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자크 루이 다비드
자크 루이 다비드의 [시비니 여인들]THE SABINE WOMEN
Oil on canvas, 12'8" x 17'3/4", Musée du Louvre, Paris
고대의 덕과 모범을 그리는 것은 오랫동안 역사화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역사화의 가장 큰 가치는 무엇보다 교훈적이고 유익하다는데 있었다. 예술을 통해 고대의 영웅적인 행위를 되돌아보는 것은 영혼을 고양시키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래서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나 도덕적 순결, 극기, 관용 등의 덕이 그림을 통해 감동적으로 표현되고 기려졌다. 19세기 최고의 역사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는프랑스 대혁명 뒤에 건설된 국가와 사회의 이상을 고대 로마에서 즐겨 찾았는데, 그가 1793년에 그린 [사비니 여인들] 역시 그런 이상을 담은 작품이다.
그림 속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사비니 사람들은 테베레 강 동쪽에 살던 이탈리아의 한 부족이었다. 어느 날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가 이들을 연회에 초대했는데, 우호 증진이 아니라 젊은 사비니 여인들을 강탈히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당시 로마에는 여자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잔치에 갔다가 졸지에 젊은 여인들을 빼앗긴 사비니의 남자들은 몇 년을 절치부심, 군대를 이끌고 가 로마인들의 근거지인 카피톨리노 언덕을 포위했다. 로마인들과 사비니인들 사이에 대격전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전투가 진행되자 헤르실리아라는 여인을 필두로 사비니의 여인들이 이들 사이에 끼여들었다. 그녀는 전쟁으로 헛된 피를 흘리지 말자고 절규했다. 온몸을 내던진 여인들의 중재로 전쟁은 중단됐다. 양측은 평화혐정을 맺고 사비니의 왕인 타티우스와 로마의 왕인 로물루스가 공동집권 체제를 이루어 함께 번영을 꾀하기로 했다. 두 부족은 관용과 화해에 바탕을 둔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게 된 것이다. 이 평화는 로마가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여 '팍스로마나'를 이루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됐다.
다비드의 [호라티우스의 맹세]THE OATH OF THE HORATII
다비드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프랑스는 커다란 사회적 갈등에 쉽싸여 있었다. 1789년 대혁명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단두대에서 사라졌으며, 다비드 역시 '당대 최고의 문화권력'에서 옥살이까지 경험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이러한 혁명과 혁명 이후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 자신의 조국에 가장 긴요한 것은 관용과 화해라고 생각한다. 다비드는 구금돼 있을 때 이 그림을 구상하게 됐고, 출옥 후 첫 역사화로 이 그림을 그렸다. 다비드는 이 밖에도 조국을 위해 한 가문이 희생한다는 주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공화정을 위해 아들의 죽음을불사한 아버지를 그린 [부르투스에게 아들들의 시체를 날라오는 형리들], 신념을 지키기 위한 죽음을 찬양한 [소크라테스의 죽음] 등 고대의 덕을 기린 역사화를 여러 점 남겼다.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The Death of Socrates, 1787