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사미인곡[思美人曲] -정철
<산수인물도(山水人物圖)> 견본담채, 30.9x23.8cm, 서울대박물관 장승업
사미인곡[思美人曲] -정철
서사(緖詞),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한생 緣分[연분]이며 하날 모랄 일이런가.
나 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암 이 사랑 견졸대 노여 업다.
平生[평생]애 願원하요대 한대 녜쟈 하얏더니,
늙거야 므사 일로 외오 두고 글이난고.
엇그제 님을 뫼셔 廣寒殿[광한뎐]의 올낫더니
그 더대 엇디하야 下界[하계]예 나려오니.
올 적의 비슨 머리 얼�연디 三年이라.
燕脂粉[연지분] 잇내마난 눌 위하야 고이 할고.
마음의 매친 실음 疊疊[��]이 싸혀 이셔,
짓나니 한숨이오, 디나니 눈믈이라.
人生은 有限한대 시람도 그지 업다.
無心한 歲月은 믈 흐라닷 하난고야.
炎凉[염냥]이 때랄 아라 가난 닷 고텨 오니,
듯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
이 몸이 태어날 때에 임[임금]을 따라 태어나니,
한평생 함께 살아갈 인연이며,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
나는 오직 젊어 있고 임은 오로지 나만을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비교할 곳이 다시 없다.
평생에 원하되 임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고
엊그제[얼마 전에]는 임을 모시고 광한전[궁중]에 올라 있었더니,
그 동안에 어찌하여 속세[창평]에 내려 왔느냐
내려올 때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3년일세.
연지와 분이 있네마는 누구를 위햐여 곱게 단장할꼬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한정이 있는데, 근심은 한이 없다.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구나.
더웠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바뀜이
때를 알아 지나갔다가는 이내 다시 돌아오니,
듣거니 보거니 하는 가운데 느낄 일도 많기도 많구나.
춘원(春怨)
東風이 건듯 부러 積雪을 헤텨 내니,
窓 밧긔 심근 梅花 두세 가지 �여셰라.
갓득 冷淡한대 暗香[암향]은 므사 일고.
黃昏의 달이 조차 벼마태 빗최니,
늣기난 닷 반기난 닷, 님이신가 아니신가.
뎌 梅花 것거내여 님 겨신 대 보내오져.
님이 너랄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봄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창 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그윽히 풍겨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고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느껴 우는 듯, 반가워하는 듯하니, [이 달이 바로]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꺾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꼬
하원(夏怨)
꼿 디고 새닙 나니 綠陰이 깔렷난대,
羅韋寂寞[나위적막]하고 繡幕[슈막]이 뷔여 잇다.
芙蓉[부용]을 거더 노코 孔雀[공쟉]을 둘러 두니,
갓득 시람 한대 날은 엇디 기돗던고.
鴛鴦錦[원앙금] 버혀 노코 五色線[오색션] 플텨 내여,
금자해 견화이셔 님의 옷 지어 내니,
手品[슈품]은 카니와 制度도 가잘시고.
珊瑚樹[산호슈] 지게 우해 白玉函[백옥함]의 다마 두고,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대 바라보니,
山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千里萬里 길흘 뉘라셔 차자 갈고.
니거든 여러 두고 날인가 반기실가.
꽃잎이 지고 새 잎이 나니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임이 없어] 비단 포장은 쓸쓸히 걸렸고,
수놓은 장막만이 드리워져 텅비어 있다.
연꽃 무늬가 있는 방장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놓은 병풍을 둘러 두니,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어찌 [그리도 지루하게] 길던고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 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만들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그 옷을] 담아 얹혀 두고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도 험하구나.
천만 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찾아갈꼬
가거든 [이 함을] 열어두고 나를 보신듯이 반가워하실까
추원(秋怨)
하라밤 서리김의 기러기 우러 녜ㄹ 제,
危樓[위루]에 혼자 올나 水晶簾[슈정념] 거든말이,
東山의 달이 나고 北極의 별이 뵈니,
님이신가 반기니 눈믈이 절로 난다.
淸光[�광]을 쥐여 내여 鳳凰樓[봉황누]의 븟티고져.
樓[누] 우해 거러 두고 八荒[팔황]의 다 비최여,
深山穹谷[심산궁곡] 졈낫가티 맹그쇼셔.
하룻밤 사이의 서리 내릴 무렵에 기러기가 울며 날아갈 때,
높다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알로 만든 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므로,
임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저 맑은 달빛을 일으켜 내어 임이 계신 궁궐에 부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께서는 그것을] 누각 위에 걸어 두고
온 세상에 다 비추어 깊은 산골짜기도 대낮 같이 환하게 만드소서.
동원(冬怨)
乾坤[건곤]이 폐색하야 白雪이 한 빗친 제,
사람은카니와 날새도 긋쳐 잇다.
瀟湘南畔[쇼샹남반]도 치오미 이러커든,
玉樓高處[옥누고쳐]야 더옥 닐너 므삼하리.
陽春[양츈]을 부쳐 내여 님 겨신 대 쏘이고져.
茅詹[모�] 비쵠 해랄 玉樓[옥누]의 올리고져.
紅裳[홍샹]을 니ㅁㅢ차고 翠袖[취슈]랄 半만 거더,
日暮[일모] 脩竹[슈듀ㄱ]의 �가림도 하도 할샤.
댜란 해 수이 디여 긴밤을 고초 안자,
靑燈[�등] 거른 겻태 鈿恐候[뎐공후] 노하 두고,
꿈의나 님을 보려 택 밧고 비겨시니,
鴦衾[앙금]도 차도 찰샤 이 밤은 언제 샐고.
천지가 겨울의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혀,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의 날아다님도 끊어져 있다.
[따뜻한 지방이라 일컬어지는 중국에 있는]
소상강 남쪽 둔덕[전남 창평을 이름]도 추움이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북쪽 임 계신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랴
따뜻한 봄 기운을 [부채로] 부치어 내어 임 계신 곳에 쐬게 하고 싶다.
초가집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임 계신 궁궐에 올리고 싶다.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 올려,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서
이것 저것 생각함이 많기도 많구나.
짧은 겨울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청사초롱을 걸어 둔 옆에 자개로 수놓은 공후를 두고,
원앙새를 수놓은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아, 이렇게 홀로 외로이 지내는] 이 밤은 언제나 샐꼬
결사(結詞)
하라도 열두 때 한 달도 셜흔 날,
져근덧 생각 마라 이 시람 닛쟈 하니,
마암의 매쳐 이셔 骨髓[골슈]의 께텨시니,
扁鵲[편쟉]이 열히 오나 이 병을 엇디 하리.
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타시로다.
찰하리 ㅅㅢ여디여 범나�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 대 죡죡 안니다가,
향므든 날애로 님의 오새 올므리라.
님이야 날인 줄 모라셔도 내 님 조차려 하노라.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말아 가지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여도
마음 속에 맺혀 있어 뼈 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과 같은 명의[名醫]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아,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죽어져서] 범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고 다니다가
향기가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께서야 [그 범나비가]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따르려 하노라.
<사미인곡(思美人曲)>
【해설】
조선 선조 때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지은 가사(歌辭).
작자가 50세 때인 1585년(선조 18) 동인(東人)이 합세하여 서인(西人)을 공격하므로 서인의 앞장
을 섰던 송강은 부득이 고향인 창평(昌平)에 내려가 4년 동안을 지내야만 했다.
이 가사는 그 동안에 지어진 작품으로, 정홍명(鄭弘溟)이 이식(李植)에게 보낸 편지에
<사미인곡>에 대하여 언급한 구절이 있는데,
그 내용에 따르면 87년(선조 20)에서 88년 사이에 쓰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작자는 이 가사에서 임금에 대한 간절한 충정을, 한 여인이 지아비를 사모하는 마음에 비유하면
서 자신의 뜻을 우의적(寓意的)으로 표현하였다.
제목은 <시경(詩經)>이나 <초사(楚辭)>에서 따온 것이지만 내용은 순수한 우리말을 구사한
창작이다.
모두 63절(행) 126구(句)로 이루어졌다.
전편(全篇)의 구성은 ① 서사(緖詞), ② 원사(怨詞: 春怨ㆍ夏怨ㆍ秋怨ㆍ冬怨), ③ 결사(結詞)
부분으로 3분단(分段) 할 수 있다.
이 가사의 속편인 <속미인곡(續美人曲)>이 있는데,
그것 역시 동곡이교(同曲異巧)의 작품으로, 송강 스스로도 두 작품을 통틀어
'전후미인곡(前後美人曲)'이라 일컬었다.
가사문학의 정상(頂上)으로 꼽히는 작자의 가사집 <송강가사>에 수록되어 전한다.
연군(戀君)의 정(선조 임금)을 노래하되, 한 부인이 남편을 사모하는 형식에 담아 춘하추동 4계절의 풍물에서 느껴지는 간절하고 애절한 연정으로 노래한 가사.
【개관】
▶연대 : 선조 18년∼22년(1585∼1589)
▶갈래 : 서정가사, 양반가사, 정격가사
▶배경 : 전남 창평.
▶운율 : 3ㆍ4조 혹은 4ㆍ4조, 4음보 연속체
▶어조 : 여성화자의 애절한 목소리
▶형식 : 남편을 사모하는 형식으로 3ㆍ4조(4ㆍ4조)의 가사(歌辭)
▶주제 : 연군의 정(忠臣戀主之詞)
▶출전 : <송강가사> ‘성주본(星州本)’
【구성】- 서사, 본사, 결사의 3단 구성 (本詞는 春, 夏, 秋, 冬으로 됨)
▶서사 : 임과의 이별을 한탄함
▶본사 : 춘하추동 각 계절에 느끼는 사모의 정
(가) 춘원 : 매화(절개)를 임과 함께 보내고 싶은 심정
(나) 하원 : 옷을 지어 임에게 보내고 싶은 심정
(다) 추원 : 가을 밤에 하늘을 바라보며 임을 그리워함
(라) 동원 : 겨울날의 임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
▶결사 : 변함 없는 충성심의 표현
【의의】
① 속미인곡과 더불어 가사 문학의 극치를 이룬 작품
② 고려속요 <정과정>의 맥을 잇는 연군지사(戀君之詞)이다.
【배경】
선조 18년 (1585) 송강이 50세 되던 해 8월에 사간원과 사헌부의 논척(論斥)을 받고 관직에서
물러나 전남 창평에서 4년간 우거할 때 지은 것.
【후인평(後人評)】
▶김만중 <서포만필(西浦漫筆)> : 숙종 때 문장가 서포 김만중은 우리 나라의 참된 문장은
<關東別曲>, <前後 美人曲>의 3편뿐이요, 이들은 우리 나라의 <이소(離騷)>라 극찬하였다.
이소는 중국 초(楚) 나라 사람 굴원(屈原)이 우국의 뜻을 노래한 장편 서정시다.
(自古左眞文章 只此三篇然 又就三篇而論之 則後美人曲尤高
關東及前美人 猶借文字語以飾其色耳)
▶홍만종 <순오지(旬五志)> : “思美人曲(사미인곡), 亦松江所製(역송강소제), 祖述詩經美人二字(조술시경미인이자), 以寓憂時戀君之意(이우우시연군지의)”
(사미인곡도 역시 송강이 자은 것이다. 이것은 시경에 있는 미인이라는 두 글자를 따 가지고 세상을 걱정하고, 임금을 사모하는 뜻을 붙였다.)
▶이수광 <지봉유설(芝峰類說)> : “我國歌(아국가)…鄭澈所作最善(정철소작최선)…
關東別曲(관동별곡), 思美人曲(사미인곡), 續美人曲(속미인곡), 盛行於後世(성행어후세)”
(우리 나라 노래 중 정철이 지은 것이 가장 뛰어났다. 관동별곡ㆍ사미인곡ㆍ속미인곡이 후세에
성행하였다.)
【요지】
▶서사 : 임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근심만 쌓이고, 세월은 빨리 흘러 느끼는 일이 많다.
▶본사
(1) 임에 대한 사모의 정과 충성심을 알리고 싶은 심정.
(2) 여름의 정경과 원앙금으로 옷을 지어 임에게 보내드리고 싶은 삼정.
(3) 가을의 정경과 달과 별의 맑은 빛을 임에게 보내드리고 싶은 심정.
(4) 눈이 내리고 추운 겨울을 맞아 따뜻한 볕을 보내드리고 싶다는 심경과 자신의 고독.
▶결사 : 한없는 탄식 속에서도 끝내 임을 따르리라는 사랑의 일념.
【주제】
▶서사 : 인과의 인연과 세월의 무상함
▶본사
(1) 임에 대한 사모의 정과 충성심을 알리고 싶은 심정.
(2) 임에 대한 사모의 정.
(3) 임에 대한 사모의 정과 선정(善政)의 갈망.
(4) 임에 대한 사모의 정과 자신의 고독감.
▶결사 : 변함없는 충성심.
【전문 풀이】
▶서사
(1) 이 몸이 태어날 때에 임을 좇아서 태어나니, 이것은 한평생을 함께 살 인연이며,
그러니 어찌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
나 오직 임만을 위하여 젊어있고, 임은 오로지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견줄 곳이
다시 없다.
평생에 원하되 임과 함께 살아가려 하였더니, 늙어서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보고 싶어하는가.
(2) 엊그제 임을 모시고 달나라의 궁궐에 올라 있었더니, 그 동안에 어찌하여 속세(昌平을 말함)
에 내려왔는가. 내려올 때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삼년일세.
연지와 분이 있네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단장할까.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은 눈물이라.
(3) 인생은 한정이 있는데, 근심은 한이 없다. 무정한 세월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구나.
더워졌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순환이 때를 알아 지나갔다가는 이내 다시 돌아오니,
듣고 보고 하는 가운데 느낄 일도 많기도 많구나.
▶본사
(1) 봄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녹여 헤쳐내니, 창 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게다가 남몰래 풍겨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가.
(마치 외로우나 높은 기상을 지닌 나의 충정을 방불케 하는구나)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어, 흐느껴 우는 듯도 하고 반가워하는 듯도 하니,
이 달이 바로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꺾어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까?
(과연 매화꽃같이 곱고 높은 나의 충정을 알아주실는지)
(2) 꽃이 떨어지고 새 잎이 나니, 푸른 잎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임이 없어 비단 포장은 쓸쓸히 걸렸고, 수놓은 장막 속도 임이 없어 비어 있다.
부용꽃 무늬가 있는 방장(房帳)을 걷어놓고 공작 병풍을 둘러두니,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또한 지루하게 그리도 길던가.
원앙새 무늬의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 임의 옷을
만들어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어져 있구나.
산호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옷을 담아 얹어놓고,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도 험하구나.
천만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감히 찾아갈까.
가거든 이 함을 열어놓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하실까?
(3) 하룻밤 사이에 서리 내린 무렵에, 기러기가 울며 날아갈 때에 높다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으로 만든 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쪽 하늘 끝에 별이 보여 임이신가 하고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저 맑은 달빛과 별빛처럼 맑은 광명을 일으켜 임 계신 곳에 부쳐보내고 싶구나.
그러면 임께서는 그것을 누각 위에 걸어두고 온 세상을 다 비추어,
깊은 두메 험한 산골짜기까지도 대낮같이 환하게 만드소서.
(4) 천지가 겨울의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히고,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의 날아다님도 끊어져 있다.
소상강 남쪽 둔덕과 같이 따뜻한 이곳 호남의 창평도 추위가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북쪽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임 계신 대궐에 올려부치고 싶어라.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올려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 서니, 이것저것 생각이 많기도 많구나.
짧은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청사초롱을 걷어둔 옆에 자개로 꾸민 공후를 놓고,
꿈에나 임을 보려고 턱을 받치고 기대어 있으니, 원앙새를 수놓은 이불이 차기도 하구나.
아, 홀로 지내는 이 외로운 밤은 언제나 샐 것인가.
▶결사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말고 이 시름을 잊으려고 하여도
마음 속에 맺혀 있어 뼈 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 같은 명의(名醫)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아, 내 병이야 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죽어서 호랑나비가 되리라.
그리하여 꽃나무 가지마다에 가는 곳마다 앉아 있다가 향기를 묻힌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께서 그 호랑나비가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끝내 임을 따르려 하노라.
【감상】
이 노래는 송강이 50세 되던 해에 조정에서 물러난 4년간 전남 창평으로 내려가 우거(寓居)하며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작품으로,
뛰어난 우리말 구사와 세련된 표현으로 속편인 '속미인곡'과 함께 가사문학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임금을 연모하는 연군지사인 이 노래는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를 여성으로 택하여
더욱 절실한 마음을 수놓고 있다.
임금을 임으로 설정하고 있는 사미인곡은 멀리 고려 속요인 '정과정'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우리 시가의 전통인 부재(不在)하는 임에 대한 자기 희생적 사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가시리'와 '동동' 등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임금을 사모하는 신하의 정성을, 한 여인이 그 남편을 생이별하고 그리워하는 연모의 정으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체의 내용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적 변화에
따라 사무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으며, 작품의 서두와 결말을 두고 있어서,
모두 다섯 단락으로 구분된다.
외로운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심경은 계절의 변화와 관계없이 한결같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국문으로 쓰여진 문학 작품을 경시하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관동별곡' '속미인곡'과 더불어 역대 사대부들에게 큰 감명을 준 작품으로서
홍만종과 김만중 등 여러 사람에게서 극찬을 받았다.
제목인 <사미인(思美人)>은 중국 초나라 굴원(屈原)의 <이소(離騷)> 제 9장의 <사미인>과 같다.
그래서 임금께 제 뜻을 얻지 못하더라도 충성심만은 변함이 없어 죽어서도 스스로를 지킨다는
이소의 충군적 내용에다, 송강 자신의 처지를 맞추어 노래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우리 문학에서 연원을 찾는다면 고려 때의 '정과정'과 조선 성종 때의 조위(曺偉)의 유배가사
'만분가(萬憤歌)' 등을 들 수 있으나, 이러한 작품의 아작(亞作)이 아니라 송강다운 문학적
개성과 독창성을 발휘한 뛰어난 작품이다.
송강이 조정에서 물러나 전남 창평에서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의 처지를 노래한 것으로,
뛰어난 우리말의 구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상 전개상의 특징으로 4계절의 경물 변화와 그에 따른 사모의 정을 읊는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 매우 세련된 문학적 표현은 '속미인곡', '관동별곡'과 함께
서포 김만중에 의해 높이 평가받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속미인곡'이 순수한 우리말의 멋을 잘 살리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작품에는 부분적으로 관념적인 한자어가 드러나 있다는 점이 흠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작자가 50세 되던 해인 선조 18년, 동인(東人)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나 전남 창평에 칩거
할 때 지은 작품이다. 임금을 향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임과 생이별한 여인의 애절한 목소리,
즉 연가(戀歌) 형식을 빌어 표현했다.
그의 <속미인곡>과 함께 충신연주지사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성산별곡(星山別曲)>과 같이 서사(序詞), 4계절사(四季節詞), 결사(結詞)로
구성되었으며, 연군에의 애절한 정을 노래하되, 각 계절마다 반드시 무엇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충성심을 나타내고 있다.
봄에는 매화를, 여름에는 옷을, 가을에는 달빛을, 겨울에는 햇볕을 보내고 싶다고 하였다.
이것은 작가가 임금에 대한 충성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드리고 올리는 몰아적(沒我的)
이고 희생적인 것이라고 생각한 데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서사에서는 그의 출생과 생존 연명은 숙명적으로 왕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결사에서는 후세에까지도 왕을 따르겠다는 3세(三世)를 두고 이를 맹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상의 표출은 현실은 자기를 절망시키고 배격하지만, 자기는 현실을 동경하고
화합하려는 의도를 강력히 시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 있어서 언어의 미적 구조는 <관동별곡>도 감히 못 따라올 정도로 아름답게 표현된
뛰어난 작품이다. 따라서, 옛 사람들이 이 작품을 가리켜 ‘동방의 이소(離騷)’니
‘영중의 백설(白雪)’이니 했던 평은 정곡을 찌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임금을 사모하는 정성을 한 여인이 남편을 생이별하여 연모하는 형식으로 노래하고
있다. 작자 자신을 여자로 비유하여 그리워하는 형식을 취했다. 특히 여인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임과 함께 한평생을 같이 살고자 했는데, 임과 이별한 지 3년이 되었다.
봄에 매화 한 송이 핀 것을 보고 임에게 보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며,
여름날 오색실과 비단으로 임의 옷을 지어 보내고 싶은 심정 간절하고,
가을의 달 밝은 밤, 맑고 밝은 빛을 임에게 보내고 싶은 생각 간절하고,
추운 겨울날 임의 건강이 걱정되고, 그리움에 밤을 지새우고 죽어서 범나비가 되어
임의 옷깃에라도 앉아 임을 따르고 싶다는 간절한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충성을 드리고 올리는 표현은 비단 <사미인곡>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관동별곡>에서도 ‘오십천(五十川) 내리는 물을 목멱(木覓)에 보내고자’라고 하였고,
시조에서도 ‘송죽(松竹)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곳치로다.
한가지 것거내어 님겨신 데 보내고져’라고 한 것이 있다.
제목은 비록 시경(詩經)이나 초사(楚辭)에서 인용하였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훌륭한 창작이다.
순수한 우리말을 썼다는 것은 더욱 찬연한 빛을 발휘하거니와, 한문의 문자가 더러 인용되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오히려 그 당시의 상용어가 되어, 도리어 우월감을 주는 것이다.
아마 우리들이 신어(新語)나 외래어를 쓰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이 노래를 <관동별곡>에 비교해 본다면, <관동별곡>이 기발하고 기(氣)에 승(勝)하다면,
이 <사미인곡>은 침웅(沈雄)하여 정(情)에 뛰어났다 할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을 단순히 충성을 주제로 한 것으로 볼 때, 그 문학적인 미의식은 감소된다.
<사미인곡>이 연주지사(戀主之詞)의 성격을 지닌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먼저 한 편의 연시(戀詩)로 읽혀져야 한다.
그리하여 작품이 지니고 있는 수사적인 특성과 작품 전체의 구조적인 의미가 밝혀지고
난 다음에라야 작중 화자의 심정과 작자의 처지를 대비시켜 그 우유(寓喩)의 방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장수: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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