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렘브란트 Van Rijn Rembrandt (1606~1669)
렘브란트 Van Rijn Rembrandt (1606~1669)
HOMER DICTATING TO A SCORIBE 호메로스
1663년 캔버스 油彩 108×82.4Cm
덴 하그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는 1650년대와 60년대 초에 걸쳐 고대의 인물을 다룬 3점의 작품을 그리고 있다.
호메로스, 알렉산더 대왕,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인물을 다룬 것이다. 그 중의하나인 이 작품은 원래 <두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호메로스>를 테마로 한 것이나 화재로 인한 작품의 파손으로 나머지 부분이 잘라져 나가 오늘의 단 신상(單身像)으로 남았다.
여기에 그려진 호메로스는 장님의 호메로스이다. 렘브란트는 이 장님의 테마를 즐겨 다룬 화가이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은 외적 세계보다도 내면적 세계의 광휘를 바라보는, 보다 깊이 있는 정신세계의 눈뜸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로 볼 때 이 호메로스는 바로 렘브란트 자신의, 모습을 바꾼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SUSANNA SURPPISED BY THE ELDERS
1637년경 板 油彩 47.5×39Cm
덴 하그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 소장
<목욕하는 수잔나>라는 주제는 르네상스 이래 즐겨 다루어진 테마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거기에는 나체의 수잔나와 그것을 숨어서 바라보는 두 장로가 등장한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이 작품에서는 두 장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두운 숲 그늘 속에 희미하게 한 장로의 얼굴이 보일뿐이다. 정원에서 막 목욕하려는 수잔나는 인기척에 놀라, 놀라움과 수치심으로 몸을 움츠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풍만하고 싱싱한 육체가 햇볕을 온 몸에 받고 하나의 광선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Susanna and the Elders
Van Rijn Rembrandt (1606∼1669)
1647, Mahogany 29 7/8 x 36 1/8 in. (76.6 x 92.7 cm)
Gemaldegalerie, Berlin
THE ABDUCTION OF GANYMEDE 가니메데스(미소년)의 납치
1635년 캔버스 油彩 171×130Cm
드레스덴 국립 회화관 소장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가니메데스는 미소년(美少年) 이었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 제우스는 그를 독수리로 변신하여 납치케 하여 올림푸스 산에 데려오게 한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미소년으로 그려져 온 가니메데스를 렘브란트는 왜 그처럼 공포에 떠는 어린애의 모습으로 그려냈을까?
이작품에서 렘브란트는 신화(神 話)에서 테마를 취하면서도 그것을 한낱 신화적인 세계의 것으로 다루지 않고, 그것을 현실의 한장면으로 묘사하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 작품을 위해, 독수리에 채여 공포에 울부짖는 어린애의 스케치를 남겨놓고 있으며, 그것을 그대로 이 그림에 살리고 있는 것이다. 렘브란트는 신화의 단순한 서술적인 묘사보다는 인간의 공포감을 보다 리얼하게 표현하려고 했으며, 그것이 특히 1630년대 중반기에 나타나는 그의 특징이기도 하다.
SAMSON POSING THE RIDDLE TO THE WEDDING GUESTS 삼손의 혼례식
1638년 캔버스 油彩 126×175Cm
드레스덴 국립 회화관 소장
혼례식 축하연에 초대된 신부 데릴라의 친지들에게 삼손이 수수께끼를 묻고 있는 장면이다. 이 작품에 대해 당대의 한 문필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렘브란트는 주제에 담겨진 이야기를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고대인들은 지금의 우리들처럼 의자에 앉지 않고 대신 자그마한 침대를 사용했다. 한번도 깎아 본 적이 없는 장발의 삼손은 그 손짓 등으로 미루어 열심히 수수께끼를 묻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이 그림이 삼손의 혼례식 축하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삼손이 아니라 신부이다. 그림의 거의 중심부에 위치한 신부는 강한 광선을 온 몸에 받으며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정면을 향해 앉아 있다. 그녀는 떠들썩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전체 화면에서 고립되어 있는 듯하며 동시에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BATHSHEBA WITH KING DAVIDS LETTER 다윗왕의 편지를 든 밧세바
1654년경 캔버스 油彩 142×142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부하의 부인인 밧세바의 목욕 장면을 훔쳐보다 욕정에 사로잡힌 다윗..구약성서에서 주제를 따온 작품으로서 다윗의 아내가 되라는 사자의 편지를 들고 있는 밧세바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은 풍만한 여체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으나, 동시에 다가올 비극적인 운명을 두려워하는 우수가 깃들어 있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헨드리키에'를 모델로 한 누드화이기는 하나, 렘브란트의 주요 관심사는 바로 밧세바의 마음의 갈등을 그려내는데 있었다. 작품의 구도 자체는 고대의 부조(浮彫) 작품을 묘사한 동 판화에서 빌어 온 것이기는 하나 그 구도 이상으로 렘브란트에게 중요한 것이 밧세바의 얼굴 표정이었다.
David and Uriah
1665 Oil on canvas, 127 x 117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위의 작품과 연관하여 통정을 한 다윗은 부하(우리아)의 여인을 취하기 위하여 우리아를 전쟁에서 죽게 만든다.
다윗과 밧세바는 그렇게 결혼하여 과연 행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솔로몬을 낳는다.
THE ASS BALAAM BALKING BEFORE THE ANGEL
천사 앞에서 뒷걸음질치는 당나귀
1626년 板 油彩 65×47Cm
파리 코냑 제이 미술관 소장
라이덴 시대의 렘브란트의 가장 초기에 속하는 작품의 하나이다. 1624년,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의 고전주의적 역사화가(歷史畵家) 라스트만에게 6개월 동안 사사 (師事)했으며 그곳에서의 수업에서 기초적인 회화기법, 즉 정통적인 화면 구성, 입체적 인체 표현, 정밀한 세부묘사, 무리없는 채색법(彩色法) 등을 익혔다. 이 작품에서는 그와 같은 영향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하나, 이미 수업기(修業期)를 지난 렘브란트의 독특한 면모가 약동하고 있다.
즉, 그는 주어진 주제를 하나의 회화작품(繪畵作品)으로 구성할 때, 이야기의 설화적(說話的)인 도식(圖式)을 피하고, 화가 자신이 그 장면의 목격자인 것처럼 리얼하고 직접적인 표현 방법을 추구한 것이다. 천사에게 길을 가로 막혀 주저앉은 당나귀를 채찍질하는 발람에게서 어쩌면 화가 자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THE PROPHET JEREMIAH LAMENTING THE DESTRUTION OF JERUSAEM
예루살렘의 파괴를 한탄하는 예언자 예레미야
1630년 板 油彩 58×46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는 1630년을 전후해서 노인의 단독상(單獨尙)을 즐겨 그렸다.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이며, 모델은 그의 부친으로 생각되고 있다. 작품의 주제는 물론 성서에서 취한 것이나 이 그림과 일치되는 기술(記述)은 없다.
렘브란트가 그 주제를 자유롭게 해석한 것으로 보이며 예언자로서 예루살렘의 불운(不運)을 알고 있던 예레미야는 아직도 예루살렘 사람들의 불행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어두운 암굴에서 부각되는 인물, 금속 용기의 반짝임, 묵직한 포목(布木)의 질감(質感)등, 이 모두가 20년대의 생경(生硬)한 광택 (光澤)과는 달리, 은근히 가라앉은 색채 속에 오히려 광채를 빛내고 있다.
THE RISEN CHRIST AT EMMAUS 에마오의 예수
1648년 판(板) 유채(油彩) 68×65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THE DESCENT FROM THE CROSS 십자가로부터의 降下
1633년경 板 89.4×65.2Cm
뭔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이 작품은 그리스도 수난전(受難傳) 연작 다섯 작품 중의 두 번째의 것이다.
이 연작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리스도>에서 시작하여 <降下>, <승천>, <매장>, <부활>의 5부작으로 되어 있으며, 이 연작의 완성에 7년이 필요했다. 이 7년에 걸친 그리스도 수난(受難) 연작을 통해서 렘브란트가 추구한 것, 그것은 바로 생동하는 인간의 내면적 감동의 표현이었다. 그러한 감동의 표현을 그는 일단은 극적인 명암의 대비로 포착했고, 인물의 자태와 배치에 있어서의 동세(動勢), 그리고 테마 자체가 지니는 비극성을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단출한 화면 구도 속에 압축시키고 있다.
이그림은 아마도 동시대의 바로크 회화(繪畵)의 거장 루벤스의 작품을 의식해서 그려진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THE ASCENSION OF CHRIST 그리스도의 승천
1636년 캔버스 油彩 92.7×68.3Cm
뮌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렘브란트는 이 <승천>도 그발상(發想)의 원천은 멀리는 티지아노의 <성모 승천>, 가깝게는 루벤스의 같은 주제의 작품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이들 그림에서의 마리아를 예수로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마리아 승천>이라는 테마는 바로크 화가들이 즐겨 다루어 온 테마이다.
구름을 끼고 신비로운 햇살이 번지는 하늘, 그것을 떠받치는 천사들, 그것들에 휩싸여 찬란한 빛에 싸여 승천하는 마리아.., 당시 비정상적으로 신성화되었던 종교적 바로크 회화의 안성 마춤인 화제(畵題)인 것이다. 1630년대의 렘브란트는 그의 화력(畵歷)에 있어서도 가장 바로크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때이며 그 바로크적 경향이 바로 이 그림, 성모 승천을 예수의 승천으로 이끌어 간 것이다.
THE RESURRECTION OF CHRIST 그리스도의 부활
1639년경 布 板 油彩 91.9×67Cm
뮌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이 작품에 대해서 렘브란트 자신이 가장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표현하려고 고심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는 표현에 대한 해석이 또한 엇갈린다. 즉, 문자 그대로의 화면에서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뜻한다는 해석과, 반대로 물리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내면적인 감정의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그것이다.
어쨌든 이 그림의 장면은 떠들썩한 혼란의 상태로 그려져 있다. 무장한 경비인 들은 놀란 나머지 갈피를 잃고 있고, 반면에 부활하는 그리스도는 화면 한 모퉁이에서 환한 빛을 발하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고요와 떠들썩함의 대비, 이 드라마틱한 장면은 한편의 카라밧지오 작품을 보는 듯하다.
THE HOLY FAMILY (WITH ANGELS)
1645년 캔버스 油彩 117×91Cm
레닌그라드 에르미타쥬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는 <마리아의 가족>이라는 주제를 소묘, 에칭, 유화에서 줄곧 되풀이해 그렸다. 1630년 초기에는 다분히 루벤스풍의 종교화를 연상시키는 것이었으나, 40년대 후반기의 이 작품은 종교화라기 보다는 오히려 내밀한 일상적 가족의 정경을 그린 것처럼 느끼게 한다.
1642 년, 사스키아 (렘브란트의 아내)의 사후(死後) 헨드리키에 (두번째 아내)가 렘브란트가(家)에 들어와 자리잡는 40년대 말까지, 렘브란트는 가정적으로 매우 불우했다. 그 까닭에 그는 한층 더 가정적인 행복이라는 테마에 이끌렸던 것이다. 책을 읽다 말고 잠시 모친은 자애로운 눈길을 갓난아기에게 돌리고, 뒤켠에서는 요셉이 목수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왼쪽 위로부터 천사가 날아 내려오고 있음으로 해서 이 일가가 예수의 가족임을 나타내고 있다.
Abraham and Isaac, 1634
MOSES WITH THE TABLE OF THE LAW 십계명을 깨는 모세
1659년 캔버스 油彩 168.5×136.5Cm
베를린 국립 미술관 소장
CHRIST WITH THE SICK AROUND HIM 환자를 고치는 그리스도
1642-5년 에칭 드라이포인트 뷰랑 27.8×38.9Cm
런던 대영 박물관 소장
렘브란트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의 소묘와 동판화이다. 소묘는 그때까지만 해도 하나의 초벌 그림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렘브란트의 그것도 그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못 되었으나 그 독특한 필치는 일단 인정하더라도 그의 동판화는 고금을 통해서 알브렉트 뒤러, 고야와 함께 동판화의 3대 거장의 한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동판화가 필요로 하는 정교한 기법적 훈련이 렘브란트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특히 그 흑백의 대비의 미묘한 효과는렘브란트의 독특한 명암법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동판화 기법을 단순한 복사(複寫)의 방법으로서 만이 아니라 그것을 독자적인 한 예술 형태로 정립시킨 판화영역에 있어서의 한 혁신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