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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에서 입구 '반갑다! 우리 민화'전 대형 포스터 디자인이 돋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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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형순 |
| '서울역사박물관'에서 10월 30일까지 '일본민예관'과 공동으로
2005년 한일 우정의 해 기념 특별전 '반갑다! 우리 민화'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일본민예관 등 일본 소재 5개 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민화 명품 12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그동안 보지 못한 민화까지 포함되어 온전한 전시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갑다.
글씨도 그림이 되고 예술이 되는 문화 풍토, 이것은 동아시아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서예 전통에서 온 특징이리라. 옛
어른들은 글씨를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품격을 평가하기도 했다. 민화가 생활 미술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측면에서 이를 수용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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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예-염-치(孝禮廉恥) 문자도' 19세기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아래는 '염(廉)'자 하나만 크게 쓴 '문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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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형순 |
| '염치', 되살려야 할
미덕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 글씨를 추상화하거나 형상화한 그림, 이 키워드들은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윤리 요강이요 사회 미덕을 대표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 중 '충효(忠孝)'나 '신예(信禮)'와 함께 민화에서 꼭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염치(廉恥)'라는 말이다
'염(廉)'은 맑고 검소하고 청렴한 기풍을 뜻하고, '치(恥)'는 자기 자신을 존중하며 체면을 세우고
부끄러움을 안다는 뜻이다. 이 단어의 깊은 뜻을 되새긴다면 '염'과 '치'는 그 어느 것보다 우리가 되살려야 할 미덕이 아닌가 싶다. 이런
윤리가 되살아난다면 국가 부패지수도 낮아질 것이고 길에다 아무렇게나 침을 뱉거나 음식물을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야! 이 그림이
참 재밌네!"
지나가는 관람객 입에서 이런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야! 이 그림이 참 재밌네!' 이 말을 '민화는 쉽고 솔직하고
꾸밈이 없어 좋고, 익살과 해학이 넘쳐서 좋고, 꿈과 믿음, 지혜와 깨달음을 줘서 좋고, 따뜻하면서도 애틋한 정감이 넘쳐서 좋고, 일상에서 베어
나오는 멋과 신명과 자유분방함이 있어 좋다'라고 풀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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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사 박물관'처럼 민화 병풍을 용도를 보이기 위해 한 켠에 실제로 설치해 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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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형순 |
| 민화 속에는 19세기 '생활사박물관'을 보는 듯 일체의 모든 것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제사 문화, 일상사가 종합적으로 연출되는 장면, 자연 속에서 찾는 즐거움을 표현한 꽃과 새 그림, 생활 속의
멋 등 이런 점을 감안하여 한 켠에 그런 모습을 재현해 놓은 점은 교육적으로나 전시 효과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병풍, 그 시대의 얼굴
병풍만큼 다용도가 있을까? 병풍은 보통 4폭에서 12폭까지 있다. 엄동설한에
온돌만으로 추위를 막을 수 없기에 어느 정도는 요즘의 스팀 역할을 하여 실용적 가치가 있었을 터이고 또한 악귀도 막아 준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의 갖가지 풍속을 담아내는 판도라 상자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최근까지도 우리의 모든
일상은 병풍 아래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혼례와 장례, 신혼 첫날밤도, 백일 돌잔치도 육순 잔치도 제사도 다 그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니 그 병풍에 일상의 삶을 고스란히 옮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계절의 순환과 자연과의 교감 등 삶의 희로애락을 병풍에 다 그려 넣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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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도' 19세기 시즈오카 시립 세리자와케이스케 미술관 소장. '십장생도'와 함께 대표적 이상향을 그린 민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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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형순 |
| 또한 민화에는 무속에서도 등장하고 일반 민초들에게도 친근한 영웅인
을지문덕 장군뿐만 아니라 열녀, 선녀, 처용, 악귀, 귀신 머리, 구운몽의 주인공 성진과 부인, 창부(倡夫), 마부, 검은 도포에 붉은 사모 쓴
사람, 선비들, 그 외에도 중국인 유비, 도연명, 이백 등 각종 인물들이 골고루 등장한다. 이렇게 민화는 당대의 역사와 문학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대중오락의 기능과 교육적 용도로도 쓰였다. 당대 베스트셀러인 외국 소설 '삼국지'는 물론 우리 소설
'구운몽'도 오늘날 오락용 TV처럼 보았으며 '책거리'나 '문자도'를 집어넣어 자녀 교육과 훈육의 도구로도 사용했을 것이다. 산수와 화조 등
자연을 담아 두었다가 두고두고 감상하면서 그 속에서 상상력도 키우며 삶을 즐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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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도' 19세기 일본민예관 소장. 산신령 호랑이도 다스리는 그 위력이 대단해 보인다. 아래는 '호작도' 19세기 개인 소장. 토끼와 까치와
함께 노는 호랑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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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형순 |
| 공존과 평화 사상
'산신도' 산에 가면 누구나
영험한 산신령이 될까? 호랑이도 너끈히 다스리는 위력이 대단하다. 이건 실재라기보다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며 사는 평화스런
나라의 염원을 담고 있다. 아래 '호작도'에서는 까치뿐만 아니라 느닷없이 토끼까지 등장하여 호랑이에게 담뱃불을 붙여 주며 신나게 놀고 있다.
이 그림을 보다 우연히 만난 외국인 지인 '벤자민 주아노'에게 강자와 약자의 공존과 조화를 염원하는 우리의 평화, 평등사상을 담긴
그림 같다고 설명을 했더니 그도 상당히 수긍하는 표정이다. 일반적으로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것이 인간의 생리인데 우리는 약자에게는
약하고 강자에게는 강한 측면이 이런 민화에서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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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조도 8폭' 19세기 고려 미술관 소장. 아주 현대적 추상화같은 인상을 준다. 단아한 멋이 특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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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형순 |
| "엄마, 저 정도면 나도 그리겠어"
위의
'화조도 8폭' 그림을 보고 있는데 어떤 꼬마 녀석이 "저거, 누나가 그린 거지!"하며 누나를 놀린다. 또 다른 녀석은 "엄마, 저 정도면 나도
그리겠다"하고 우겨댄다.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보면 그림에 대한 거부감이 없이 그저 편하고 재미있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 녀석이 시시한 그림이라고 봤는지 모르지만 이런 '화조'는 상당히 현대성을 띠고 있다. 서양의 원근법이나 경중을 주는 기법을
무시한 그림이라 서양 사람이나 변통 없는 일본인에게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런 과감하고 모험적 기질이 몸에 맞는지 자기도
그려보겠단다. 하여튼 이런 그림에는 '동심과 천심과 민심'이 하나로 만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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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 19세기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샤먼이 있는 신령한 집. 아래는 '서수도(瑞獸圖)' 19세기 일본민예관 소장. 티베트
불교의 만다라에 해당하는 부적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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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형순 |
| 내세도 없지만 허무도 없어
민화에는 일체의
허무주의를 읽을 수 없다. 삶에 대한 믿음과 찬양으로 넘쳐 난다. 현실의 어려움이 아무리 커도 이를 이겨 보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 어느
구석에도 비관과 절망과 낙담의 그림자는 없다. 시인 천상병이 구차한 삶에서도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라고 객기를 부리던 그 정신이 민화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십장생도' '일월십이지도' 등 이상향을 그린 그림도 구성과 배치는 시원시원하고 큼직큼직하게 처리되고 있다.
막힌 구석이 없고 펑 뚫린 것 같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이상향이기에 더 공감이 간다. 위의 그림 '감모여재도'에서도 엿보듯 유불선 사상이
무속과 만나면서 새롭게 빚어낸 신령한 세계와 제례 형식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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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작도' 19세기 세리자와케이스케 미술관 소장. 눈깔이 빙빙 도는 호랑이와 새끼들. 호랑이의 희화한 대표작 여기에 서면 누구도 웃지 않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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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형순 |
| 호랑이 눈은 팽팽 돌고
위의 그림은 호랑이 눈이
팽팽 돌아가 보는 재미가 있다. 새끼 호랑이까지 끼어드니 더욱 신난다. 해학과 익살이 그 극점을 이룬다. 여기에 서면 아무도 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런 한국인의 삶에 대한 배짱과 기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 화합과 공존의 정신, 평화와 평등사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남의 것을 터무니없이 빼앗으려 하거나 훔치려고 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증거다. 가릴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다. 우리가 다른 나라를 침입해 본 적이 없는 것이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런 역사가 없다는 것은 이를 역사적으로도 증명하는 것이다.
기껏해야 우리끼리 싸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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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도(神狗圖)' 19세기 일본민예관 소장. 잉어와 거북이 그림. 아래는 성내초등학교 1학년 남연수 어린이의 '신구도' 모사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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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형순 |
| 에로틱한 이미지
몰론 민화에는 자손의 번영과
다산과 기복을 염원하는 그림이 많다. 십장생과 복숭아는 장수를 뜻하고 포도, 석류, 수박, 연밥은 다산을 기원하고 모란은 부귀영화를, 잉어는
입신출세를 뜻하고 원앙새는 부부 화합을 상징하지만 그 이면에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예컨대 잉어와 모란은 요즘 말하는 에로틱한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 모란은 지금으로 말하면 '섹스 심벌'이나 '이효리' 정도를 뜻하고 잉어는 일종의 '변강쇠'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잉어가 바로 그 당시의 비아그라인 셈이다.
또 봉황은 적극적 사랑을 뜻한다. 이런 그림을 그려 놓고 질탕한 성적 상상도 즐겨 보는
것이다. 새와 꽃, 쌍쌍의 새와 물고기도 남녀 사랑놀이를 상징하기도 했다. 이런 노랫말에서 그런 심경은 잘 드러난다.
붉은 연꽃은
요염한 아가씨 / 바람둥이 나비를 받아 주네 새들은 쌍쌍, 물고기도 쌍쌍 / 사랑놀이 한참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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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작도' 19세기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세계에 이렇게 귀엽고 애교스런 호랑이 있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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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형순 |
| 민화의 백미는 역시 '호작도'
까치 호랑이
그림인 '호작도' 코너에 기획자가 붙인 제목 '웃기는 호랑이와 당당한 까치'는 참 마음에 드는 적적한 표현이다. 민화에서 회화적 수준이나 사람의
눈길을 끄는데 '호도' 혹은 '호작도' 만한 것이 있나 싶다. 이 그림이 흥미를 끄는 것은 사실 아주 정치적 풍자와 파격적 상황이 그려졌기
때문이리라.
이렇듯 여기서 약자의 대변자 격인 영특한 까치는 강자인 호랑이를 견제하면서 일종의 권력 중재자로 나섰다는 점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과연 어떤 결론이 날까 궁금하다. 요즘 정계에서 자주 거론되는 권력 분산을 연상시키는 이 '호작도'가 옛이야기만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니 더욱 애정이 가고 친근감이 든다. | 오마이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