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림 과 명 화

[스크랩] 흑태양 작가 (86세 원로화가) 추연근

bizmoll 2009. 1. 19. 14:35



 

 

흑태양 작가 (86세 원로화가) 추연근

   

 

 

 작 품 명 : 月亮(월량)

 

 

 

 

 

 

 작 품 명 : 상(翔)-B

 

 

 

 

 작 품 명 : 黑太陽(흑태양)-翔(상)

 

 

 

 

 작 품 명 : 蓮某(연모)

 

 

 

 

 작 품 명 : 蓮池에서

 

 

 

 

 작 품 명 : 잉태

 

 

 

 

 작 품 명 : 淨

 

 

 

 

  黑太陽      -        翔(상)


 

 

 

 작 품 명 : 曉港(효항)

 

 

 

 

 Jim Brickman (Feat. Donny Osmond) - Love of My Life

 

 


추연근 Choo Yoen-Keun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만큼이나 굴곡이 심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추 화백은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5년제 대구 계성중학을 졸업하고, 일본 나라현 천리 외국어전문학교에 다니던 중 일본군에 징집됐고, 해방이 되고서야 고국으로 생환할 수 있었다.
서울대 미대 1회 입학생. 그러나 민주화를 부르짖다 동맹휴학한 뒤 복학 과정에서 주동 학생으로 몰려 중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전쟁 때는 국방부 정훈국 소속 종군 화가로 사선을 넘나들어야 했고, 전란의 와중에 대구 미문화원에서 한국전 종군기록화전을 열었다. 그것이 추 화백의 제1회 개인전이었다.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50년대 초반. 1953년 작곡가 금수현씨가 교장으로 있던 경남여중에서 오현명씨는 음악선생으로, 자신은 미술선생으로 교편을 시작했다.
그런 한편 김영덕 하인두 등과 함께 미술동인 '청맥'을 창립하는 열정을 보였다. 부산의 서양화단에 씨앗을 뿌리는 작업이었다.
부산일보 기획위원과 편집국장, 서울지사장을 맡기도 했다. 신문사에 있을 때인 1965년 국전의 고질화에 반기를 들고 미술계의 등용문으로 민전을 창립했고, 대한국민미술전람회 사무국장과 심사위원을 맡았으며, 이해에 부산시 문화상(미술창작 부문)도 받았다.
그러나 역시 그에게 던져진 화두는 '그림'이었다. 경성대 미대 교수, 예술대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후학 작가를 길러냈다. 지금까지 개인전만 26차례를 열었다.
그는 1973년 'Who'who in the world 2002'라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현존 인물에 관한 인명사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등재됐다. 2000년 벽두 세계적 권위의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미로미술관 초대로 그의 화력은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원로화가 전혁림 씨 등과 함께 초대를 받아 이 해 5월 19일부터 한 달간 '한국 빛깔의 신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던 것이다.



1924. 8. 20 경산북도 달성군 공산면 지묘동(현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출생
1946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현 서울미대) 제1기생으로 입학
1947 경북미술 연구소(서동진 화가의 화실)를 맡아 운영
1951 국방부 정훈국 소속 중군화가단으로 근무
1951 제1회 개인전- 한국전 종군기록화전
1953~60 제2~4회 개인전
청맥동인회 창립전
1961~69 제5~8회 개인전, 국제자유미전 초대(동경)
1965 12월 부산시 문화상(제8회 미술창작부분)수상
1967 한국미술협회 부산시 지부장 부산일보사 편집국장 역임
1970 제9회 개인전<흑태양>연작
1971 제10회 개인전<흑태양 그 이후전>
1973 WHO'S WHO IN WORLD 인명록에 수록됨
1975 한국 염색 미술 연구소 개설
1977 제 11회 개인전(대구 이목화랑 초대)
1980 중앙미술대전 초대 작가전,<흑태양-잉태> : 호암미술관 소장
7월프랑수 SALON ART SACRE에 초대출품
1982 자유중국 대북 판화가 하랑 초대전
1983 '83~90'현대미술초대전 출품(국립현대미술관)
제 35주년 제헌국회 기념 미술전 초대출품
1984~85 제13~14회 개인전(고려미술관) <귀향전>
1986~90 부산경성대학교 예술대학장 역임
1987 부산 창작 미술가 회장역임
1990 정년최임기념전(KBS전시실)
1993 한국 현대미술 66인전(대백프라자 갤러리)
1995'95 한국 부산 현역 작가전(중국 광주 미술학원 미술관)
중국 계림기행전 (송하갤러리 초대)
1996 추연근 염화전(송하갤러리)
2000 한국 빛깔의 신비전(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미로미술관)
제24회 개인전(KBS 부산 방송총국 개국 65주년 기념 초대전)
2001 제25회 개인전 (마린갤러리 초대)
2002 원로작가 4인 초대전(마산아트센터 기획/성산아트홀)
2003 제10회 삼양문화상 수상
2006 제27회 개인전 (피카소갤러리 초대
2007 KIAF참가(마산아트센터)
제28회 개인전(마산아트센터 초대)

세월 잊은 화폭 꿈틀대는 '흑태양'

구역질나게 추하고, 뒤틀리고 타락한 현실. 뭔가 불순하고 때묻은 세상.

그래서 그가 그리는 태양은 검다. 사람들은 그를 '흑태양 작가'라 부른다.

60여년 천착해 온 회화의 신세계가 흑태양 연작.


세상이 추할수록 그가 그리는 태양의 빛깔은 어둡다. 가지런한 듯 하면서도 무질서하고, 고요한 듯 하면서도 소란스러운, 앞뒤 안 맞는 사회에 대한 고발이다.
그러나 그는 희망의 끈을 아주 놓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어두운 현실을 툭툭 털고 찬란하게 솟구칠 밝은 해를 염원한다. 오늘은 춥고 배고프지만 내일은 따뜻할 거라는 믿음의 씨앗을 잉태하자고 속삭인다. 흑태양은 화폭을 통해 밝은 내일을 염원하는 작가의 기도인 셈이다
.



부산의 1세대 서양화가

추연근(秋淵槿·83) 화백. 팔순을 넘긴 노화가다. 부산의 1세대 서양화가이자,

부산 서양화단의 개척자다. 자기 한 몸 추스르기도 벅찰 나이지만 아직도 그는

꺼지지 않는 창작 혼을 불사르고 있다.


60여년 간 일관되게 흑태양 시리즈를 그려온 그의 화폭은 우리네 삶의 질곡이다.
절망과 희망, 체념과 저항, 슬픔과 기쁨의 세상 이치가 녹아 있다. 내일은 더 밝고

따뜻할 것이라는 희망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
추 화백의 작업실은 해운대 미포5거리에서 신시가지 쪽으로 한적한 골목에 있다.
지난 4월 9일 오후 그의 화실을 찾았을 때 그는 붓을 들고 있었다. 유화 냄새가 벽면

곳곳에서 진득하게 번져 나왔다. 1년여 동안 매달려온 300호 짜리 큰 그림 '음양오행도'의 마무리 작업에 골몰해 있었다.
그림 속에는 장승 솟대 12지신 좌청룡 우백호 등등이 어우러져 꿈틀거리고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소재로 인간의 출생에서부터 무덤까지의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여든은 다시 시작하는 나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팔순을 넘긴 노화가에게 이런 열정이 남아 있다니…. 세월의 나이테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자세는 꼿꼿했고, 목소리는 짱짱했다. 온통 하얀 백발에서 겨우 세월의 무게를 가늠해 볼 뿐이었다. 유일한 취미는 낚시. 요즘도 가끔 바다 낚시를 즐긴다고 했다.
"요즘은 하루에 5시간쯤 그림을 그립니다."
추 화백은 오전 9시30분쯤 작업실에 나와 오후 4시쯤 집에 들어간다. 오고 가고, 점심 먹는 시간을 빼고는 작업에 몰두한다.
"손이 불편하지 않는 한 계속 그릴 겁니다. 여든이라는 나이는 나에게 주저앉을 때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지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늘 다음 단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다음 작품이고, 다음 단계입니다."
예술가에게 나이라는 것은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것인가. 식지 않은 열정에 존경심이 느껴졌다. 새로운 도전 앞에 더러 망설이곤 하는 젊은 필자로서는 면박을 맞았다는 반성의 느낌도 없지 않았다.


흑태양 작가

무엇보다 '흑태양 작가'로 불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흑태양은 날로 비인간화하는 어두운 현실에 태양마저도 시커멓게 보인다는 의미로 건져 올린 소재지요. 말 그대로 부정과 부패, 불신이 넘쳐나는 사회에 존재하는 까만 색의 태양입니다. 암울한 사회에서는 태양도 암울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내일은 밝아졌으면 하는 염원을 담습니다.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흑태양을 품고 사니까 한 60년쯤 됐나요."
근래에 들어 그의 흑태양에도 점차 밝은 빛이 감돈다. 희뿌연 햇무리가 어둠을 삭이고 있다. 아우성치던 인간 군상들도 몸짓을 누그러뜨려 한층 유연한 역동감을 자아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부제를 달면서 밝게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강이나 바다 등 물에 비치는 밝은 태양을 담은 '흑태양-영(映)', 태양을 배경으로 유려한 새들이 하늘로 비상하는 '흑태양-상(翔)', 태양 아래 말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작가의 심상을 드러내는 '분(奔)' 시리즈 등이 그것이다.


회고전 여는 것이 꿈

최근에는 '흑태양-잉태'로 옮아가고 있다. '희망이라는 밝은 태양, 옥동자를 낳고 싶다'는 염원으로 여체를 형상화한 자궁 속에 태양을 품고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더러 화폭 좌우에 '밝은 마음을 찾아라'는 법구경 구절을 상형문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봉황들이 암흑과 구름을 뚫고 비상하는 100호 짜리 대작 '여조비허공(如鳥飛虛空·마치 새가 허공을 날듯)'은 조형화된 한자와 결합한 작품으로 지난 2000년 프랑스 파리 미로미술관에 전시, 소개되면서 새로운 양식적 발전을 보여준다.
바닷가나 항구의 풍경을 다룬 '해조음(海潮音)'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다.
"돌아보면 참으로 가난한 삶이었습니다. 헤아려보니 결혼해서 지금까지 스물 다섯번 이사를 했더군요. 셋방을 전전하면서 그림이나 제대로 들고 다닐 수 있나요. 70년대 이후의 작품은 많은데 40, 50년대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태우고, 버리고, 가슴이 아팠지요."
그의 작은 바람은 지금까지 그린 작품들로 회고전을 여는 것. 그러나 소품보다 큰 그림 위주여서 그것도 쉽지 않다.
"마땅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전시를 위해 300호 짜리 대작 '음양오행도'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어요."
노화가의 바람이 빛나기를 소망해 본다.



출처 : 쥬얼리같은 우리삶
글쓴이 : 목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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