th, followed three days later by Egon. He was twenty-eight years old.

 

1918년 전세계적으로 2천만명 이상이나 사상자를 낸 독감이 비엔나에 도착했다.

이제 겨우 먹고 살게 된 쉴레_ 그의 아내 에디트는 임신 6개월째인 10월 28일 독감으로 죽고, 사흘 뒤 에곤

쉴레도 죽었다. 그의 나이 스물 여덟살이었다.

 

 

 

 

 girl

 

 

 

Egon Schiele—“Pair of Women (Women Embracing Each Other)”

 

 

 

Old Houses In Krumau

 

 

 

 

eros

 

 

 

400 × 424 - Sketch of two people by artist Egon Schiele

 

 

 

559 × 359 - Egon Schiele - Reclining woman

 

 

 

540 × 356 - Act of Love (study)

 

 

 

Woman in Black Stockings

 

 

 

 

http://www.egon-schiele.net/

http://egonschiele.tumblr.com/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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